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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죽이고 마을 수장한 살인마, 이제 천만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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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소녀 죽이고 마을 수장한 살인마, 이제 천만을 노린다!"

[김용언-이권우-조원희] <7년의 밤>을 좋아하는 혹은 의심하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펴냄) 이후 2년간 한국 문학은 폭발력 있는 작품을 내지 못하는 불모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전 척박한 땅 위로 드디어 누군가 걸어 나왔다. 낯선 작가다. 소설가 박범신은 이 작가를 그리스 신화 속 여전사인 '아마존'에 비유한다. 정유정 그리고 그녀의 세 번째 작품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 얘기다.

<7년의 밤>은 올해 3월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약 10만 부 가량이 팔렸다.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작가도, 출판사도, 고립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같은 어두운 줄거리도 한국 문학의 '흥행 보증 수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 출신이 아니며 전직 간호사였다는 사실도 눈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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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의 밤>(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소설은 살인자가 누군지를 시작과 동시에 알려준다. 복수 집행자의 정체와 속내도 금세 드러난다. 복수극은 단순하고, 반전은 없다. 스릴러 장르의 특성을 전면에 받아들인 소설로서는 모험이 틀림없다. 그러나 작가는 사건을 되짚는 것만으로 독자를 끝까지 힘 있게 끌고 나간다. 질척이지 않는 문장, 생생하고 치밀한 사건 묘사, 탄탄한 구성 덕분이라고 독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7년의 밤>은 출간과 동시에 영화계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이 소설이 최근의 어떤 한국 소설보다도 영화로 만들면 좋을 이야기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한 영화제작사가 원작료 1억 원에 작가 러닝개런티까지 지급하는 조건으로 영화 판권을 구입했다. 현재 영화 <7년의 밤> 감독 자리를 많은 이들이 탐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도 있다. 언제부턴가 대중은 더 이상 '이야기(story)'를 소설에서 찾지 않는다. 대중은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속 이야기에 열광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소설이 "영화, 드라마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다. 즉, 영화로 만들기 좋은 이야기를 애초부터 의식하고 소설 등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

'프레시안 books'는 이러한 우려를 제기한 도서평론가 이권우와 스릴러 영화 <죽이고 싶은>(2010년)을 연출한 영화감독 조원희, 그리고 '장르 소설 마니아'를 자처하는 <씨네21> 기자 김용언을 한 장소에 모았다. 영화계에 부는 <7년의 밤> 열풍과 이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들을 확인하고, 소설과 영화 사이의 긴장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살피기 위해서다.

한국 소설에서 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종되었는가? 앞으로 '이야기'는 영상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가? 좋은 소설의 기준 역시, 영화로 만들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바뀌게 될까? 이제 소설가는 장르/순수 문학 사이의 구분을 허물고 영화에 어울리는 소재를 좇아야 하는가? 영상 시대에 소설과 영화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

대담은 6일 밤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 다음은 그 대담의 주요 내용. <편집자>

<7년의 밤>은…

2004년 9월. 한 남자가 "열두 살짜리 여자 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던지고, 댐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 주민 절반을 수장시킨"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7년 동안 이 사건을 지명을 따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렀다.

전직 야구 선수였으나 이젠 술에 젖어 사는 보안 업체 직원인 '최현수'가 인적 드문 세령 마을의 댐 관리인으로 발령받으면서 이 재앙은 일어난다. 현수는 그악스러운 아내에 떠밀려 가족이 살 사택을 보러 마을로 내려가던 중, 여자 아이를 차로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킨다. 현수는 공포에 휩싸여 죽어가는 아이의 목숨을 완전히 끊고 호수에 유기해버린다.


살인자가 된 최현수는 왼팔의 마비 증세와 함께 점점 더 악몽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그를 죄어오는 것은 죽은 여자 아이의 아빠 '오영제'. 치과 의사에 상당한 부를 거머쥐고 있지만, 아내와 딸에게 집착하면서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최현수가 딸을 죽였음을 눈치챈 오영제는 최현수와 그의 아들 서원, 그리고 최현수의 부하 직원이자 부자의 곁을 지키는 대필 작가 '안승환'에게 잔혹한 복수를 실행해 간다.

2011년, '살인마의 아들'이란 올가미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서원은, 승환과 함께 조용히 숨어 살아간다. 어느 날 아버지의 사형 집행 확정 소식이 날아들고, 승환의 행방마저 묘연해진다. 이어 7년 전 사건이 재구성된 소설 뭉치와 취재 파일이 그 앞으로 배달된다. 승환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이 소설엔, 서원은 몰랐던 세령호 사건의 뒷이야기들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서원은 오영제란 이름을 기억해 낸다. 오영제는 7년 전 아버지 최현수를, 어디로 몰아 가고 있었는가? 7년이 지난 지금, 서원과 승환에게 또 다른 사건이 덮쳐오는데…. (☞관련 기사 :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

'소설의 영화화', 뜨거운 감자!

김용언 : 이 소설에 대한 두 분의 감상이 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읽었나?

조원희 : 영화계에서 난리가 났었다. 판권이 팔리기 전부터 술자리에 가면 다들 "<7년의 밤> 봤느냐" 얘기로 시작했으니까.

한국 소설 중에 영화계에서 이토록 반응이 뜨거웠던 책은 없었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지음, 문이당 펴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엔 다들 대놓고 "죽인다", "최고다" 그러기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첫 부분은 지루했지만 세령호가 등장하면서부터 빠져들었다. 굉장히 재밌게 봤다.

