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든 책이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었다. 민음사에서 두 권으로 나왔는데 다니던 회사를 옮긴 뒤 새 직장을 얻기까지 두어 달간 여유가 생기면서 씨름하고 있던 참이었다. 주필이 "그 책의 번역판이 나왔나"라며 고개를 갸웃하기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한 일이 있다. 아, 물론 책 자체의 존재에 자신 있게 답한 것뿐이었다. 어찌어찌 해서 책을 읽어내긴 했는데 공부가 얕아서, 그리고 조금은 번역의 문제가 겹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책 읽기 전이나 후나 세상을 보는 눈이 거의 달라진 바가 없다는….
▲ <불량 사회와 그 적들>(김두식 외 지음, 알렙 펴냄). ⓒ알렙 |
포퍼는 자신의 책에서 전체주의 비판에 무게를 두면서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한 사회를 위한 틀을 제시했다. 비판 받지 않아도 좋은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란 용인되지 않고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이 책은 바람직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선 포퍼의 책과 같지만 그의 책이 철학적이고 비판적이라면 이 책은 이해하기 쉽고 대안 제시에 무게 중심을 두려했다는 점이 다르다.
'불량 사회'. 열린 사회와 분명 대척점에 있는 사회를 꼬집는 말이다. 제목이야 전적으로 편집자의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전복의 대상이 아니라 개량의 대상이 될 만한 사회를 일컫는다는 인상이다. 도대체 어떤 사회가 불량 사회일까. 국민 대부분이 꼬집어 말할 수 없을지라도 현재 우리 사회가 '우량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느끼기에 책을 펼치면서 기대감은 커진다.
<헌법의 풍경>(교양인 펴냄), <불편해도 괜찮아>(창비 펴냄) 등의 김두식은 우리 사회에 "사탄의 시스템"이 만연했음을 지적하며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그가 말하는 사탄의 시스템은 비정규직이나 교육 문제처럼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바꾸려고 엄두도 못 내는" 제도이자 "평범한 사람을 학살의 손발로 만드는" 절대적인 무엇이다.
몇 년째 책 읽기 운동을 펼쳐 온 도정일은 한국을 "좀비의 나라"라고 불렀다. 그는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기피하고 혐오하는 사유의 정지"에 빠져 있다면 그 원인으로 네 가지 바이러스를 들었다. 약자 도태-승자 독식이라는 "밀림주의 바이러스",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장 만능주의", "쾌락 지상주의"와 기성품으로 된 지식 정보와 정답 찾기에 몰두하는 "착각 바이러스"가 그것이다.
문제점 파악과 그 원인 진단이 제대로 되면 해결의 첫 단추는 잘 꿴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진단은 단순한 수사(修辭)로 흘려들을 게 아니라 곱씹어 볼 만하다. (물론 이들 두 사람만이 이런 진단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책에 실린 13명의 '좋은 시민'의 발언에는 크든 작든 이런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책에 실린 좋은 시민의 면면은 화려하다. 적어도 비판적 안목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보거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 앞의 두 사람 말고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펴냄)의 장하준, <진보 집권 플랜>(오마이북 펴냄)의 조국,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펴냄)의 엄기호, <리얼 진보>(레디앙 펴냄)의 정태인 등 지난해 한국 사회를 달궜던 책의 저자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제시하는 '우량 사회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이 대목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세상을 단칼에 좋아지게 하는 비법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더욱 이들의 목소리엔 신뢰가 가긴 한다. 조국은 진보·개혁 진영을 향해 권력을 잡아서 세상을 바꾸려는 정당의 구실을 하라고 권한다. 그러기 위해 '통합+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문성근이 주도하는 '100만 민란 프로젝트'의 의미를 평가하고,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에 노무현 정부의 과(過)를 인정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춰 선다. 조국은 아웃사이더를 자임한다. 정치인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그리고 헌신적인 진보 인사들을 위해 그렇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분이지만 아쉽다. '그림'만 그리고, '도가니'만 끓이는 데 그쳐서다. 이런 아쉬움은 '사탄의 시스템을 직시하고 그에 맞서 싸우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김두식에게서도 느껴진다. 그는 싸우는 방법에 관한 것은 본인의 능력 밖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런 면에선 장하준의 발언에서 오히려 정치한 논리와 진정성을 만날 수 있다.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한 자리의 토론을 나눈 것은 책의 판매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한다-인터뷰에서 그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비판을 받는 자신의 주장을 유지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와 중복되는 감도 적지 않지만 비판에 맞서는 그의 자세는 보기 좋고, 설득력도 있다.
무엇보다 "주어진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대안이 없습니다. 힘 있는 이들이 규칙을 만들어 놓고 다른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대안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을 하면서 자꾸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대안이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죠." 이런 말 어떤가. 공감이 가지 않는가.
아니면 "사회 개혁이라는 게 원래 이렇습니다. 간단히 될 것 같은 일만 떠올리면 개혁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하고 어려워 보여도 장기적으로 그것을 해나가려고 노력을 해야 개혁이 이루어지지요. 그래야 바꾸지 않을 것도 바뀝니다." 같은 이야기, 그 자체로 속이 시원해진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나 글을 모은 책은 그 자체로 장단점이 있다. 잘 고른 글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단점으로는 자칫하면 내용이 중복되거나 모순되기도 하고 늘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터뷰어의 내공으로 그런 단점을 상당 부분 극복해냈다. 인터뷰 대상자의 책을 꼼꼼히 읽고 적절한 질문을 통해 독자의 궁금증,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풀어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뤘으면서도 차분하고, 사변적이지 않다. 그러나 정치 부문에서 일부 토론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치되거나 언뜻 가능성이 옅은 대안이 실려 불편한 감을 준다.
거듭 말하자면 문제를 바로 보는 것이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일반인들이 막연하게 느끼는 우리 사회 이슈들을 다각도로 짚었다는 점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의의 있다.
굳이 토를 달자면 '좋은 시민'말고 '깨어 있는 시민'들이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못한 필자 같은 장삼이사들의 불편한 심정을 헤아리려 했다면 그 편이 더 외연을 넓힐 수 있지 않았을까. 뭐, 어쨌거나 책에 실린 인터뷰이들 같은 '불량 사회의 적'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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