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드 브란튼베르크의 <이갈리아의 딸들>(노옥재·엄연수·윤자영·이현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은 여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여성이 남성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그런 사회에서 남성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는지를 그렸던 소설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 맨움해방주의자인 노총각 올모스는 맨움 종속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맨움들은 무수한 저항을 했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맨움이 권력을 쥐었던 사회가 있었지. 문제는 우리가 모권제 사회에 살기 때문에 그런 저항이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다는 거야. 역사가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쓰지 않지. 역사가들은 움들이니까. 인류학자들 또한 아무것도 쓰지 않지. 인류학자들도 움들이니까. 그게 이유야. (…) 만일 우리가 전 시대에 살았던 맨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보통 주석을 보거나 행간을 읽어야 해." (227~228쪽)
그러고 보니 누가 한 말인지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란 남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일종의 말장난이었는데, history를 발음이 같은 he-story로 읽은 것이다. 올모스의 말에서 맨움을 여성으로, 움을 남성으로 바꿔 읽으면 딱 이 얘기다. 역사(history)는 남자들의 이야기(his story)일 뿐이다!
그래서 남성 사가들에 의해 행간에 가려지고 왜곡됐던 여성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her-story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실제로 여성의 신화를 발굴해내고, 역사적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등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현백과 김정안의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동녘 펴냄)도 그러한 작업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의 공헌은 수유와 베 짜기뿐이다?
▲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정현백·김정안 지음, 동녘 펴냄). ⓒ동녘 |
그러고 보면, 철학자들 중에서도 은연중이든 노골적이든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여성은 불완전한 남자였고, 칸트에게 있어서는 이성을 적절히 발휘할 수 없는 감정적인 존재였으며, 헤겔에게는 공동체의 아이러니였다. 쇼펜하우어는 여성을 혐오했던 철학자로 유명하다.
정말 그런가?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들은 "정상적인" 발달의 길을 따른다고 해도 초자아를 제대로 형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발달의 길에서 벗어난 여자들은 불감증이 되거나, 히스테리 환자가 되거나, 미친 여자가 된다. 열등한 채로 살거나 미치거나.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이 두 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가 그만큼 여성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는 여성들을 타자화함으로써만 유지된다. 그런 사회에서 여성들은 열등한 존재로 남아 있어야만 "정상"인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불만을 갖는 여자들은 미친년들이거나 마녀다. 여성들의 히스테리는 어찌 보면 몸으로 드러난 무의식적 저항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현실에 순응하거나, 미쳐버리거나, 이 두 가지 선택지에만 놓여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는 두 가지 길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그 길들 사이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삶의 조건과 그 안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실상을 추적하여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성 억압의 기원을 정확하게 추적해 낼 수 있을까? 엥겔스가 말하는 "여성들의 세계사적 패배"는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인가? 그 이전의 사회상을 발굴해낼 수 있다면 페미니스트들이 꿈꾸는 사회를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을까?
1장 <여성 억압의 기원을 찾아서>에서는 이런 물음을 안고 원시·고대 사회 여성들의 삶을 추적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모권제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모권제 사회가 의미하는 바가 앞서 말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갈리아'와 같은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물론 사회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계가 구성되는 모계제 사회는 존재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 남성들이 역사 이래 여성들이 받아왔던 것과 같은 정도의 억압을 받지는 않았고, 모계제 사회라 하더라도 오늘의 시각에서 보자면 여성들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중세를 거쳐 근대로 넘어오면 여성 이미지에 대한 왜곡과 평가 절하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기독교의 영향으로 여성의 이미지는 성녀 아니면 마녀라는 식으로 이분화 되었다. 그러나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거나 저항적인 움직임을 보인 여성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당시 시대적 제약 안에서도 여러 활동을 했던 여성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물론 오늘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 여성들이 과연 여성주의적 의식을 갖고 있었는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적 한계에 의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주류 역사에는 가려졌지만 중세의 이단 운동, 근대 태동기 시민운동에 기여한 여성들이 존재했다. 저자들이 발굴해 낸 그 여성들은 시대적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했던 사람들이고 한계를 극복해보려 했던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History, Her-Story!
"지식이란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한 것이 아니다. 지식은 언제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권력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다."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사라 밀스 지음, 임경규 옮김, 앨피 펴냄), 156쪽)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권력-지식 연계에 의해 유통되는 담론의 산물임을 폭로한 바 있다. 끊임없는 판단과 검사를 통해 인간 행동의 객관화, 자료화가 달성되며, 인간 자체에 관한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여러 인간 과학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푸코의 주장이다.
또 <광기의 역사>에서는 이성중심주의 자체가 하나의 특정한 담론 체계로서 다른 담론 체계를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억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성의 시대에 들어서서 비로소 이성과 비이성이 질적으로 명쾌하게 차별화되었으며, 이성의 우위 앞에서 광기(또는 이성에게 불가해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이성의 이념은 그 자체가 특정한 시대의 권력-지식 연계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이며, 이성과 비이성의 구별은 구별이 이루어진 당시 사회의 지배 블록을 축으로 형성된 담론 형식의 결과로 간주되어야 한다.
앞에서 인용한 <이갈리아의 딸들>의 올모스 역시 푸코의 견해와 유사한 말을 했다.
"우리가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거의 없고, 움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주 많이 쓰여 있지.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엇을 써야 할까? 우리 자신의 저항도 잊히지 않을 거라 어떻게 보장하지? 우리가 뭔가를 쓸지라도,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보존될 수 있을 거라 어떻게 보장해? 이전 시대에도 맨움들이 그들의 연대기를 썼지만 출판되지는 않았어. 무엇을 출판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움이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결정하는 것도 움이지. 역사는 움들이 쓰니까." (233쪽)
여성 운동의 결과이든, 사회의 필요에 따른 것이든, 오늘날 여성들의 지위나 상황은 과거의 여성들에 비해 한결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법적 평등이 보장되어 있고, 사회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의 사회를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규정할 수 없다면, 페미니즘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것이 아닌가? 보편적 여성의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는가? 인종, 계급, 연령, 지역, 종교 등 여성들 내부에도 다양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에서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사회 구조나 지식 체계 등이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의미 체계 안에서 여성성에 대한 담론이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중심적인 의미 체계 그 자체를 문제 삼는다.
여성사를 발굴하는 작업이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사를 발굴하는 작업은 남성 중심적인 편견 속에서 여성성에 대한 관념이나 실제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왜곡되고 평가 절하되어 왔는지를 드러내주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것은 남성 중심적인 의미 체계를 변형시키기 위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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