이권우 : 이 소설은 장점도 있지만 서사적인 완결성에 있어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또 너무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고, 설명이 반복되다 보니 지루하다. 또 언론을 통해 알려진 장점들, 즉 치밀한 사전 조사를 통한 객관적 묘사 같은 건 사실 소설뿐 아니라 모든 '이야기'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 아닌가?

그래서 평단이 주목하기 이전에, 영화계에서 그토록 주목하는 이유가 뭔지 되게 궁금했다. 그냥 소설로 읽고 끝나는 콘텐츠와 영화가 될 수 있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나?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가 어떤 소설을 문학 작품으로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영화와 같은 2차 콘텐츠로 소비할 가능성에 더 주목한다면, 이것은 큰 변화가 아닐까?

▲ 왼쪽부터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네21> 기자 김용언, 영화감독 조원희. ⓒ프레시안(최형락)

조원희 : 사실 한국 문학의 적극적인 독자는 아니다. 자주 읽지도 않고….

이권우 : 아니 그럼, 도대체 뭘 보나? 한국 감독이 한국 소설을 안 보면…. (웃음)

김용언 : 감독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베스트셀러에 주목하지 않을까 싶다. 친숙한 콘텐츠이고, 일정한 관객을 확보할 수 있고, 홍보하기 좋은 요건을 갖췄으니.

이권우 : 많이 읽었다면 이미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많은 거라, (흥행하기) 더 어렵지 않나? 영화 내용을 뻔히 다 아는 건데….

조원희 : 소설 독자의 숫자는 많아봐야 100만 명도 안 된다. 그리고 기존 독자가 오히려 관객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미 책을 본 사람들이 영화 흥행에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다 읽었다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나도 세 번이나 읽었다. 머릿속에 내용이 빼곡한데, 영화로 만든다니까 더 궁금해지는 거다.

김용언 : 나도 동감한다. <7년의 밤>을 놓고 예를 들자면, 가령 최현수는 소설이나 영화나 여전히 최현수다. 그런데 만일 송강호가 그를 연기할 경우 '어떤' 최현수가 될 것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존재하는 모습으로 육화되는 과정을 보고 싶어 하는 거고, 거기에 대해 칭찬하거나 씹고 싶은 거다.

조원희 : 덧붙이자면, 영화는 (소설과) 그 목표가 다르다. <7년의 밤>을 예로 들자면,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면 예산은 50억 원 이상이 들고 목표 관객 수는 300만 명 이상이 돼야 한다. 영화는 특히나 망했을 때 리스크가 큰 산업인데, 이런 스케일일 경우엔 더욱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증된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크다.

만약 300만 명이 본다면 그 가운데 200만 명 정도는 1년에 극장을 10번도 안 찾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자주 본다는 사람들의 한계가 100만 명 미만이니까. 한마디로 영화에 대해서조차 깊은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와서 봐야 하는 거다. 그런 분들을 유혹할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를 영화인들은 갈구하고 있는데, <7년의 밤>이 그걸 충족시키는 경우다.

이권우 : 외국, 특히 미국의 경우는 베스트셀러가 영화화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이유인가?

조원희 : 그렇다. 사실 대부분 책의 상상력이 영화를 뛰어넘는다. 영화는 한계를 분명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나 작가들이 처음부터 <해리 포터> 같은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제작비는 어떻게 감당하지? 이런 상상력을 발휘해 봤자 결국 못 만들 수 있어, 이런 유의 생각을 많이 하니까. 그런데 책은 스스로 그런 한정을 지을 이유가 전혀 없다.

이권우 : 영화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실제로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들고 있지 않나.

조원희 : 애초부터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 지구상에 10명이 안 된다. 조지 루카스처럼 20대에 이미 전미 흥행 1억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린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그런 설계를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초월적인 상상력은 문학가들한테 얻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권우 : 영화 산업이 의외로, 가난한 문학 쪽의 상상력에 기대고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웃음)

김용언 : 문학뿐 아니라 만화든, 드라마든 다른 콘텐츠를 가장 많이 흡수해서 자기 것인 양 포장하는 게 영화다.

이권우 : 아니 그럼, 영화는 문화 산업의 제국주의자 아닌가? (웃음)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니까….

조원희 : 아니, 완전히 식민지일 수도 있다. (웃음)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실제로 이윤을 남기는 작품은 극소수다.

ⓒ프레시안

<7년의 밤>, 왜 특히 뜨겁나?

이권우 : 이 좌담을 준비하는데 영화감독 섭외가 대단히 힘들었다고 들었다. 왜들 그리 몸을 사리나?

