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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 하는 아이들, 때리면 바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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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 하는 아이들, 때리면 바뀌니?

[親Book] 신수현의 <빨강 연필>

큰 아이가 4학년이었을 때 문방구에서 <프린세스메이커>라는 게임을 가져온 사건이 있었다. 엄마가 돈을 주기로 했다는 거짓말로 무마하고 외상으로 게임을 가져와 숨겨놓은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이것을 우연히 발견한 난 무척 화가 났다.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매 한 대 더 준다'는 속담처럼 엄격한 회초리가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다는 관념이 지배하는 문화권에서, 성실하게 배운 교육의 가르침대로 아이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하고 말았다. 아이를 때렸던 것이다.

양치기 소년은 혼자 너무 외로웠다.
양이 아니라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했다.
누군가 소년의 외로움을 알아주었다면
그의 말을 한 번만 더 믿어 주었다면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었다면
소년의 양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기를 다시 믿어주는 사람이다.


▲ <빨강 연필>(신수현 지음, 비룡소 펴냄). ⓒ비룡소
이 구절은 신수현의 <빨강 연필>(신수현 지음, 비룡소 펴냄)의 주인공 민호가 쓴 일기의 한 구절이다. <빨강 연필>은 올해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자신도 모르게 한 거짓말 속에 갈등하는 아이의 섬세한 내면을 잘 그려낸 성장 동화다.

빨강 연필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강 구두>를 연상시킨다. 카렌은 자기를 키워준 할머니가 교회를 갈 때 신을 수 있는 까만 구두를 사오라고 했지만 그만 빨강 구두를 사고 만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카렌은 까만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광택이 나는 빨강 구두의 유혹에 못 이겨 빨강 구두를 신게 된다.

그런데 빨강 구두를 신는 순간부터 카렌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카렌의 뜻과 상관없이 빨강 구두가 저절로 움직여 카렌을 끊임없이 춤추게 만든 것이다. 교회에서 시장터에서 카렌은 아무리 춤을 멈추려 노력해도 빨강 구두 때문에 춤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빨강 구두를 자신의 힘으로 벗지 못한 카렌은 결국 두 다리를 잘라내고야 만다. 그제야 평온을 되찾은 카렌은 빨강 구두의 유혹에 빠진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정숙하게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된다.

이 동화의 밑바탕에는 화려한 세상과 쾌락을 상징하는 빨강 구두에서 벗어나 욕망을 절제하고 검소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엿보인다. '빨강 구두는 나쁘다'라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카렌이 춤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지 않고 섣불리 다리부터 잘라버리는 내용이 참으로 잔혹하다. 한 번의 일탈 때문에 평생 장애란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카렌을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이가 없었기에 동화는 더욱 잔혹하게 느껴진다.

그에 비해 <빨강 연필>의 민호는 참 다행스런 경우이다.

어느 날 민호는 수아가 아끼는 유리 천사의 날개를 깨는 사건을 일으킨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유리 천사를 훔쳐갔다고 믿는 수아에게, 민호는 솔직하게 자신이 깼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던 민호는 다음날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근사한 빨강 연필을 발견한다. 빨강 연필을 집어 들고 수업 시간에 글짓기를 하는 동안 민호는 신기한 힘에 이끌리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관계없이 빨강 연필을 종이에 댄 순간 연필이 저절로 꿈틀거리면서 일사천리, 일필휘지 너무나 멋진 문장들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글짓기에 늘 두려움으로 짓눌려 있었던 민호는 난생 처음으로 선생님께 자신이 쓴 글 밑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게 된다. 세상에 맨얼굴을 들이대고 유리 천사처럼 투명했던 민호는, 비록 멋은 있지만 자신의 진실한 삶과는 거리가 먼 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빨강 연필의 위력이다. 민호는 "아버지와 즐거운 야구 놀이를 하고 엄마가 구운 맛있는 쿠키를 먹으며 주말이면 주말농장에 간다"고 썼지만 실제론 엄마와 아빠가 별거 중이며, 엄마는 쿠키의 행복한 향기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에는 뚱뚱하고 먹을 것만 밝히는 팬더가 등장한다. 이 팬더는 성 안에 구경을 간 어느 날, 우연히 거북이 대사부에게 용의 전사로 지목된다. 발차기도 못하고 용기도 없는 팬더를 믿어주는 이는 오직 대사부뿐이다. 팬더가 용의 전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아무도 믿지 못할 때, 복사꽃잎이 흩날리는 그늘 아래서 대사부가 세상을 하직하면서 마지막까지 "believe, believe"를 외치는 부분은 상당히 감동적이다. 팬더가 대사부의 믿음으로 자신의 힘을 스스로 깨닫고 용의 전사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감동적인 메시지도 전달해 준다. 아이의 마음속에 심어준 작은 씨앗을 믿고 격려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교육의 미덕이라는 것. 'believe, believe….'

팬더의 대사부처럼 민호의 엄마는 지혜로운 분이다. 민호가 쓴 '우리집'이 거짓임을 알지만 거짓말이 잘못됐다고 날카로운 도덕의 잣대로 민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또 전통의 가르침대로 오직 바르게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매부터 드는 경솔한 행위 대신, 민호의 엄마는 오븐을 사고 쿠키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런 엄마를 보며 민호는 자신의 거짓말을 돌아볼 힘을 갖게 된다.

고통

내가 가장 괴로울 때는 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다.
나는 거짓말을 쓴다.
사람들은 내가 쓴 거짓말을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칭찬받는 우수한 학생이 되었고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물론 엄마가 나를 부끄러워하신 적은 없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것과 자랑스러운 것은 완전히 다르다.


민호는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기회를 갖고 스스로 빨강 연필을 버린다. 오랫동안 별거에 들어갔던 아빠를 늘 원망만하고 살았지만 어쩌면 아빠도 혼자서 외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어른을 이해하며 한걸음 먼저 다가가는 성숙한 모습도 보여준다. 양치기 소년의 외로움을 이해해준 어머니와 선생님 덕분에 민호는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민호는 결국 수아에게 유리 천사를 깼다는 것을 고백하고 다시 천사의 날개를 되찾게 된다.

이것은 물론 동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들이 끝없이 믿어야 하는 것들 또한 아름다운 동화 속에 담겨 있다. 이것이 동화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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