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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아닌 '그냥' 유시민의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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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아닌 '그냥' 유시민의 책을 기대한다!

[프레시안 books]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내가 처음으로 읽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가진 책은 임영일과 이성형이 엮고 옮긴 <국가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와 그 국가이론>(까치 펴냄, 1985년)이었다.

이 책은, "제1부에서는 자본주의 국가론의 사적 전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2부에서는 자본주의 국가론을 둘러싼 다양한 접근법과 논의들이 제시되고 있다. 제3부는 제2부와의 관련 하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 개입이 갖는 내용과 그 성격을 살피고 있다. 제4부는 종속이론과의 연관 속에서 제3세계의 국가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을 살피고 있다."

임영일과 이성형은 이러한 내용을 가진 책을 출간하게 된 까닭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가론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관심의 고조가 하나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서구의 이론적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섭취하고 이를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분석에다 원용하여 내면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들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하여 이 책은 당시 망라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다양한 필자들의 글을 골라서 수록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이나 지금 2011년이나, 아니 공자와 플라톤이 살았던 서기 전 5, 6세기나 '국가란 무엇인가'는 중대한 논제이다. 이 물음은 '현재 국가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가'에 유념하면서도 '국가는 어떠해야 마땅한가'라는 당위적 탐구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현실 정치에 관한 감각과 통찰을 겸비한 이론가가 가장 적절한 필자일 수 있는 영역이다.

▲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최근 출간된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 펴냄)는 1985년에 출간된 <국가란 무엇인가>와 많은 측면에서 다르다. 후자의 책이, 앞서 인용했듯이 "서구의 이론적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섭취하고 이를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분석에다 원용하여 내면화시키는 작업"에 대한 필요에서 출간되었다면, 전자의 책은 후자의 책 등을 읽으며 공부하기도 했을 한 청년이 "거리와 감옥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후 "아내와 함께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정치에 참여"하여 "좋은 대통령, 좋은 나라를 만들겠노라며 뛰어"다니기도 했고, "정치 활동을 접고" 살다가 "2009년 국민참여당 창당으로 정치 무대로 돌아와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국가를 꿈꾸며 일"하는 가운데 "국가에 대한 고전을 탐독하면서 훌륭한 국가는 무엇보다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그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를 독자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쓴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 정치를 겪은 이가 고전을 통해 현실 정치를 해석해보려 한 2차 저작이다. 내용의 탁월함이나 어리석음을 떠나 한국 사회에서 국가에 관한 논의가 얼마나 "내면화"되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독자에게 일종의 뿌듯함을 안겨주는 책이다.

"국가에 관한 고전을 탐독"했다고는 하나 유시민에게는 1차 저작을 읽고 분석하는 능력은 없다("플라톤의 원전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나는, 포퍼가 쇼를 차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퍼의 말을 빌려 플라톤의 '현자 통치론'을 소개한다."). 그러나 그것을 자각하고 자신이 이해한 바를 과장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서술이 큰 오류 없이 독자의 눈높이에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가 심화 독서를 전제하고 있기만 하다면 이 책은 분명 국가에 관한 입문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 목차만 일별해보아도 이 점이 드러난다. 홉스, 마키아벨리, 스미스, 루소, 밀, 로크, 소로, 마르크스, 플라톤, 맹자, 트라시마코스, 피히테, 톨스토이, 르낭, 포퍼, 하이에크, 베블런, 아리스토텔레스, 니버, 칸트, 베버, 베른슈타인 등의 이론가, 국가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민주주의, 자유지상주의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들만 보아도 '입문'의 성격은 충분하며, 이 논제들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이나 집단과 연계되어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적어도 한번은 읽어볼 만한 의욕이 생겨난다.

물론 유시민의 공부가 진척되지 않아 '1980년대의 암기식 사회과학 세미나'의 잔해가 그대로 노출된 부분도 있다.

"유물변증법에 따르면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은 관념에 우선하며 관념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이것은 관념론과 맞서는 유물론의 핵심 명제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의 본성은 운동과 변화이며, 그 운동 에너지는 사물 내부에 통일되어 있는 대립물의 투쟁이다. 고정되어 있거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것이 형이상학과 대립하는 변증법이다." (76쪽)

'소련 교과서'의 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이런 것들을 스스로 알아서 고치려면 공부를 좀 더 해야 하니 여기서 무엇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초고를 꼼꼼하게 검토하여 논리의 비약이 있거나 서술이 불명료한 부분을 교정하고 보충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셨"던 편집자들이 애초에 삭제를 요청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유시민은 "책을 쓰면서 정치인의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즉 저자는 "정치학자 또는 지식인으로서가 아니라 '악마성이 내재한 국가 폭력'과 관계를 맺고 '그 폭력이 가져오는 특수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규정했으므로 저자는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대중의 존경과 믿음을 받는 길이 바로 연합 정치에 있다. 연합 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없다"와 같은 어이없는 '정치적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고 2011년 5월 현재 "국민참여당 대표"인 저자에게는 이러한 정치적 입각점과 행위는 당연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과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의 견해를 가다듬을 필요는 없다. 나는 실천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견해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대한 이 촌평은 '정치인 유시민이 쓴 책'-그리고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 말 그대로 그 의의를 밝혔을 뿐이다. '그냥 유시민'의 다음 저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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