조원희 : 그렇게 섭외하기 어려웠나? 몰랐다. 내가 이 자리에 편하게 나와 있는 건 <7년의 밤>의 감독을 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서다. (웃음) 조건상 아직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맡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많은 감독들이 이걸 탐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분들은 당연히 조심스럽지 않겠나. 자유롭게 얘기하기도 어려울 거고, 실수로 제작자 눈 밖에 나는 얘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

이권우 : 그 정도로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나? 그럼 이 작품의 어디가 매력적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① 정확한 사건 묘사, 독특한 설정, 빠져드는 캐릭터

김용언 : 그냥 독자 입장에서 봤을 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사건에 대한 정확한 묘사다. 도스토옙스키가 하는 심리 묘사면 모를까, 소설에서 심리 묘사만 주야장천 나오면 소설이 대단히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7년의 밤>은 그런 게 적다. 현대 생활에서의 권태, 이런 건 내 삶에서조차 지겨운 거잖나. 그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참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독자로서는 작가가 등장인물의 내면을 설명해주기보다 스스로 그 내면을 추측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그러니 '그는 괴로웠다' 이런 설명이 아니라 외적인 상황 묘사를 통해 '이 사람이 괴롭구나' 하는 심정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 좋다. 그런 면에서 <7년의 밤>은 정밀한 취재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잘 구현했고, 사건이 이뤄질 때 액션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정확하다.

두 번째는 설정상의 매력이다. <추격자> 이후로 2010년까지 한국 영화계를 휩쓴 건 남성 투톱 스릴러였다. <7년의 밤>도 느낌이 <추격자>와 비슷하다. 여기엔 공권력에 대한 증오가 안 나온다. 과거에 영화나 소설에 많이 나왔던 경찰이니 검사니…사람들이 이젠 이것도 지겨운 거다. <7년의 밤>은 '그냥 시민' 둘이 치고 박고 맞서는 구도다.

물론 오영제는 부자이고 동네에서 권력자이지만, 돈 빼면 그다지 대단한 게 없다. 이건 두 사람의 인정투쟁 이야기인 동시에 자력 구제 이야기다. 그게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

▲ 영화감독 조원희. ⓒ프레시안(최형락)
조원희 :
매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비주얼 면에서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있다. 그림이 그려진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서원이가 매달려있는 데에 물이 차오르고 마을이 수몰되기 직전일 것임에 틀림없는데, 책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그대로 화면 구성이 되더라.

또 다른 장점은 캐릭터의 매력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는 보는 사람이 절대로 동일시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동일시를 하면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매력적이다.

최현수가 그렇다. 최현수는 시스템이 낳은 전형적인 '루저'인데, 그러면서도 '나 같아도 이런 실패를 하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야'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성공한 사람들조차 제 감정을 쉽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 종류의 인간이다.

오영제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지만, 굉장히 감정이입이 되는 거다. 내가 어떤 걸 소유하고 있고 이 소유물에 집착하는데, 그게 없어졌을 때, 심지어 '발이 달려서' 도망갔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한다.

게다가 오영제는 많은 한국 감독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유형) 중 하나다. 잭 니콜슨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강박증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걸 추구하고자 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캐릭터.

이권우 : 영화감독들이 오영제처럼 단순한 캐릭터를 좋아하나?

조원희 :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문제를 갖고 있는 복합적인 인물이면서도, (독자 혹은 관객에게) 설명하기 어렵지 않은 캐릭터다. 말이 안 되면서 말이 되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다. 보통 딸에게 갖는 애틋한 심정으로 복수하는 게 아니라, 나의 '소유물' 내지는 '장난감'을 망쳐놓았다는 분노감으로 복수에 접근한다. 이런 게 굉장히 특이하다.

이권우 :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특이하긴 하지만, 인간의 영혼이 이렇게 단순할 수 있나. 오영제의 성장 과정이 잠깐 나오는데 (성장 후와) 이퀄(등식) 관계가 성립한다. 어떻게 트라우마가 이퀄 관계로 형성이 되나.

조원희 : 그렇게 현실적인 면을 따지게 되면, 장르 소설의 조건들이 성립할 수 없다.

② 장르 소설적인 특성 적극 수용

이권우 : 그렇다면 이 소설이 장르적 특성이 강하다는 뜻인데….

김용언 : 한국의 장르 소설 팬들은 한국에서 읽을 만한 장르 소설이 왜 없는가에 대한 실망감, 자괴감이 있는 편이다. 과학 소설(SF)은 그래도 작가진이 좀 구성되어 있는데, 미스터리나 스릴러엔 굉장히 약하다. 나도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런 데 대한 아쉬움이 있는 편이었는데, <7년의 밤>은 장르 소설을 보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선 '순수 문학'과 '장르 문학' 사이의 선이 되게 강고한데, 독자 입장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흥미로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7년의 밤>은 순수 소설을 표방하면서도 장르 소설에 익숙한 사람들을 잡아끄는 지점이 있다. 그것도 긴 분량, 야심찬 스케일로, 상당히 그럴듯하게 잘 쓴 거다.

이권우 : 그런 장르 소설로서의 장점과 함께, 굳이 따지자면 순수 문학적 특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김용언 : 그런 구분 자체에 동의를 하지 않는 편이어서…. 소설 자체로 좋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서사 진행에 있어서 굉장히 추동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유의 소설은 다음 장이 하나도 안 궁금하면 망한 거나 다름없는데, 이 소설은 범인과 사건을 이미 까발리고 시작한다. 그런데도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된다.

추리 소설 장르 중에 '도서(倒敍) 추리'라는 게 있다. 살인이 대뜸 1장에서 저질러지고 살인범이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과정이 전개-클라이맥스-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을 갖는다. <7년의 밤>에서도 그런 종류의 형식을 갖고 왔는데, 결말을 향해 놀라울 만큼 흡인력 있게 진행된다. 이들의 두 번째 사건, 즉 복수가 어떻게 진행될까에 대한 궁금증이 힘 있게 독자를 끌고 간다는 것이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면 일단 촌스럽지가 않다. 감정적인 질척질척함을 최대한 절제하고, 기름기를 쫙 뺀 상태로 건조하게 끌고 나간다.

