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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실크로드, 당신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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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실크로드, 당신은 모른다!

[유라시아의 영웅, 실크로드로 '다시' 보다·1]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소장 엄구호)는 지난 4월 6일부터 5월 25일까지 총 8회에 걸쳐서 "유라시아의 영웅, 실크로드로 '다시' 보다" 시민 강좌를 진행했다. 이 강좌는 러시아·유라시아 전문 연구 기관을 표방한 아태지역연구센터가 고선지, 혜초 등 역사 속 인물을 통해서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를 재발견하고자 마련되었다.

<프레시안>과 아태지역연구센터는 10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이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의 글을 시작으로 매 강좌의 핵심 내용을 추려서 독자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준비해야 할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관련 기사 : "'빨갱이', '스킨헤드'의 나라? 美·中 견제할 새 파트너!")

교과서, 저작물, 언론 매체 심지어 백과사전에도 실크로드는 한낱 구대륙(유라시아)에서 로마와 중국 장안을 이어준 외통 장사길(오아시스 육로)로만 기술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한반도 같은 이른바 '주변국'은 이 길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오아시스 육로 하나만을 실크로드로 오해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사실 외국 학계도 진배없다. 이것은 이 시각까지 고집되어 오는 실크로드에 관한 통설이다. 이제 이 구태의연한 통설을 지양하고 역사적 사실과 시대의 요청에 걸맞게 실크로드를 새롭고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문명은 '모방성'이란 고유 속성에 의해 끊임없이 이동하는데, 그 공간적인 이동 과정이 곧 교류이고, 그 교류의 길이 바로 실크로드다. 따라서 실크로드란 한마디로 문명 교류의 통로에 대한 범칭이다. 그런데 인류가 이러한 문명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불과 120여 년 전 부터다. 그동안 여러 가지 연구 끝에 이 길이 후기 구석기 시대에 들어와서 인류가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트이기 시작한 이래 여러 확대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냈다.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연구 과정을 살펴보면,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개념마저도 이해의 범위를 확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길이 포괄하는 공간적 범위와 그 기능에 대한 인식이 점진적으로 심화됨에 따라 실크로드는 단선적(單線的)인 연장만이 아니라, 여러 가닥이 겹쳐져 있는 복선적(複線的)인, 내지는 씨줄과 날줄로 엉켜있는 그물처럼 망상적(網狀的)인 길로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간 실크로드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몇 단계를 거쳐 확대되고 심화되어 왔다.

첫 단계는 '중국-인도로' 단계다.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은 19세기 후반 3년간 중국을 답사한 후 5권으로 된 방문기 <중국>(1877년)을 출간했다. 그는 1권 후반부에 고대 중국 중원 지방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북 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이 중국으로부터 인도까지로 이어진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센'(실크로드)이라고 명명했다. 이리하여 '실크로드'란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 길이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둘째 단계는 '중국-시리아로' 단계다. 20세기 초 스웨덴의 스벤 헤딘과 영국의 오렐 스타인 같은 탐험가들은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지중해 동안의 시리아 팔미라에서까지 한금(漢錦, 한나라 비단) 유물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독일의 알베르트 헤르만은 1910년 이 비단 교역로를 시리아까지 연장하고, 선학을 따라 그 이름을 '실크로드'라고 재천명한다. 그런데 유물들은 주로 여러 사막에 산재한 오아시스에서 발견됨으로 일명 '오아시스로'라고도 불렀다. 실크로드사에서 보면, 이 길은 첫 단계의 길, 즉 중국-인도로의 단선적 연장이다. 오늘까지도 이 길이 마냥 실크로드의 대명사나 전부인양 오해되고 있다.

셋째 단계는 '3대 간선로(幹線路)' 단계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문명 교류와 그 통로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실크로드는 오아시스로 육로만이 아니라, 그 남·북방에 해로와 초원로가 동서로 병행되어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른바 3대 간선이다. 뿐만 아니라, 적어도 5개의 통로(5대 지선)가 남북을 세로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제 실크로드는 문자 그대로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얽히고설킨 그물망의 교통로임이 분명해졌다. 실크로드 개념의 확대 차원에서 보면, 앞 두 단계의 단선적인 연장 개념에서 벗어나 복선적이며 망상적인 개념으로 증폭된 셈이다. 그러나 실크로드 개념이 이렇게 몇 단계를 거쳐서 확대되어 왔어도 아직은 주로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이른바 구대륙에만 한정된 길이며, 이것이 지금까지의 통념이다.

마지막 넷째 단계는 환지구로(環地球路) 단계다. 앞의 통념대로라면 문명 교류 통로인 실크로드가 지구의 다른 한 부분인 '신대륙'까지는 이어지지 않음으로써 '신대륙'은 인류 문명의 교류권에서 소외당하고 말게 된다.

