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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일본…한국은 다른가?"

[기고]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지난 한 주 동안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식이 빗발쳤다. '노심 용해(melt down)'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말해지고, '수소 폭발'과 같은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회자될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일본의 입장에서, 지진과 지진 해일(쓰나미)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변명이 가능하겠지만, 겨우 이 정도인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일본 원자력계의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원자력 안전 신화'는 허무한 개그에 불과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바람 방향이 바뀌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바다 건너 불구경이나 하면 그만인가? 우리의 원자로는 일본과 다르고, 우리나라에는 지진도 없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치부하면 그만인가?

현대 사회는 '위험 사회'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내린 정의다. 공교롭게도 그가 <위험 사회>를 출판한 것은 구(舊)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던 1986년이었다.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숙명이며, 돌아갈 수 없는 안전시대를 막 지나왔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우리는 이제 위험을 일상적으로 안고 살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과 태도를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 바로 위험 사회의 문제의식이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위험 사회의 경고가 단지 기우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만 하는 기막힌 현실에 직면해 있다. 벡은 위험 사회의 핵심 가치로 성찰(반성)을 제시한다.

과연 우리는 이 사태로부터 무엇을 성찰하고,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 지난 14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의 폭발 모습. ⓒ뉴시스

많은 언론에서는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1979년의 미국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뒤이은 '세계 3대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보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력 사고의 크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정한 INES(원자력 사고 등급)로 표시되는데, 징후에 따라 0~7등급으로 나눠진다.

보통 5단계 이상이면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심각한 상태라 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모두 네 차례 발생했다(영국의 셀라필드(윈드스케일) 재처리 시설(1957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1979년), 구 소련의 키시팀 재처리 시설(1957년)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1986)―원자력 발전소 두 곳과 재처리 시설 두 곳).

후쿠시마의 사고는 현재 5등급으로 분류되었고, 이미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노출되어 상당수의 피폭자가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 이상으로 악화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여기서 우리는 그동안 크고 작은 원자력 발전소사고들이 계속해서 발생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가 경험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거나, 보도조차 되지 않은 수많은 사고들이 빙산의 거대한 밑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겉으로는 안전해 보여도 불안 요소는 상존하며 대형 사고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현재까지 보고된 사고의 최고 등급은 3등급이지만, 그동안 적지 않은 사고들이 발생했다.

많은 원자력 발전소 전문가들은 원자력이야말로 안전장치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에 어떤 사고에도 끄떡없다고 강조한다. 보완 시스템(back-up systems)에 의한 다중 보완 장치가 그 핵심인데, 설령 장치 일부에 고장이나 오작동으로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탐지하여 대처할 수 있는 보완 장치가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는 이런 주장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잘 보여줬다.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전력 공급이 끊기면 자동으로 작동했어야만 하는 비상 노심 냉각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원자로에 냉각수 공급이 차단되어 핵연료를 냉각시킬 없게 되자 원자로에 있는 물은 끓어서 수증기가 되면서 핵연료를 노출시켰다.

이렇게 해서 노심 용해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원자로에는 전력 공급이 끊길 경우 노심에 냉각수를 계속 공급하여 핵연료를 안정화시킬 목적으로 두 대씩의 보조 펌프를 마련해두고 있는데, 쓰나미에 펌프가 잠기면서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완시스템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런 점을 보완하면 되지 않는가? 사후약방문이다. 보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사고 순간에서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고, 사전에 고려해야 할 요소는 너무 많다. 전문가들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자신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중 차폐 시설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다중 차폐 시설이 버티고 있어서 방사능의 외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수소 폭발에도 불구하고 원자로의 격납 용기가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방사능 대량 유출은 막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수소 폭발로 격납 용기 자체가 손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지난 한주일간 아찔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이제 더 이상 다중 차폐 시설을 근거로 원자력 안전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원자력 안전신화는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도 허무하게!

사실, 원자력 안전 신화는 취약하기 그지없는 과학적 기반 위에 서 있고, 역사적으로 이미 뼈아픈 좌절을 맛본 바 있다. 1975년,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원자로의 안전도를 측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가 소위 <라스문센 보고서(WASH-1400)>였다(연구 책임자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불린다).