③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

이권우 : 내면 묘사에 치중하지 않는 점이 장점이라고 했는데, 그건 1990년대 이후에 나온 (한국의) 신진 작가들에 대한 불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원희 : 특히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젊은 소설가들 가운데,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은 많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 '문학적 평가'를 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그런 평가를 할 자격도 없고.다만 한국 소설이 영화화된 사례가 의외로 많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스토리텔링에 매력 있는 작품이 드물긴 했다는 거다. 미국에선 재밌는 소설이 워낙 많으니까 영화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지 않나.

<7년의 밤>은 지금까지 읽어왔던 한국 문학 작품들과 다른 면이 굉장히 많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그는'/'그녀는' 등 3인칭 대명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단 점이다. 그러면서도 매우 세련되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런 게 문학적으로 굉장히 가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되고 있지 않나?

이권우 : <7년의 밤>이나 정유정에 대한 본격적인 (문학) 평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작가가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 출신이 아니란 점도 작용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이건 굉장히 큰 장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문학을 교실 안에서만 배우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것 같다.

두 분이 말한 대로 그동안 젊은 한국 작가들이 자기고백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되는 미덕도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 한국 소설은 방 한 칸에 인물 두 명만 있으면 끝나는데 (웃음), 이건 스케일 자체가 다르지 않나. 그래서 공식 문단에서 반응이 오기 전에 (언론·영화계의 주목을 받으며) 자기 나름대로 역량 발휘하는 것이 좋게 느껴진다.

다만 이게 영화화하기 좋은 작품이어서 주목받는 게 혹시, 영화화가 소설의 지향점처럼 되어버리는 징후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정유정은 <내 심장을 쏴라>로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는데, 그 문학상이 영상화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염두에 둔다는 얘기가 비공식적으로 있다.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그림이 그려진다'고 말했는데, 이게 과연 옳은 반응일지 모르겠다. 이해가 잘 안 간다. 이야기 자체에 매력이 있으면 그림은 영화감독이 스스로 그릴 수 있는 거지 않나. 만약에 이 작품이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는 점 때문에 주목 받고 있다면, 그런 인식은 문제가 없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로우니까 영화화 할 수 있다는 말이 맞지, 영화적 그림이 그려진다고 해서 영화화하기 좋은 소설로 평가받는다는 게 과연 맞는 건가.

▲ 도서평론가 이권우. ⓒ프레시안(최형락)

'그림이 그려진다', 어떤 의미?

조원희 : 그건 하나의 보너스라고 보면 된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 "'심지어' 그림도 그려져"라는 차원이다. 그것만이 (영화인들이 빠지는)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주인공들이) 물속에도 들어가고, 그 안에 수몰된 도시가 나오고, 이런 부분들이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긴 하다.

이권우 : 물속 촬영이 그렇게 매력적인가? 아무나 빠질 수 있는 건데…. (웃음)

조원희 : 아니다. 굉장히 어렵다. 물속이 매력적인 건 인간에게 3차원 세계를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3차원을 살고 있는 게 아니다. 평면을 산다. 그런데 물에 들어가면 비로소 자신이 입체적인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제임스 카메론이나 뤽 베송을 포함한 수많은 감독들이 스쿠버 다이빙 마니아다. 나 역시 들어가 보고 나서야 "아 이거구나!" 싶었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런 면이, 영화화하고 싶은 그런 부분들을 자극하는 건 분명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말했듯이 보너스일 뿐이다. '그림이 그려진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탁월하다는 얘기 같다. 영화로 손쉽게 옮길 수 있는, 영상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스토리라는 게 있는데, <7년의 밤>이 그걸 충족시키는 거다.

이권우 : 영화로 만들기 좋은 스토리텔링이란 게 어떤 걸까?

조원희 : 쉽게 말해서 장르 소설이나 장르 소설적 특징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액션이 분명하고 기승전결이 눈앞에 훤히 보이고.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는 소설 목록만 펼쳐놓고 봐도, 거의 90퍼센트가 장르 소설이다. 그런데 (영화화) 결과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잘 된 작품들이 꼭 원작을 충실하게 옮겨서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이 매체에서 저 매체로 옮긴 작품 중에 단연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사실 원작 만화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박찬욱이 이걸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어떨 것 같냐" 이렇게 물어봤을 당시, 단호하게 "별론데요"라고 대답했었다. (웃음) 그랬더니 "근데 설정이 좋아" 이러더라.

그랬는데 정말로 (원작에서) 설정만 가져가서 완전히 재창조를 하는 거다. 정말 대단했다. 가령 만화에서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던 최면술을, 자기 식대로 끄집어내서 아주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것이라든지. 정말 뛰어난 감독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설정이나 재료만 갖고도 새로이 탁월하게 빚어내는 감독들이 있단 얘기다. <7년의 밤>이 만약 그런 좋은 감독한테 간다면, 소설로서도 훌륭하지만 영화로서도 <올드보이>만큼 위대한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반대로 질문이 있는데, 문학 쪽에서 보면 작품을 아주 잘 영화로 만든 사례로 어떤 걸 꼽는지 궁금하다.

이권우 : <밀양>이다.