그렇지만 역사적 사실이 증언하다시피, 15세기 말부터는 '신대륙'으로 해로가 개통되었으며, 이 '태평양의 비단길'을 따라 구대륙의 비단과 도자기가 '신대륙'의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 낙화생, 담배, 해바라기 등과 맞바꾸는 '대범선 무역'이 일어났다. 이것은 문명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해로)가 5대주 6대양 전 지구를 아우르는 '범지구로'로 자리매김 되었음을 의미한다.

ⓒ프레시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실크로드를 오아시스로 하나로만 보거나, 구대륙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진부한 주장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아무튼 여태 이러한 주장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언필칭 아이러니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실크로드 이해에서 또 하나의 혼동되는 개념은 이른바 '신실크로드'다. 대체로 18세기 중엽까지는 전통적인 교통수단인 말에 의해 초원로가, 낙타에 의해 오아시스로가, 범선에 의해 해로가 운영되어 왔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의 덕분으로 1769년 니콜라 조제프 퀴노가 사상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목제 3륜차를 발명한 것이 계기가 되어 기차와 기선, 비행기라는 새로운 근대적 교통수단이 도입된다. 이제 지구는 육·해·공의 입체적 교통망으로 뒤덮이게 되고, 그에 따라 교류의 내용과 방도도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래서 18세가부터 오늘 21세기에 이르는 약 300년간의 실크로드는 그 이전의 전통적 실크로드와는 구별 지어 '신실크로드'라고 일컫는다. 요즘 흔히 말하는 '철의 실크로드'니, '경제 실크로드'니, '오일 실크로드'니 하는 것이 바로 이에 속한다.

실크로드에 관한 이해가 바로 설수록, 이 범지구적 길이 인류 역사의 전개에서 감당해온 역학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된다. 그 역할은 우선, 문명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문명의 발달은 교류에 크게 의존하게 되는데, 그러한 교류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가교 구실을 하는 공간적 매체가 필요하다. 그 매체가 바로 실크로드다.

다음으로, 실크로드는 세계사 전개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 길을 따라 일련의 세계사적 사변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으며,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이 역사의 지휘봉을 휘둘렀다. 이 길이 없었던들 세계사는 분명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을 것이다.

끝으로, 문명의 산파역은 이 길이 이루어낸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다. 원래 문명의 탄생과 발달은 교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교통의 불편은 문명의 후진을 초래하며, 교통의 발달 없이 문명의 창달이나 전파는 도시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명론의 원리가 실크로드사에서 그대로 실증되고 있다.

실크로드의 바른 이해에서 우리의 민족사 전개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이 길의 한반도 연장 문제다. 지금까지의 통설로는 구대륙 내에서 전개된 실크로드의 동단(東端)은 일괄해서 중국이다. 이를테면 초원로는 화북 지방이고, 오아시스로는 장안(시안)이며, 해로는 중국 동남해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서역 및 북방계 유물과 관련 기록은 일찍부터 한반도와 이들 지역 간에는 문물이 교류되고 인적 내왕이 있었음을 실증해준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이러한 교류를 실현 가능케 한 공간적 매체로서의 길이 있었을 진대,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을 관통한 실크로드의 동쪽 구간, 즉 한반도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밝혀질 때,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우리의 역사적 위상이 제대로 복원될 것이다.

우리는 고조선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연(燕)나라의 화폐인 명도전(明刀錢) 등 유물의 출토지와 <위서>, <구당서>, <삼국사기> 등 기록에 근거해 3대 간선의 한반도 연장을 고증할 수가 있다. 오아시스로는 경주에서 한성(서울)과 평양을 거쳐 압록강을 넘은 다음 종래 한·중 간의 접경지였던 영주(營州, 초양)를 지나 유주(베이징)와 러양(洛陽)에 이어 장안에 이르는 길(약 6800리)이다. 금성에서 로마까지는 약 3만6800리로서 하루에 100리씩 걸으면 꼭 1년이 걸린다.

해로는 크게 남·북방 2대 바닷길로 대별된다. 북방해로는 서해안에서 중국 산둥반도까지의 바닷길로서, 여기에는 연해로(우회로)와 횡단로(직항로)의 두 갈래가 있었다. 대체로 통일 신라 시대부터 개통된 남방해로는 서해안에서 중국 동남해안으로 직접 이어지는 사단로(직항로)다. 해로는 신빙성 있는 기록과 유물이 남아있어 비교적 명료하다.

그러나 초원로의 경우, 오아시스 육로나 해로에 비해 아직은 연구가 일천하지만, 몽골 초원이나 동북 초원 지대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유물과 광개토왕이나 장수왕의 북정 루트 등을 고려하면 역시 영주를 기점으로 내·외몽골 초원과 연결되는 초원길을 설정할 수 있다.

실크로드는 우리와 세계를 이어주는 길이다. 우리가 이 길 위에 발자국을 촘촘히 찍어놓을 때, 그만큼 우리는 세계와 가까워지고, 그만큼 우리의 위상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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