연구팀은 '통계적 위험 평가(PRA)'라는 방법론을 사용하여 연구를 진행한 다음, 원자로에서 노심 용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결론 내렸다. 자동차 사고는 물론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더 낮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원자로에서 노심 용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미국 프로야구팀인 양키스타디움에 운석이 떨어질 확률 정도에 불과하다는 정치적 수사가 따라붙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내세운 자신감은 4년도 채 가지 못했다. 1979년에 발생한 스리마일 섬 사고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수만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사건이 4년 후에 일어나고 말았으니 그 충격이 오직 했을까? 그리고 7년 후의 체르노빌은…굳이 말이 필요 없다.

미국에서는 스리마일 섬 사고 이후 단 1기의 원자력 발전소도 건설되지 않았고,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소 사업은 사양길을 걸었다. 그리고 대안에너지인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져나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후 변화가 원자력 산업을 다시 살려냈다.

원자력 산업계는 시간 속의 망각을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 원자력 발전소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술, 즉 '원자력=청정 기술'이란 이미지를 집중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여 소위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맞을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원자력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며 원자력 안전 신화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취약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상식적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경제성과 자만심이 부른 사고라는 점에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56기의 원자력을 운용)에서 내진 설계 기준은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2002년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자료를 보면, 일본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내진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는데, 전문가들은 대지진의 발생 가능성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매우 낮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날 확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통계적 위험 평가(PRA)가 등장한다. 5만 년에 1번 올 대지진을 고려하여 안전 기준을 높이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1호기는 수명이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가동에 나섰는데, 이런 조치에서 경제 제일주의와 더불어 자만심마저 느끼게 된다.

그 결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후쿠시마 사고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은 물론 환경·건강의 재앙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전문가들은 체르노빌의 사고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일까? 혹시, '우리의 비등수로형 경수로(BWR)는 소련의 흑연 감속로(RBMK-100)과는 다르게 매우 안전하기 때문에 내진 기준을 올리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나라(21기의 원자력 발전소 운용)는 일본과는 달리 지진에 민감하지 않다. 하지만 지진의 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쓰나미의 위험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현재 내진기준 6.5면 충분하다는 설명을 믿고 싶지만 그것이 일본의 경우처럼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한 결과라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지금 당장은 지진과 쓰나미가 초점이 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일본에는 없는 우리만의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원자력 발전소 시설이 군사적 공격의 대상임은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근본적 회의마저 든다.

우리나라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는 한국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강조하면서 일본 원자력 발전소와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신화를 지속시켜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지속하는데 최대의 걸림돌인 국민들의 반대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진과 쓰나미가 문제가 되니까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데, 이는 일본의 사태로부터 배우기보다 두 눈 질끈 감고 나는 괜찮다고 자기 주문만 외우는 꼴이다. 사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터키와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원자력 수주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치열한 경쟁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불행은 우리의 행복이 아니라 우리의 불행이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만 예외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로부터 우리는 한국형 원자로니까 안전하다가 아니라 모든 원자로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는 우리나라와 같은 가압 경수로(PWR)였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흑연 감속로(RMBK-1000)였고, 후쿠시마는 비등수로형 경수로(BWR)였다.

많은 원자력 발전소 전문가들은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원자력 발전소의 구조 문제와 소련의 체제 문제를 집중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다른' 원자로는 안전하다는 여론을 주도하고자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전략이 구사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후쿠시마의 비등수로형 경수로만 문제일 뿐 한국형 원자로는 안전하다는 식의 여론몰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모든 원자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흔히,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를 비롯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원인으로 인재(안전 문화 결여), 구조적 취약성, 천재지변 등을 꼽는다. 이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신중할 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규정할 경우, 운영 요원의 훈련을 강화하고, 안전 문화를 고양하고, 지진 같은 천재지변에 잘 대비하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은 끄덕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 발생하는 '시스템 사고'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분석한 결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매우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태에서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되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음을 밝혀내고, 이에 기초하여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원자력 발전소처럼 구성 요소 간의 상호 작용이 복잡하고, 결합 관계가 팽팽한 기술 시스템의 경우 작은 시스템 실패가 머피의 법칙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켜 시스템 전체의 실패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경우에도 인재나 천재지변에서 촉발되었지만 그 진행 과정은 전형적인 시스템 사고의 특징을 띠고 있다.