조원희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밀양>을 보고 나서 원작(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열림원 펴냄))을 봤다. 깜짝 놀랐다. 이창동이 정말 위대한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소설의 영화화가 잘 됐다는 것은, 원작에서 작은 '씨앗'만 받아서 큰 나무로 키워냈을 때의 얘긴 것 같다.

그런데 <7년의 밤>은 차이가 있다. 그런 차원으로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씨앗이라기보다 이미 완성된 한 그루의 나무고, 이 묘목을 스크린에 어떻게 옮겨 심느냐 하는 게 문제다. 이창동이 <밀양>을 만든 때의 고민과 어떤 감독이 <7년의 밤>을 만들면서 할 고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 몇 광년 정도 떨어져 있을 것이다.

이권우 : 과거에 문예 영화라는 게 있지 않았나. 원작을 그대로 가져다 옮기는 건 이제 다 실패를 한다. 1990년대에 사람들이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환호했는데, 왕가위 영화엔 언어 장벽을 허물어버리는 이미지가 있더라. 여인의 엉덩이 움직임만으로도 영화적 배경, 인물의 성격 같은 게 드러난다. 거기에 영향을 받은 감독들은 이제 소설과 영화의 문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두 콘텐츠가 서로 닮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소설은 자기대로 소설로 얘기 하고, 영화는 영화대로 자기 몸에 맞는 스토리를 입어야 맞다. (<7년의 밤> 열풍을 보며) 한국 문학계가 이제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설에 대한 압박을 갖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우려가 들었다. 그런 경향은 결국 양쪽에 다 안 좋지 않을까?

<7년의 밤>, 문학적으로도 뛰어난가?

▲ <씨네21> 기자 김용언. ⓒ프레시안(최형락)
김용언 :
그렇다면 영화인들이 끌리는 이유를 떠나,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책'으로서의 <7년의 밤>은 어떤가. 아까 약점도 많다고 말했는데….

이권우 : 나 역시 앞서 언급됐던 이 소설의 장점들엔 동의한다. 자기고백적인 폐쇄성을 벗어났다는 점, 범인을 까발리고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장르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 문학에서 오랫동안 장르적 특성을 부정해왔기 때문에, 영화나 장르 소설에 훈련된 독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던 면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복수가 공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이뤄진다는 점, 그리고 복수 주체가 오영제라는 '가진 자'라는 점이 모종의 시대정신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서사는 민중의식이랄까 정치적인 소수자 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탄압을 받거나 소외된 계층이 자신의 억울함을 개인적으로 해소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7년의 밤>의 오영제는 가질 거 다 가진 사람이다. 이 설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복수할 여력도 없다. 그건 판타지다. 작가는 그 판타지가 지루해졌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거다. 오영제는 더 강한 공권력과 결탁되어야 어울리는 사람인데 단지 자기 소유물, 자기 세계를 흩뜨려놓았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복수를 해나가는 주체로 나온다.

이거야말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 복수는 오히려 있는 놈들이 하고 있다. 자기가 더 많이 누려야 하고, 자기 자존심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 세계를 우연히 침범한 약자에 대해 처절한 복수를 하는 거다. 거기서 공권력은 통하지 않거나 부속적인 역할로 나온다. 권선징악이 안 되는 사회라는 걸 정확히 아는 거다.

정유정은 1970~80년대 민중 문학의 구도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이념적 성취라든지 윤리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기엔 우리가 이미 속물이 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정직함이 놀랍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의외로, 판타지가 아닌 것이다. 장르 문학이라면 오히려 현실의 모순을 숨기고 그걸 판타지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한데, 장르 문학적 특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 소설을 꼼꼼히 보면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김용언 : 그럼에도 불만이 많다는 얘긴데….

① 세령호라는 장소 : 한계인가 장점인가

이권우 : 그렇다. 너무나 많은 것들과 '타협'하고 있다는 게 아쉽다.

설정 자체부터 판에 박혔다. 세령호(湖)라는 제한된 공간, 고립되다시피 한 마을, 여기에 많은 인물들이 모인다. 마치 지류가 하나로 모이듯. 우연적인 만남의 장치가 강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 물에 빠지지 않나. 잠수한다. '무의식 세계로의 침투'! 영화 <인셉션>하고 뭐가 다른가. 문학적으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장르 문학에 익숙한 독자들이 너무나 쉽게 풀 수 있는 상징이다.

작가가 문학 본령의 영역으로 자기 세계를 드러내기보다, 타 문화 산업에서 요구하는 장르적 특성을 끌어안고 얘기를 전개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자신의 한계까지 간 상상력을 보이기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어느 정도에서 제한해버린 것 아닌가. 영화나 타 산업과의 연계성을 생각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김용언 : 잘 모르겠다. 호수 속에 잠긴 마을이 정신분석적이란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오히려 (이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렇게 수몰된 마을들이 있다고 한다. 오래 전이지만 집 문패까지 그대로 달린 채 (마을이) 가라앉아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고. 이건 정신 분석적인 모티프라기보다 현실에 발붙인 장르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이 호수를 정신 분석이라는 넓고 힘센 담론으로 이해하기보단, 하나의 순수한 공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권우 : 이 장소가 주인공들로 하여금 내면 세계의 트라우마를 드러내지 않나. 거기다 우연적인 요소들을 모으고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하고. 그런 게 문학적으로 너무 상투적으로 대입된다는 거다.

조원희 : (세령호라는 장소 설정이) 문학적으로 단점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막 드는데….

