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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흑인이 '탐폰'된 슬픈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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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흑인이 '탐폰'된 슬픈 사연은…

[프레시안 books] 요네하라 마리의 <차이와 사이>

과거에 한 명을 인터뷰하기 위해 사진가를 제외하고 여섯 명이나 한 자리에 앉은 적이 있었다. 두 명은 인터뷰 대상자와 그의 매니저 비슷한 분, 두 명은 나와 다른 기자, 나머지 두 명은 통역사였다. 그중 한 명은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어 들려주었다.

그럼 한 명은? 수화 통역사다. 인터뷰이는 청각 장애를 가진 일본인 영화감독이었다. 우리의 질문이 일본어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손말로 전해지는 광경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편리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수화가 전 세계 공통이라면? 지금 두 번의 통역을 거쳐 느릿느릿 대화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학창 시절 영어 때문에 머리를 싸맬 때마다 바벨탑은 왜 무너뜨렸냐고 공연히 하늘에 화풀이를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실제로 은근히 많은 이들이 수화가 각 언어별로 고유하게 만들어져 있단 사실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해 둔감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국인이 고개를 끄덕일 때 그리스에선 그것을 'No'로 받아들인다거나, 친근하게 손등으로 '브이(V)' 자를 그렸다가는 유럽 사람들 뒷목 잡게 하는 등 비장애인의 보디랭귀지도 문화권마다 전혀 다르다. 하물며 수화는 음성 언어를 보완하는 보디랭귀지가 아니라, 구조와 문법 측면에서 완벽한 자연 언어다.

그럼에도 다른 언어 때문에 피곤할 때면 수화가 전 세계 공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영어 따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 방사능 비까지 내리는 미래 사회가 되도록 인류는 여태까지 만국 공통어 내지는 고성능 번역기를 안 만들고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통번역 갖고 이 정도일진대, 직업으로 두 언어를 해석해 전달해주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특히 사전도 없이 콩알만 한 부스에서 신경 곤두선 토론자들의 언어를 다루는 동시 통역사들. 바벨탑 무너진 게 밥줄이 되긴 했지만 동시에 원망스럽지 않을까?

요네하라 마리 덕분이다. 이어폰을 껴야 하는 외국어 컨퍼런스에 참여할 때마다, '통역이 왜 이리 느려!' 하고 불평하기보다 무대 구석에 있는 통역사들을 우러러보게 된 것은. 일본어-러시아어 동시 통역사이자 유능한 작가였던 그녀는 언어와 관련해 참 많은 책을 썼다. <미녀냐 추녀냐>, <문화 편력기>, <마녀의 한 다스>(모두 마음산책 펴냄) 등. 그 외에도 많은 저서에서 동시 통역사로서의 정체성과 고충을 절절히 드러냈다. 출판사의 부지런한 노력으로 대부분의 저서가 국내에 소개됐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 여성에 대해 누군가 물어보면 늘 "할아버지는 일본 귀족원 멤버였으나 아버지는 열혈 공산당원이었고, 아홉 살부터 약 6년 간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했대' 하는 말로 시작한다. 그만큼 독특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 경험이 필력의 밑바탕이 됐다. 이른바 '태생이 필자'다.

"내가 최고로 생각하는 감정은 언제나 바로 웃음이다. 웃음을 주는 저자가 좋다'(<대단한 책>)라고 고백한 대로, 자신의 글에서도 언제나 유머에 중점을 둔다. 특히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비롯되는 유머, 속담을 비튼 유머가 압권이다. "'곰의 친절'이라는 러시아 속담은 곰이 토끼 볼에 붙은 모기를 잡아주려고 친절하게 앞발로 쳤다가 토끼가 승천해버렸다는 우화시를 바탕으로 한다'(<미식견문록>), 간단한 설명에도 재치가 서려 있다.

▲ <차이와 사이>(요네하라 마리 지음, 홍성민 옮김, 마음산책 펴냄). ⓒ마음산책
이렇게 두 언어를 통역으로도 글로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 독특한 성장 배경, 유머 감각까지 갖춘 덕에 생전에 많은 강단 위에 섰다. 최근에 나온 <차이와 사이>(홍성민 옮김, 역시 마음산책 펴냄!)는 그녀의 네 번의 강연 내용을 묶은 것이다. 이 얇은 책은 독자들을 암컷과 수컷의 차이(1장), 언어와 또 다른 언어의 차이(2장), 통역과 번역의 차이(3장),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의 차이(4장) 등 네 차례 '차이들의 사이'로 안내한다.

각각 다른 시공간에서 이뤄진 강연임에도 신기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건 이문화 체험자이자 두 언어를 다루는 통역사, 한 남자의 아내로 묶이지 않고 수컷 고양이 여러 마리와 살았던 독신 여성이었던 그녀의 일관성 덕택이다.

