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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있고 신정아는 없다. 하지만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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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은 있고 신정아는 없다. 하지만 둘 다…

'사과의 달인.' 훗날 역사는 이명박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하지 않을까?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과 비교해도 사과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사과'와 대통령의 이름이 함께 나온 언론 기사의 제목을 검색해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총 366건(2011년 4월 8일 기준)으로 노무현(143건) 전 대통령을 압도한다. 실제로 현재까지 대국민 사과만 다섯 차례였다.

이렇게 잦은 사과 탓일까?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의 기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당장 지난 1일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이었던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하고 나서 했던 대국민 사과는 큰불로 번질 불길을 잡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 여전히 영남 이남의 민심은 흉흉하지만 이 대통령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요즘은 '사과의 시대'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연예인 등의 사과는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단골 소재다. 정부, 기업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일도 사과다. 물론 언론에 노출이 안 될 뿐이지 보통사람의 일상에서도 사과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어려운 일이다.

김호 전 에델만코리아 사장과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가 국내 최초로 '사과'를 탐구한 <쿨하게 사과하라>(어크로스 펴냄)를 펴낸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그들은 오늘날을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쿨하게 사과할 줄 아는 성숙한 자아를 가진 리더만이 살아남는 시대"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사과학'을 선보인 김호, 정대승 두 사람이 공개하는 '사과의 기술'은 어떤 내용일까? 그것은 과연 우리를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사과의 달인으로 만들어 줄까? 또 그런 사과의 기술만으로 충분할까? 평소 정치인에게 사과의 기술을 강조해온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와 함께 <쿨하게 사과하라>를 읽었다.


이명박은 '사과의 달인'?


▲ <쿨하게 사과하라>(김호·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프레시안 :
<쿨하게 사과하라>가 나오고 나서 이명박 대통령이 또 큰 '사과' 사건을 하나 터뜨렸잖아요. 부산, 경상남도에서 관심을 가지던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하고 나서 지난 1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했는데 상당히 그럴듯하더군요. 마치 <쿨하게 사과하라>를 읽고서 그대로 따른 것처럼 보였어요.

박성민 : 네, 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어보고, '<쿨하게 사과하라>는 청와대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인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청와대 지인들에게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기도 했고요. 진짜 이 책을 읽고서 참고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는 이 책이 말하는 이른바 '사과의 여섯 가지 충분조건'을 어느 정도 만족시킵니다. 하나씩 따져볼까요?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① 우리는 흔히 사과할 때 '미안해', '죄송합니다' 따위의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건 유감(regret) 표현이지 진짜 사과는 아니라고 지적해요. 특히 '미안해' 하고 나서 '하지만',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는 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깔끔했어요.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개인적으로"라는 말을 덧붙인 부분입니다. 이 사과는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인데, 앞에다 "개인적으로"라고 달지 않아도 되는 토를 단 것이지요. 자칫하면 대통령으로서는 "안타깝고 송구스럽지 않지만"으로 들릴 수도 있거든요. 이 역시 사과에 달리는 사족이 얼마나 효과를 반감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② 미안하다고 이야기 할 때는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해야지요. 흔히 연인, 부부 사이에 툭하면 남자가 '미안해'를 입에 달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 때마다 여자는 되물어요. "도대체 뭐가 미안한데?" (웃음) 정확히 아는 거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모르면 진짜 사과가 아니라는 걸요. 이명박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정확히 지적을 했어요.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신공항 사업을 백지화한 문제는)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인 이명박, 저에게 책임이 있지 내각이나 청와대는 책임이 없다. 보고를 받고 제가 결단을 했기 때문에 내각이나 청와대에 대한 문책성 인사는 없다."

③ 이 책에서 지적한 사과의 세 번째 충분조건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과에 책임 인정이 포함되지 않으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신공항 백지화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어요. 유감 표명을 넘어서 자신의 책임도 인정한 것입니다.

"신공항은 여건상 짓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해당 지역 발전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임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린다."

④ 사과에는 구체적인 보상 방안을 담아야 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개선 의지, 보상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사과는 외면을 받기 십상입니다. 일단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둔 모양입니다. 당장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해당 지역에 다른 식으로 보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니까요.

⑤ 사과에는 반드시 재발 방지 약속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점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약점이 있어요. 세종시 이행 공약을 지키지 못해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있으니까요. 이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관심이 쏠린 데는 이런 전례가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 같아요.