이게 영화에서는 반대로 굉장한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영화라는 장르는 '윤택한 배경'을 원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비 내리는 어두운 빌딩숲 때문에 비로소 성립이 되는 것처럼, <7년의 밤>도 세령호라는 장소가 있어서, 그리고 거기에 '우연히도 모두 모여들기 때문에' 오히려 매력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프레시안(최형락)

② 주요 캐릭터들, 사회적 함의가 있는가?

이권우 : 또 다른 불만은 최현수라는 인물을 사회적인 의미로 확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승자 독식 세계에서 밀려나 실패하고 좌절하는, 굉장히 사회적인 탈락자다. 그런데 <7년의 밤>은 최현수가 그런 상황에 처해지게 된 과정을 너무 개인화한다. 사실 그건 시스템의 문제다. 그의 팔에 오는 마비 증세 '용팔이', 이건 경쟁 사회에서 낙오한 자들의 낙인 같은 건데, 그걸 우리 모두 앓고 있지 않나.

조원희 : 그런데 최현수란 인물의 출발은 우물이지 않나. 그 우물을 개인적인 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아버지 자체의 상징성도 있고, 마을 사람들이 우물에 구두를 던져 버리는 행동 같은 것도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최현수는 유년기에 아버지의 폭력을 겪었으며 아버지가 우물에 빠져 죽은 모습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편집자>)

이권우 : 그런데 아버지의 사망도 딱히 사회적인 맥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개인사적인 일로 묘사되고 있지 않나.

조원희 : (아버지의 삶 부분이) 생략되어 있긴 하지만, 나는 한국의 어떤 서사도 아버지 문제를 얘기할 때 결코 개인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세대 간 갈등은 굉장히 지배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가 '월남에서 돌아온 최 상사'라는 설명까지 붙인 아버지가 그렇게 개인적인 존재일 수 있을까?

이권우 : 베트남에서 돌아왔다고 다 그렇게 폭력적이고 무능한 건 아니잖나. 그리고 아버지의 행동이 베트남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김용언 : 그 부분이 굉장히 상투적이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현수의 부친이 베트남 전쟁에서 어째서 망가졌는가 하는 설명이 나오지도 않는데 우리는 '월남전'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최현수 네 집이 왜 이렇게 됐는지, 이들이 어떤 캐릭터인지를 파악한다. 상투적이긴 한데, 반대로 구구절절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에 좋기도 하고. (웃음)

이권우 : 그리고 또 하나는, 최현수가 세령이를 차로 들이받고 유기하게 되는 동기가 너무 개인적이다. 작가는 최현수를 중요한 캐릭터로 만들어 놓고서는, 그 부분에서 감정이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실 그 같은 상황에 처하면 다수는 죗값을 치르고 정당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가 그렇게 궁지에 몰리는 상황 역시 사회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건데, 해결은 너무 개인적인 차원으로 몰고 간다. 작가에게 사회적 약자가 가진 자에게 복수당하는 것에 대해 좀 더 문제의식이 있었더라면, 더 정교하게 처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이 장르적 특성들과 그저 쉽게 타협해버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건 누가 범인이냐 아니냐 혹은 복수를 하나 못 하나가 돼버렸다. 최현수가 살아온 물적 토대, 경쟁 사회에서 생겨버린 왼팔의 마비 증세, 프로야구 선수에서 댐 관리자가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좌절감….

이렇게 전락할 수밖에 없는 자가 갖는 대표성이 있는데, 거기에 사회적인 시선을 갖다 대지 못한 점이 아쉽다. 정치적인 우화로 전혀 확대되지 못하고 장르적 문법에 갇힌 것까지 장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조원희 : 나는 최현수가 세령을 우연히 받고 유기하게 되는 그 장면을, 굉장히 빠져들면서 읽었다. 긴박감도 긴박감이지만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에 아이를 우연히 쳤는데 목격자는 없고, 비는 내리고, 자연이 증거 인멸을 도와주고 있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내가 같은 상황에 빠졌더라면 최현수처럼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부터 시작해 사회적인 관계를 따져가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을 것 같다.

그런데 최현수는 그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지극히 개인적인 고뇌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든다는 거다. 그래서 유기가 개인적인 충동으로 묘사되는 것이 훨씬 더 와 닿았다.

이권우 : 장면을 세밀하게 나눠 볼 필요가 있다. 차로 들이받았을 때 세령이 이미 죽은 거라면 유기란 해결책을 선택한 것도 소설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그게 아니었다. 최현수가 제 손으로 아이의 목을 꺾어 죽이지 않았나.

조원희 :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거다. 도덕적, 사회적 차원에서 갈등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개인적인 판단만으로 누군가를 살인할 수 있는 상황을 읽는 게.

김용언 : 그 장면 하나 갖고 소설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아니다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독자로서는 모든 것이 사회·정치적 의미로 알레고리화하는 걸 오히려 더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에 대해 예민한 독자라면 굳이 알레고리가 없어도 작품 속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캐치해 낼 수 있는데, <7년의 밤>은 나름대로 그걸 캐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권우 : 어느 측면에서 그런 걸 캐치할 수 있을까?