중간자적 입장, 혹은 판이한 두 개의 무엇 사이를 잇는 가교였던 그녀는 다소 단정적으로 보일 만큼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수컷은 이래, 암컷은 저래, 일본어는 이래, 러시아어는 저래…' 약간은 섣부른 단정 위에서 쭉쭉 뻗어나가는 대조의 도식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렴 어때, 재밌는데 뭘'이라는 감상에 닿는다. 그러니까 마리의 '차이와 사이'는 수많은 사례들에서 추출한 미세한 틈의 집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체험과 결부된 '인상'일 수도 있단 얘기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뜯기 어려운 설득력과 재치, 통찰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의 주특기이자 '18번'인 언어의 차이, 통역의 고충을 얘기한 2장과 3장이 볼 만하다. 먼저 그녀는 똑같은 말에 대해서도 해석은 제각각이고, 통역은 그 해석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툴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개그를 꺼낸다. 뉴욕 빈민가에서 한 흑인 부랑자 앞에 갑자기 신이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하얘지고 싶다', "여자들의 화제의 대상이 되고 싶다', "늘 여자 가랑이 사이에 있고 싶다'라고 외쳤더니 순식간에 남자는 사라지고 탐폰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는 얘기다. 오호라, 신과 교신할 때도 해석의 차이로 난감해지니, 통역을 빨리 고용해야 하지 않을까?

"통역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의미의 폭을 좁혀서 꼭 특정한 의미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번역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같은 언어로 말해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 A를 상대방이 각자 경험에 따라 'A'나 'B로 해독하듯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기는 어려운데 통역사를 사이에 두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위에서 이루어진 과정에다 다른 언어로 코드를 바꾸는 작업, 청취자의 언어 체계에 맞춰 정비하는 작업이 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시 통역사는 이 모든 작업이 순식간에 해치워야 한다. 이를 위해 회의가 잡히면 회의 당일 전까지 주제와 관련된 단어들을 죽도록 암기한다고 한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발언자의 핵심 정보를 누락시키지 않도록, 순간적 기억력도 필수로 갖춰야 한다.

마리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초조해지면서, 역시 앞에서 얘기한 상상을 펼치곤 한다. 이념(?)은 제쳐두고, 공식 회의에서 모두 다 같이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면 안 되나? 정보만 바이트로 썰어 기계적으로 넣어주는 뭔가를 만들면 안 되나? 누가 언제 국제 회의를 가질지 모르니, 또 그렇게 된다 해도 통역사들의 밥줄이 문제가 되니 허망하고 영양가 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언어의 차이란 게 상당히 무시무시한 간극이구나 싶어서다.

하지만 이런 상상이 결코 편리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기계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성'과는 다른 미학적 차원에서 말이다. 그 언어만이 가진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했을 때의 황홀한 느낌뿐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 사용자들이 어렵게 의미 공유에 성공했을 때, 오묘한 '차이의 사이'에서 상대방이 쉬이 잡을 수 있는 표현을 획득했을 때의 감동 때문이다.

요네하라 마리 역시 통역이라는 어려운 길에 들어선 이유를 유년 시절 감동적인 순간에서 찾는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 4학년 시절, 캐나다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치보라는 남자아이가 등장, 학교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늘 여자아이들을 울게 만드는 대단한 장난꾸러기 치보였는데, 어느 날 갈리나 세묘노바라는 여선생님이 한 마디로 그를 제압한다. "더 이상 말썽 피우기만 해. 그 불룩한 감자 얼굴을 시머트리(symmetry)로 만들어줄 테니까'라고. 아이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시머트리는 '대칭형'이라는 뜻이다. 치보는 그때 마침 오른쪽 볼이 보라색으로 불룩하게 부어 있었고, 반 친구들은 바로 전 수업 시간에 '시머트리'라는 단어를 배웠다. 갓 따낸 신선한 말에 시적인 표현, 게다가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치보는 얌전해졌다. 마리는 왜 그랬을까 궁금해 하다가, 자신이 갓 전학 왔을 때 언어의 차이로 누구와도 같이 동시에 웃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치보의 '부적응 말썽'은 모두가 한 단어에 의미 공유를 했던 순간 사그라졌다.

"통역뿐 아니라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그렇게 불확실한 행위이고, 최종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일종의 체념이랄까 각오를 가져야 한다" 그녀는 충고한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동물이라는 확신", "모두가 동시에 웃고 함께 감동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그는 이 완벽한 조각을 찾을 수 없는 퍼즐 맞추기를 계속 한다. "불완전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통역이라는 직업"이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차이와 사이>는 강연록이기에 때로는 거침없이 부담스러운 교훈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밖에도 다른 저서들에 비해 촘촘한 맛이 떨어지는 편이니, 이 책을 먼저 들고 실망한 독자가 있다면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 보길 권한다. 특히 지난해 나온 <팬티 인문학>은 에세이 모음집이긴 하지만, 그녀의 집착 어린(?)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결코 이 책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자료가 알알이 박혀 있는 '살짝 민망한' 아랫도리 연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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