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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없이 생떼? 나라 꼴 이 지경인 게 누구 탓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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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없이 생떼? 나라 꼴 이 지경인 게 누구 탓인데!

[프레시안 books] 박용남의 <꾸리찌바 에필로그>

원자력 에너지, 식량 자급률, 지구 온난화 등을 비롯한 눈앞에 산적한 온갖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하다 보면 꼭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비웃는 냉소와 삐딱한 자세는 필수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대안이 뭐예요?" 만약 그 대화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진다면 이런 얘기도 덧붙여진다. 원자력 에너지의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사람에게는 "전기 없이 살아보시죠?" 식량 자급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먹을거리 수입을 안 하면 만날 쌀만 먹고 살게요?" 등….

누군가의 입에서 '대안'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고, 활기를 띠었던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먼저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항변을 하지만 이미 이완된 분위기는 회복 불능이다. 결국 대화는 흐지부지되고, '대안신공(神功)'으로 좌중을 압도한 이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도 시민단체도 '대안 강박증'에 걸렸다. 대안을 말하지 못하면 정당한 문제제기도 못할 상황에 처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툭하면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딱지가 붙여지면 생떼만 쓰는 집단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대안을 언론과 시민단체가 말해야 하는가?

폭력을 독점하고, 세금을 거둬들일 권한을 행사하도록 시민이 용인한 정부야말로 온갖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고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그런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라도 내놓는 게 정부의 할 일 아닌가? 문제를 제기한 측이 대안도 내놓아야 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無정부!)을 도대체 언제까지 용납해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박용남의 <꾸리찌바 에필로그>(서해문집 펴냄)를 읽었다. 한 시민운동가가 10년 이상 혼신의 힘을 다해 꼼꼼히 조사하고 치열하게 연구한 온갖 대안을 줄을 그어가며 읽다 보니 갑자기 분통이 터졌다. '아니, 도대체 이 정부는 어디까지 알려줘야 한다는 말이야!'

희망의 도시 vs 절망의 도시

▲ <꾸리찌바 에필로그>(박용남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박용남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1년 1월, <꿈의 도시 꾸리찌바>(녹색평론사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은 당시만 하더라도 지구 반대편의 덩치 큰 빈국으로만 알고 있었던 브라질에 '도시의 미래'를 예고하는 '희망의 도시' 꾸리찌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도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 버스 교통 개혁의 모델로 삼으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등이 이 도시를 다녀왔다. 꾸리찌바 시도 "지난 10년 동안 한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시찰단을 맞았다"고 밝힐 정도다. 그러나 정작 이 도시를 국내에 소개한 박용남은 이런 관심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일부 사람들은 꾸리찌바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 즉 도시 관리 철학과 행정의 원칙은 배우지 않고, 단순히 꾸리찌바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거나 맹목적인 비판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이들 대다수는 불과 이틀에서 닷새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현지를 방문하고 마치 꾸리찌바 전문가가 된 것처럼 행동했죠." (89쪽)

꾸리찌바가 소개된 지 10년이 된 지금 한국 도시의 모습을 보면,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꾸리찌바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낳는 도시 대중교통 모델을 제시했음에도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은 물론이고 용인, 의정부 등 전국의 도시에서 지하철, 경전철 등과 같은 감당할 수 없는 도시 철도 사업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하도 참담해서 헛웃음만 나온다. 총 7236억 원을 들여서 2009년 6월 개통한 인천지하철 1호선 송도국제도시 연장선의 상황을 들어보자.

"6개 역사 중 국제업무지구역과 센트럴파크역 등 일부 역의 경우 이용객 수가 시골 버스 정거장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하루 평균 160~245명이 이용한 국제업무지구역은 개통 후 7개월간 하루 평균 8만3000원의 운송 수입을 올렸고, 2010년 들어서도 16만 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에요.