⑥ 가장 어려운 사과 표현은 직접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하자마자, 대국민 사과를 자청하고 또 국민과 해당 지역 주민에게 직접 용서를 구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아서 사과를 한 번 했던 상황에서, 국민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면 통하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신정아의 '낙제점 사과'

프레시안 : 마침 <쿨하게 사과하라>를 읽는 중에 또 다른 사과(?) 사건이 있었어요. 2007년에 이른바 '신정아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신정아 씨가 <4001>(사월의책 펴냄)이라는 책을 펴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신 씨는 자신의 잘못(박사 학위 논문 대필 등)을 놓고 사과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박성민 : 신정아 씨의 사과는 잘못된 사과의 전형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과의 충분조건 중 첫 번째부터 지키지 않았잖아요. '미안해' 다음에 '하지만', '다만' 등이 너무 많으니까요. (웃음) 많은 독자들이 신정아 씨의 <4001>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공개 사과하고자 쓴 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정 투쟁을 위한 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구나 <4001>을 읽은 독자 중 상당수는 당혹스러웠을 것 같아요. '굳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했나' 하는 대목이 너무 많잖아요. 예를 들어서, 변양균 씨(전 청와대 정책실장)와의 사적인 연애 얘기가 대표적입니다. <신약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한국 기독교의 행태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그들의 모습이 다른 시민, 다른 종교에 대해서 (성경 말씀과는 다르게) 무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정아 씨가 변양균 씨와의 연애 얘기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사과를 기대한 독자라면 이런 무례에 오히려 분노를 했을 거예요.

하기는 애초에 사과를 위해서 쓴 책이 아니니 신정아 씨가 <4001>에서 했던 여러 가지 사과가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닌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튼 사과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신 씨의 <4001>은 '잘못된 사과의 본보기'가 아닌가 싶어요. 신 씨가 <쿨하게 사과하라>를 읽어봤더라면 좀 달랐을까요? (웃음)

21세기는 '사과의 시대'

프레시안 : 방금 이명박 대통령, 신정아 씨 얘기도 했습니다만, 요즘에는 사과 사건이 없으면 기자들이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사과가 이렇게 중요해지고, 사과가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더 나아가서 이렇게 <쿨하게 사과하라>는 책까지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성민 : 이 책의 세 가지 전제가 있어요. 첫째,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없지요. 다시 말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과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21세기는 실수와 잘못이 더욱 투명하게 노출되는 시대다."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21세기 정치인은 유독 실수 혹은 잘못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전의 정치인들은 실수나 잘못을 안 했을까요? 아닙니다. 실수나 잘못을 한 실제 회수만 놓고 보면 그들 역시 만만치 않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사정이 다릅니다. 예전에 정치인들의 실수나 잘못이 대개는 대중이 알지 못하는 막 속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은 그렇게 숨길 수가 없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동영상, 인터넷,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 아마 지금처럼 정치인에게 현미경을 들이댔다면 우리가 아는 위대한 정치인(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스벨트, 콘라트 아데나워 등)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당장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둘러싼 사태를 보세요. 예전 같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폭로가 인터넷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그 뒤로 미국의 국무부, 외교관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하고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꺼림칙하면 '기밀'로 처리하면 되었는데, 지금처럼 모든 일이 '공개'되는 상황에서는 그런 대응이 통하지 않지요.

이런 상황을 놓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 시대를 '책임의 시대'로 규정했어요. 사실 '사과의 시대'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오바마 대통령 역시 자신과 측근의 실수 혹은 잘못으로 온갖 위기를 맞았고, 그 때마다 사과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해 왔습니다. 그의 얘기를 한 번 직접 들어볼까요?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189쪽)

신뢰를 지키는 무기, 사과의 기술

프레시안 : 방금 오바마 대통령 얘기도 나왔습니다만, 리더(지도자)의 사과는 더욱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사과의 기술을 꼽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쿨하게 사과하라>를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사람이 정부, 정당, 기업의 리더들인 것 같아요. 이 책을 청와대에 먼저 추천한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겠고요.

박성민 : 맞습니다. 방금 세 가지 전제 중에서 두 가지만 언급했지요? 셋째, "리더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물론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까지 책임져야 할 때가 많다." 리더의 사과의 기술이 각별히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좀 강하게 말하면 사과의 기술이야말로 리더가 권위를 유지하는 핵심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리더가 권위를 유지하려면 크게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전문성'이고 다른 하나는 '신뢰'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신뢰를 잃게 되면 리더의 권위는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사과의 기술입니다.

아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예를 들었지요? 이 대통령은 '경제적 전문성'을 내세워서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어요. 이번 신공항 백지화를 둘러싼 논란도 그 본질을 따져 보면 바로 신뢰의 위기입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처음부터 끝까지 '신뢰'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우며 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인류의 탄생, '사과하는 인간'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이 괜히 '사과의 달인'이 된 게 아니었군요. (웃음) 그런데 <쿨하게 사과하라>를 읽으면서 삐딱한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사과를 전면에 내세우는 책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과연 사과가 최선인가' 이런 의문이 들거든요. 이 책에는 사과를 해서 결과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소개합니다만, 그 반대도 많지요.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긍정적인 사과의 예로 언급한 김근태 전 민주당 고문의 사과가 그렇습니다. 2002년 3월 3일 김근태 고문은 2000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을 위해 모두 2억4500만 원의 불법 선거 자금을 썼다고 양심고백을 했어요. 비록 국민들에게는 그의 '사과의 진심'이 전달되었고, 법원도 최종적으로 선고 유예라는 관대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김근태 고문은 그런 양심고백으로 결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낙마해야 했고, 2003년 12월 5일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릴 때까지 계속 양심고백에 대한 법적인 감당을 하느라 고생을 해야 했어요. 그렇다고, 그의 양심고백이 한국의 정치 풍토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기껏해야 현실 감각 없는 정치인의 일탈 행위 정도로 기억되고 있지요.

