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국가 통제가 강한 나라라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획일성의 문제에 대해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규제가 심한 사회일수록 획일적인 기준이 강하고 획일적인 기준이 강할수록 다양한 소수의 삶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사회는 '다르면 죽는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다. 조금만 다르게 옷을 입어도 조금만 다르게 말씨를 써도 이상하고 수상하게 인식된다. 유행하는 트렌드에 맞춰가기 위해 가수 이름을 외워야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하고, 줄임말을 알아야 하고, 유행어를 이해해야 하고, 브랜드 옷을 사야하고 명품 가방을 구입해야 된다.
비슷한 정보를 알기 위해 연예 기사를 읽어야 하고 비슷한 신문도 구독해야 한다. 모두가 비슷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모두가 비슷해야 하는 나라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모두가 비슷해야 하는 사회에서 소수자로 낙인이 찍힌다면 또 얼마나 많은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학교 수업 시간에 '다수의 권리를 위해서 소수의 권리는 희생되어도 무방한가'를 놓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뜻밖에도 다수의 권리를 위해서 소수의 권리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학생이 많았다. 또 상당히 많은 학생이 소수자를 우리 사회의 기업가와 같은 부유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소외 계층에 속하는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참으로 부족하다.
▲<불편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창비 |
저자는 인권 문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영화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영화 속 이야기와 인권의 문제를 연결시킨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영화와 인권'을 엮어 강의를 했을 만큼 저자의 해박한 영화 지식은 딱딱하고 무거운 인권에 대한 주제를 흥미롭고 심지어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영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짚어내고 고발하는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도 뛰어나지만 영화에 대한 해석도 깊고 정확하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때로는 무심하게 지나치고 말았을 이면의 숨은 진실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긴다.
이창동이 만든 영화 <오아시스>(2002년)는 우리에게 널린 알려진 뛰어난 수작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와 사회에서 전과자로 낙인이 찍힌 홍종두(설경구)의 빛나는 사랑 이야기와 함께 전과자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포착하여 관객에게 보여준다.
공주와 종두가 사랑을 느끼며 그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들의 주변인에 의해 강간으로 오인 받고 종두는 경찰서로 끌려가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오아시스>를 보며 관객들이 장애인과 전과자의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적인 권리에 동정하고 분노하는 그 지점에서 저자는 <오아시스> 속에 감춰진 장애인 차별의 본질을 짚어낸다.
영화가 공주를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한' 장애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종두와 공주의 사랑이 강간으로 오인을 받았음에도 종두와 공주가 그들의 사랑을 인정받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무기력한 불구자'나 '불굴의 인간 승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가진 정상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이 장애인을 정상성에서 끝없이 비정상성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김두식은 또 다른 영화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2000년)에서 노동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수적인 탄광촌 마을을 배경으로 남자 발레리나를 꿈꾸는 빌리(제이미 벨)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백조의 호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성공한 남자 주인공이 무대 위를 날아오를 때의 마지막 장면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줬던 명장면일 것이다.
이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듯이 보수적인 통념이 강한 영국의 탄광촌에서 온갖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룬 빌리나, 가난 속에서 아버지와 형의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는 끈끈한 가족 이야기에 우리의 생각이 멈출 때 저자는 영화의 배경인 탄광촌에서 벌어지는 광부들의 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영화가 영국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마거릿 대처의 최대 성공작이라고 평가받은 전국석탄노동조합의 파업을 무력화시킨 이야기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와해되면서 노동자들의 공동체가 무너지는 슬픈 패배를 다루고 있는 점에 주목하며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의 이야기를 다루는 정치 영화임을 강조한다. 이 영화의 주제인 노동자들의 소외된 인권과 차별을 다룬 영화로 마크 허만의 <브래스드 오프>(1996년), 한국 영화 <밥·꽃·양>(2001년)을 엮어서 보여주며 <빌리 엘리어트>에서 다룬 노동 문제는 우리 현실의 노동자의 현실과 만난다.
이처럼 영화 이야기는 예술의 담을 넘어 사회 문제와 어깨를 건다. 그리고 저자의 해박한 배경 지식으로 사회 문제의 폭을 넓히고 역사와 문화를 통합하여 개인의 삶을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시킨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와 삶의 모순은 어떤 발전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다시 재정리된다.
저자는 이 책의 끝부분에 책에서 다룬 영화 목록을 부록으로 묶어 제시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그 목록만 가지고 있어도 다양한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훌륭한 수업 교재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 재량 시간에 좋은 영화와 심도 깊은 인권의 주제가 같이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수업이 되리라 확신한다.
요즘 학교에서도 청소년 인권은 단연 화두며 교육계의 쟁점이다.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청소년 인권을 위해 체벌을 금지시켰다. 그동안 교육계가 외면해왔던 청소년 인권도 문제지만, 체벌이 금지된 학교 중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오히려 '교사 인권'을 유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교사의 면전에서 심한 욕설을 한다든지 언행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이 생겨나면서 청소년 인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인권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게 된다. 교사의 인권과 청소년의 인권이 충돌되는 지점을 이용해 다시 획일적 통제 기제의 반작용이 고개를 들 수도 있는 상황을 저자는 책머리에서 미리 이렇게 정리한다.
"인권이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는 거야"
교사의 인권이건 청소년 인권이건 모두 소중한 것이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학생도 어른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일 무렵, 그는 다시 교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치마 길이와 머리 길이를 규제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적 목적이 위한 것인지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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