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7)는 한민족의 삶을 상징하는 숫자다. 우선 7은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강원도 아리랑의 가사 중에 "칠성당에 아들 딸 낳아 달라고…"가 있다. 옛사람은 삶의 시작이 (북두)칠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애를 낳았을 때도 7일이 일곱 번 즉 49일이 될 때까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49일 이전에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으면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깐다. 칠성판을 통해서 하늘의 문을 통과한다고 보았다.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인 천추성 쪽으로 머리를 놓고 일곱 번째 별인 요광성 쪽으로 다리를 향하게 하여 땅에 묻었다. 상두꾼이 방울을 흔들며 묘지로 인도한 것도 하늘의 자손이 땅에 들렀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 선조는 하늘과 땅을 자신의 동반자, 혹은 삶의 거울로 여겼다. 특히 그들은 천문을 살핌으로써 하늘의 진리가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신약>의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체화했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북두칠성은 천체 운행의 기준점이었다. 옥상에 올라가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축으로 도는 무수한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옛사람은 이런 북두칠성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해, 그것이 사계절의 질서 즉 인간사의 질서를 주관한다고 여겼다.
<동의보감>에서 북두칠성을 놓고 "하늘은 북두칠성을 기틀로 삼고, 사람은 마음을 기틀로 삼는다"라거나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은 모두 북두칠성의 힘으로 돌린다"고 말하는 것은 옛사람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두칠성을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집행하는 별이라는 뜻의 '칠정(七政)'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음양오행도 북두칠성과 관계가 있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운행을 주관한다고 여긴 옛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일곱 개의 별을 꼽았는데, 그것이 바로 해, 달,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일월오행'이고, 일월이 음양을 상징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사실상 '음양오행'을 가리킨다.
이런 북두칠성은 우리 전통 곳곳에 녹아 있다. 윷놀이도 한 예다. 29개의 점 중 중앙의 1개를 제외한 28개는 28수 별자리를 나타낸다. 28개의 점은 네 방향으로 각각 7개의 점으로 나뉘는데. 이 숫자 '7'은 북두칠성을 그린 것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자모의 수도 28개인데 이 역시 칠성을 사계절에 재배치한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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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북두칠성에서 유래한 49일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옛사람은 북두칠성의 정기로 태어난 생명이 칠성의 첫 번째 별에서 일곱 번째 별까지 돌면서 삶의 본래 면모를 비로소 찾는 것으로 여겼다. 또 죽은 사람 역시 칠성의 인도에 의해서 생전에 집착했던 온갖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여겼다.
49일 동안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 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얽혀 있었던 관계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며 성장하는 모습이야말로 이런 옛사람이 생각했던 북두칠성의 통과 의례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다. 몇 회 안 남은 드라마 <49일>이 시청자로 하여금 북두칠성의 지혜를 한 번쯤 되새기게 하는 속 깊은 결론으로 끝나길 바란다.
황사 때문에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는 하늘이, 마치 삶을 성찰하지 않고 무조건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오늘은 황사가 걷힌다니 한 번쯤 북쪽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아보면 어떨까? 옛사람들이 그랬듯이 북두칠성을 하나씩 헤아리면서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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