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 아닌 길거리에 있었다. 작업복 대신 투쟁 조끼를 몸에 걸치고, 자동차를 만드는 일 대신 공장 복귀를 외쳤다. 길거리가 생활 터전이 돼버린 것이다. 입고 있는 옷들도 마치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어두운색으로 통일돼 있었고, 금속노조를 상징하는 감색 조끼는 입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지는 내 몸의 일부가 돼 버렸다.
이러한 시간이 벌써 4년이나 흘렀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왜 당신은 항상 검은 옷만 입고 다녀? 밝고 환한 옷을 입으면 안 되는 거야?"라고 질문을 할 정도다. 가정을 뒤로하고 길거리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나는 "밝은 옷 입고 다니면 빨리 지저분해지잖아"라며 애써 에두른다. 하지만 우리 몸에 걸쳐 있는 어두운 옷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방증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부~륵, 부~륵' 자동차 조립 공구인 임팩트 소리는 오랜만에 입어본 작업복과 찰떡궁합이다. 왜 우리는 이러한 소리를 뒤로하고 허구한 날 경찰 방패가 담벼락이 되고, 하늘을 지붕 삼는 생활을 해야만 했을까. 많은 사람이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그 지긋지긋한 공장에 다시 들어가려 하느냐"라고 한다. 당사자가 아니고,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다. 정리해고란 이름으로 한순간에 생존 터전인 일터를 잃어야 했고 그 고통으로 24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지만, 쌍용차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해고 노동자들에게 그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데 어찌 정든 일터, 쌍용차 현장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투쟁 조끼가 아닌 작업복을 입고 일하고 싶을 뿐이다.
4년 만에 조립해본 자동차. 그 손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낚시꾼은 고기를 낚아 올릴 때의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해 낚시를 한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도 4년 만에 임팩트를 잡고, 드라이버를 쥐면서 느꼈던 손맛이 낚시꾼의 손맛 못지않았다. 여전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을 갈망하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4년 만에 조립해본 자동차, 우리의 손맛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고, 우리가 있어야 할 곳도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임을 확인시켜줬다. 그래서 더더욱 "공장 복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름 하여 'H-20000' 프로젝트.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자동차, 2만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자동차를 2만 명의 후원으로 만들었다. 새로운 자동차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동차. 부품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긴 마음을 모아 희망과 사랑이라는 자동차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 속에는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 있고, 우리는 그 뜨거운 마음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는 7일 금요일, 2만 명의 마음이 모인 자동차를 공개한다. 해고 노동자의 손에서 4년 만에 만들어진 자동차. 그 환희에 찬 광경을 몇몇만 느낀다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2만 명의 마음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동차처럼 이날도 수만의 마음들로 서울 시청광장을 가득 메우자. 그러면 정말로 행복할 것이다.
6월 7일은 아내와 아이들과 애인과 손잡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자동차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날.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공장 복직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던 것처럼 여러분을 기다리겠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레디앙>, <참세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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