박성민 : 나 역시 그 대목을 읽으면서 적절치 못한 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인, 기업인이 사과를 무서워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위험을 극복하기는커녕 더 큰 위험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책임이나 경제적 부담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게 최선인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근태 고문은 양심고백을 해서 굳이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잘못된 선택을 한 셈입니다. 사실 이렇게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에요. (웃음) 당장 우리 헌법 제12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우리가 사과에 서툰 게 이상한 게 아닙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초원)를 헤맬 때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솔직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보다는 거짓말을 하고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하는 게 생존에 훨씬 더 유리했을 테니까요. 다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사과를 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사실 정치인, 기업인 등이 법적인 책임, 경제적 부담 등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재앙이 될지도 모르는 사과를 하는 것도 다시 기회를 얻고 싶어서니까요. 이런 점에서 <쿨하게 사과하라>는 생존의 덕목으로 사과의 기술이 부상한 것을 선언한 책으로 기록될지 몰라요. 마침 이 책도 이렇게 장담을 하는군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쿨하게 사과할 줄 아는 성숙한 자아를 가진 리더만이 살아남는 시대, 훗날 '사과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기억될 것이다 "사과, 19세기와 20세기 '루저(loser)'의 언어에서 21세기 '리더(leader)'의 언어로 부상하다." (24쪽)

'쿨'하게 사과하라? '핫'하게 공감하라!

프레시안 : <쿨하게 사과하라>를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도 현실의 예를 떠올리면 고개가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아요. 앞에서 얘기한 이명박 대통령의 신공항 백지화 사과도 이 책의 내용에 비춰보면 그럴듯합니다. 정치적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봤고요. 하지만 그런 사과가 과연 해당 지역 주민의 마음을 움직였을지는 회의적입니다.

사실 이 대통령의 잇따른 사과는 다 이런 느낌입니다. 반면에 미숙하기 짝이 없는 사과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경우도 많습니다.

박성민 : 2007년 6월 28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정책 토론회에서 홍준표 의원의 대응이 생각나네요. 당시 홍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측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거세게 비판하던 상황이었는데요. 이날 이 대통령이 '과거에 당신도 대운하를 찬성하지 않았나' 하고 공격을 한 거예요. 이 때 홍 의원은 이렇게 말했어요.

"(2005년) 그 때 서울 시장에 나가보려고 인터뷰를 많이 했었는데…. 그 때야 시장 되려고 시장님(이명박 대통령)한테 잘 보이려고 그랬지."

당연히 토론회장 곳곳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고, 이명박 대통령의 공격은 맥이 빠졌지요. 전형적인 이른바 '홍준표 스타일'로 위기를 모면한 것인데요. 이런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듣는 순간, 많은 이들이 '아, 나도 그럴 수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인 거예요. 홍 의원이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또 다른 예도 있어요. 잘 알다시피, 클린턴 전 대통령은 유복자였습니다. 그래서 주지사, 대통령 선거 내내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했어요. 사실 이건 본인이 사과를 해야 할 문제도 아니었지만,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 먹는 아주 고약한 사안이었어요. 그 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상황을 극복했을까요?

"맞습니다. 저는 태어났을 때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딸(첼시 클린턴)이 태어났을 때 아빠 얼굴을 똑똑히,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대중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대응이지요. 바로 이런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흔히 '성공은 못했지만 사랑은 받았던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지자로부터 여전히 열정적인 사랑을 받는 것도 이런 능력 때문 아니겠어요?

저는 그걸 '공감의 기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과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공감의 기술입니다. 사실 공감의 기술은 연습한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지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에서부터 비롯될 테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의 잇따른 사과가 시민으로부터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도 바로 이런 공감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의 신공항 백지화 사과가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면 사과의 기술에 충실해서라기보다는 지역 주민의 실망과 분노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서가 아닐까요? 만약 주민의 마음을 여는데 사과가 충분치 않았다면 그 공감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고요.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공감의 기술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 점에서 보자면, <쿨하게 사과하라>는 반쪽짜리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의 저자들이 나중에 <핫하게 공감하라> 이런 책을 내야할 것 같습니다. (웃음) 사과의 기술이 공감의 기술과 어울릴 때, 비로소 21세기에 걸 맞는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수다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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