더욱이,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의 촉발 요인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로부터,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원자력 발전소는 예외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단기적으로,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세울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가급적 관련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굳이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이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벌써부터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불안 심리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유어비어를 추적하고 색출해내는 일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종합적 안전망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보 통제나 무시가 아니라 언론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괜찮다는 식의 안일한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어느 한 순간에 국민들을 패닉 상태로 빠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일본 정부의 위험 커뮤니케이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일본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과 관련하여 계속해서 후퇴하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일본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잃고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정부의 위험 커뮤니케이션 실패가 초래한 사회적 혼란과 피해를 경험한 바 있다.

장기적으로,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를 우해 먼저,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은 상존하며 예방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실질적인 위험 관리와 위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참여와 정보 공개가 필수적이다.

체르노빌과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경우, 원자력 발전소 종사자들의 증언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원자력 발전소 시스템의 완벽함을 확신했기 때문에 노심 용해가 일어나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며 초기 대응 실패는 그런 믿음에 연유한다고 증언했다.

우리 원자력 발전소 종사자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 2003년 12월 영광 5호기에서 방사성 오염 폐수 3500톤(t)이 사흘 동안 바다로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는데, 운영자들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런 믿음이 초기 대응 실패를 나았다는 것이다.

운영자들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무한신뢰가 빗은 해프닝이다. 이런 사실은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문제를 원자력 발전소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서는 곤란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정책을 전면 재수정해야 하며, 그런 방안의 하나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전문가 그룹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관련 시민단체의 참여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원자력을 통해 미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벌써 세 번째 대형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경험하고 있다. 언론에서 이 트라우마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향후 원자력 산업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이미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원자력 발전소 산업에 계속 투자하는 것은 커다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다.

또,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한다. 이렇게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자력에 의존해야만 하는가? 대안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대안은 있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재생 가능 에너지의 발전을 통한 '에너지 전환'이라는 매우 분명한 대안이 있다. 이미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핵을 포기하고 에너지 전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데, 원자력이 바로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당장 원자력을 중지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기 공급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당장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체계가 원자력 위주로 되어 있는 만큼 장기적인 전환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2004년, 시민과학센터가 주최한 '전력 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를 참고할 수 있다. 일반시민으로 이루어진 16명의 시민패널은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거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중단하고 수명이 다한 원자력 발전소는 차례대로 폐쇄하는 방식으로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바꿔나간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는 철저한 수요 관리와 시스템 정비, 전력원의 다양화, 지역적 분산화 등이 제시되었다.

2010년 7월과 10월에 한국을 찾은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의 히데유키 반 공동대표는 현재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 사업이 난관 타개책으로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와 달리 일본 국내 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기 때문에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부지를 확보하기 매우 힘들 뿐 아니라 전기 수요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아 추가 수요가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더욱이,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수출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베트남의 원자력 발전소 수출을 위해 신칸센 건설을 추가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민의 혈세로 원자력 산업계의 배를 채워주는 꼴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들어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소 수출의 이면계약 파문이 확산되면서 우리의 원자력 발전소 수출도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 모두 포기한 고속 증식로를 계속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는 힘든 실정이다. 너무도 많은 플루토늄을 보유한 까닭에 어떻게든 사용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3호기에 장착된 것으로 알려진 MOX(우라늄-플루토늄 혼합 연료)도 일본의 이런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일본은 이미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의 사정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부지를 찾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해외 수출이 적극 추진되고 있고,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는 회수가 커지고 있다. 수명이 다한 고리 1호기를 재가동하고 있고, 월성 1호기는 재가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은 우리의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많은 점에서 우리의 반면교사다. 타산지석이라 하지 않는가?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보다 긴 호흡으로 우리의 미래 에너지 정책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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