(…) 저도 작년 10월 중순경에 이 역사를 방문하고 아주 깜짝 놀랐어요.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제가 지금까지 본 지하 역사 중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후 3시경의 낮 시간대이기는 하지만 이용자가 그렇게 적은 역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죠." (99쪽)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면서 '대안' 타령을 하는 이들이 무슨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한 시민운동가가 지구 반대편까지 쫓아가서 대안을 마련해 와서 10년간 국토해양부, 환경부, 지방자치단체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500회 이상의 강연을 했지만, 오히려 정반대로 움직이는 정치인, 공무원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희망의 리더십 vs 허망의 리더십

박용남이 '도시 혁명'의 조건으로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꾸리찌바의 변화를 이끈 자이메 레르네르, 콜롬비아 보고타 시장을 지낸 엔리케 페냐로사 등을 소개하면서 주민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도시를 창조할 리더십을 요청한다. 그런 리더십은 지방자치단체장을 꿈꾸는 한국의 리더십과는 천지차이다.

"자이메 레르네르는 우리나라의 단체장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도시는 문제가 아니고, 문제의 해결책이다"라고 믿는 레르네르는 예산에서 뒷자리 0을 하나 뺄 때 창의성이 시작되고, 0을 두 개 빼면 더욱 좋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리고 도시 문제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므로, 예산도 문제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103~104쪽)

실제로 레르네르는 200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전역을 둘러보고 나서 "당시 환율로 약 3000억 원만 있으면 서울 전역의 교통 체계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레르네르의 확신을 보자면, 지금 한국의 리더들에게 없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풀 대안이 아니라, 의지가 아닐까?

당장 박용남이 이 책에서 꾸리찌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등의 예를 들며 소개하는 온갖 대안은 서울, 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대전, 대구, 부산, 광주와 같은 대도시 더 나아가 전주, 목포, 진주 등과 같은 중소 도시에서 곧바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는 브라질의 꾸리찌바를 놓고 "선진국은 역시 달라" 하는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한국의 대도시, 소도시와는 규모가 다르잖아!" 이런 핑계도 궁색하다. 꾸리찌바는 인구 약 185만 명의 대전(약 150만 명)보다 다소 큰 대도시이다. (꾸리찌바의 위성 도시까지 염두에 두면 인구는 약 326만명이다!) 또 생태 도시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는 인구 약 22만 명의 전형적인 중소 도시이다.

지금, 구명정을 준비하자!

박용남은 이 책에서 경제 위기, 기후 변화, 석유 부족 등의 3중고를 극복하기 위한 도시 혁명의 시급함을 역설한다. 혁명의 수단은 여러 가지다.

외부로부터의 경제 위기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지역에 뿌리를 박은 경제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시민의 일상생활을 생활협동조합이 지탱하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나 시민의 상호부조에 기반을 둔 '지역 화폐'가 활성화된 영국의 레스터는 경제 위기가 닥쳐도 시민의 삶이 해체되는 일은 겪지 않았다.

태양 에너지와 같은 지역 에너지에 기반을 둔 프라이부르크는 설사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나더라도 전기를 제한 공급해야 하는 상황은 피할 것이다. 또 지역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구조가 마련된 곳이라면 외부 충격으로 먹을거리 공급이 제한되더라도 최소한 배를 곯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삶이 자동차 대신 저렴하고 효율적인 대중교통에 맞춰져 있는 도시라면 설사 석유 부족 사태가 오더라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시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자전거인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독일의 뮌스터, 덴마크의 코펜하겐 같은 도시와 자동차를 타지 않으면 슈퍼마켓도 갈 수 없는 미국의 도시에 동시에 석유가 끊긴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를 모색 중이다. 향후 25년 내에 석유, 천연가스 소비량을 50%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미국의 포틀랜드도 한 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포틀랜드 시민의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변화는)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의 관섭 없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연료 사용량을 줄여서 석유 의존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지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은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10쪽)

이제 대안 타령에 주눅 들지 말자. 대신 이 책을 읽고서 조용히 위기의 순간을 대비하자. 배가 침몰할 때, 미리 구명정을 챙겨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의 목숨까지 구하는 법이니까. 설사 그 이웃이 얄밉게 "대안이나 내놓으시지!" 하고 지청구를 놓았던 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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