김용언 : 바로 아까 장점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사회적 약자의 복수가 아니라, 가진 자의 '자력 구제 복수' 이야기라는 점. 판타지로 도피하지 않고 현실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작가가 사건을 다룰 때 남자 주인공들만을 내세우는 점과 그 남자들이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오영제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그가 딸과 부인한테 가하는 폭력이다. 굉장히 리얼하다. 기존의 신문 기사 따위에 나오는 '매 맞는 아내'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묘사가 아니라, 내가 정말 맞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최현수의 왼팔 마비 증세라든가 세령이를 죽일 때의 손의 악력, 또 오영제의 부인 문하영이 '목젖에 닿는 손'을 통해 자기 남편을 느끼는 장면 등, 남자의 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 않나. 여성 독자로서 남자가 여자한테 가하는 이런 식의 폭력에 주목해 봤는데, 이것 역시 어떤 시대정신의 일부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규칙이 불편한 문학, 규칙이 필요한 상업 영화

이권우 : 그러고 보니 <7년의 밤>엔 에로티시즘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폭력성은 상당한데…. 요즘 한국 영화가 에로티시즘을 (예전에 비해서) 포기하고 폭력성은 더욱 끌어안는 반면, 문학은 반대였다. <제리>(김혜나 지음, 민음사 펴냄)처럼 성적인 묘사가 중요한 작품이 주목받았다. 그런데 <7년의 밤>은 정반대다.

조원희 : 사실 나도 느낀 부분이다. 왜 그런지는 나 역시 묻고 싶은 부분인데. 사실 세령은 아주 성적인 대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작가는 결벽증적으로 그런 묘사를 피해가고 있다. 두 명의 아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저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섹스 하는 존재로 나온다. 그런데 그게 요즘 한국 소설들 경향에서 벗어난다는 건 몰랐다.

김용언 :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데, 작가의 전작도 모두 '남성들'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왜 남자들이 주인공이 되어야만 할까 생각해 봤다. 추측이긴 한데, 작가가 인터뷰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는데 그런 지점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었다. 최현수, 안승환, 현수의 아들 서원까지 굉장히 챈들러적인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아르 자체가 로맨스를 절대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권우 : 최현수는 '아버지 콤플렉스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되는 캐릭터다. 자기가 겪은 가족사적 불행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자기 부정의 의지가 강하다. 그러니 당연히 '성적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최현수에겐 삶을 어떻게 마감하는가에 관계없이 아들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 삶은 이제 끝장난 삶이니까.

그게 아버지 세대와 최현수 세대의 차이점이다. 아버지 세대는 자기 실패를 가족에게 폭력적으로 쏟아 부었는데 그걸 겪어낸 최현수 세대는 불행한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자기희생 정신이 있는 거다. 물론 지금도 가정에서 폭력을 저지르는 아버지는 많다. 그래도 과거완 양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작가가 한국 남성 사회를 상당히 면밀히 알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7년의 밤>에 아쉬움이 크다. 빛나는 요소가 드문드문 있는데, 그걸 잘 폭발적으로 엮어내지 못한 것 같다. 최현수는 현실감 있는데, 오영제는 이해가 안 된다. 관념형 캐릭터 아닌가?

조원희 :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을 설득되도록 그려냈다. 규칙을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권우 : 그런 규칙이 바로 문학 독자들에게는 불편하다. 인간의 삶이 규칙에 제한되는 게 아니니까. 또 (작품에서) 규칙은 보여선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벗어나지 못하고 틀대로 가버리니까 자꾸 불편하게 느껴진다.

조원희 : 상업 영화는 사실 그것과의 싸움이다. 관객들한테 규칙을 제시하고, 그걸 조금씩 깨면서 재미를 주는 거다. 그런 면에서 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앞서 말했듯 소설의 영화화는 씨앗을 나무로 키워내는 작업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방식이 다를 테니까. 영화화하기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상태로 잘 짜여 있고, 그래서 어느 부분을 생략하기 상당히 어렵다.

상업 영화, 장르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프레시안(최형락)
이권우 :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선 감독이 자기 각본으로 영화 찍는 경우가 없고 연출과 각본을 완전히 다른 직업으로 생각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할리우드는 한 개인의 상상력에 의존하기보다, 오랫동안 축적된 역량이 있는 시스템을 존중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면에 한국 영화는 (시스템적으로도) 한국 소설에 별로 빚지고 있는 게 없지 않나?

조원희 : 영화화 사례가 비율 면에서 적은 건 사실이다. 앞서 많은 한국 문학이 사소설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언급하셨는데,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작용한다. 심리 묘사가 많은 소설은 영화화하기 쉽지 않으니까.

김용언 : 외적인 요소도 있을 듯하다. 영화계에선 소설뿐 아니라 만화, 웹툰 등 엄청나게 외부 콘텐츠를 많이 산다. 다만 실현이 안 될 뿐이다. 엎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조원희 : 대한민국의 수많은 승자 독식 시스템 중, 영화계가 아마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일 거다. 1년에 80편이 만들어진다고 치면 그 중 그나마 돈을 버는 건 10편 안팎이다. 그 적자는 어디서 메울 수도 없는 거고. 영화 산업에 뛰어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굉장한 낭만주의자들일 수밖에 없다. 현실주의자들은 그 정도 낮은 확률을 가진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권우 : 그래도 1000만 영화, 일확천금에 가능성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조원희 : 아직도 있을지 모르겠다. (웃음) 그런 걸 노리고 뛰어든 사람들이 있긴 했는데 2006년 이후로 신화가 확 깨지고 많이 사라졌다.

이권우 :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할리우드식 '분업화'가 낫다고 보는가.

조원희 :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의 경우가 다르다. 둘은 굉장히 다른 장(場)이다. 예산 규모에서부터 현격한 차이가 난다. 흥행 압박이 적은 독립 영화의 경우 감독이 시나리오도 쓰고, 원한다면 미술이나 음악도 해 보고, 이렇게 자기 역량이 풍부하게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대로 상업 영화에선 감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권우 : 그렇게 되면 영화가 이미 성공한 콘텐츠를 흡수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 같은데, 그럼 어떤 소설들이 우선적으로 영화화 궤도를 타게 될까. 아까 영화화하기 좋은 작품은 많은 경우 장르 문학이라고 했는데, 영화가 갈구하는 장르 문학의 특징이 뭔지 다시 한 번만 복기를 해 보자.

조원희 : '편리'의 문제라고 본다. 사실 영화 산업은 제조업이다. 만들기 쉬워야 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아주 오랜 기간을 들여 '장인 정신'으로 접근해서 작품이 훌륭하게 나온다면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럴 여건이 안 된다는 거다. 기획 시작하고 회계 연도 넘어가기 전에 뭐가 있어야 (웃음) 투자한 사람들도 보람을 느끼는 거니까.

그렇다면 영화화하기 '편리'한 콘텐츠에 먼저 끌리기 마련일 것이다. 뚜렷한 캐릭터와 좋은 스토리텔링.

문제는 '스토리'가 아니다. 사실 <7년의 밤>도 스토리는 단순하다. 7년 전 살해 사건과 7년 후의 복수. 이 두 가지를 굉장히 흥미롭게 '텔링' 하지 않았나. 그런 미덕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그런 장점이 바로, 문학적 관점으로 봤을 땐 '인물이 전형적이다'라든가 '스토리를 말하는 방식이 뻔해'라는 비판받을 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영화계에서 화제가 됐다는 문학 작품들을 좀 봤는데, 한 번도 '재밌겠다' 싶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감독으로서 내 위치는 예술 영화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데뷔도 스릴러 장르로 했고, 장르 영화를 좋아하며 계속 그쪽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 입장에서 (소위 순수 문학 작품이) 매력적인 작품들이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7년의 밤>은 자극이 됐다.

영화는 교양 있는 특정인들을 위한 매체가 아니다. 특히 큰 흥행을 노리는 영화일수록. 1000만 명이 본 영화가 있다면 그 중 600만 명은 1년에 영화 한 편 보는 분들일 거다. 그런 분들을 상대하는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추구하는 고차원적인 세계관이라든가 인간에게 깊숙이 들어가려는 욕망보단, 뭔가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기능적인 측면에 끌리는 거다.

1년에 극장을 10번도 안 찾는 관객들에겐 어떤 이야기가 매력 있을까? 이런 걸 고민하며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대담을 마치며…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정리의 말씀을 부탁드린다.

조원희 : <7년의 밤>이 좋았던 이유 하나를 추가하자면 동시대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떤 시대에 읽어도 재미가 줄진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많은 한국 소설들이 동시대성은 갖고 있으면서도, 후대에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있었는데 <7년의 밤>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거창하게 '문학사에 남을 작품' 까지는 아니고, 통시성과 공시성을 동시에 갖는 몇 안 되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김용언 : 영화 쪽에서 1990년대 영화학도들은 왕가위, 이와이 슌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는데, 때문에 쓰레기 같은 모방작들도 잔뜩 나왔지만 반대로 놀라운 후배들도 많이 나왔다. 문학 쪽에 이 얘길 적용해 보면 '1990년대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수많은 국내 신진 작가들이 하루키의 진화나 성장과는 관계없이, 그의 특정 시점을 답습하는 게 참 싫었다.

그런데 차세대는 전 세대의 유산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잖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챈들러나 스티븐 킹을 읽으면 '넌 왜 오락적인 것만 좋아하냐'고 비웃음을 당할 정도였는데. (웃음) 사실 굉장한 작가들이지 않나. 그런 작가들을 자기 취향으로 했던 정유정이란 작가가, 그 소설들의 요소를 자기 식으로 소화해서 긴 길이의 묵직한 장편으로 낸 게 <7년의 밤>이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리고 요즘 작가들이 자기가 좋아했던 것들을 자양분 삼아서 어떤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권우 : 이야기의 주도권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가라타니 고진이 얘기했듯 새로운 '이야기'는 이제 영화에서 나올 것이다. 그런데 한국 문화 산업 구조의 특수성상 이야기의 주도권을 너무 빨리 영화로 넘기는 건 위험하다고 본다. 원래부터 영화는 상업성을 띨 수밖에 없는데다가 지금 한국은 (영화계엔) 대기업 자본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삶의 다양한 양태를 담는 이야기의 그릇으로서, 영화는 부적합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더 대중적인 동의를 얻고 있는 거라면, 그건 사소설적인 특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한국 소설은 여전히 개인적 경험에 갇혀있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우리 소설이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했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냈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항이 되었으면 좋겠다. 1970~80년대 선배 작가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삶에 대한 진정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좀 써 냈으면 좋겠다.

결국 문학이 영화 산업의 건강성에 기여하는 콘텐츠 제공자 역할을 하는 것과 별개로, 독립적인 자기 기본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본다. "영화화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그 얘기 자체로 진정성 있기 때문에" 영화 산업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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