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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핵에 무너진 날…"우리는 모두 일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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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핵에 무너진 날…"우리는 모두 일본인이다!"

[불편한 진실] 후쿠시마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K 선생님께

아이티에서 보낸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대지진이 일어난 아이티에 잠깐 머물겠다고 가신 지 벌써 1년이 넘었군요. 지구 반대편에서 고국 바로 곁에서 일어난 끔찍한 소식을 들었으니 많이 놀라셨지요? 사실 한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랍니다. 지난 3월 11일부터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 지진 해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에 온 국민이 정신을 반쯤 놓고 있습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계속 아이티에서 던진 선생님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죠?

"강 기자, 아이티도 아닌 일본에서 어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대지진과 잇따른 지진 해일이야 천재지변이라고 치더라도,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래 원자력 발전소는 심각한 사고가 10만 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도록 안전 설계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일본이 저렇게 엉성하게 안전 대책을 세웠을 줄은…."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과 똑같은 의문을 떠올린 모양입니다. 이번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 일본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장치에 대한 포괄적인 점검이 진행되겠지요. 그 과정에서 이번에 지적된 많은 허점이 보완될 것입니다. 그 와중에 관계자 몇몇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타박도 받겠지요.

그러고 보면, 그 동안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항상 비슷한 모습이 재연되곤 했던 것 같아요. 늘 사고만 나면 언론에서 '인재(人災)' 타령을 하다가, 희생양을 찾는 게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도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의 '안전 불감증'이 부른 인재일까요? 안전장치만 좀 더 보강하면 더 이상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까요?

사소한 문제가 낳은 참사

▲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벌써 30년이 넘었군요. 1979년 3월 28일 미국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큰 사고가 났습니다. 이 스리마일 섬 사고는 공식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의 잘못으로 발생한 인재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 사고는 인재였을까요? 진실은 훨씬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스리마일 섬에서 그날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찰스 페로의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 : Living with High Risk Technology)>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은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습니다만, 핵심 내용은 <아웃라이어>(노정태 옮김, 김영사 펴냄)로 유명한 미국 기자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①스리마일 섬 사고는 냉각수를 거르는 거대한 필터가 막히면서 시작됐다. 사실 이 문제는 드물게 발생하는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②필터가 막히면서 습기가 공조 시스템으로 새어 들어가 2개의 밸브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냉각수가 차단되면서 문제가 커지고 말았다.

당시 스리마일 섬 발전소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비상 냉각 시스템이 있었지만 ③그날은 웬일인지 비상 냉각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밸브가 열리지 않았다. 더구나 ④밸브가 닫혔음을 알리는 표시등이 그 위에 있던 스위치에 달린 수리 기록표에 가려져 있었다. 그래도 세 번째 안전장치인 압력 조절 밸브가 작동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⑤공교롭게도 압력 조절 밸브는 고장이 나 있었다. 닫혔어야 할 압력 조절 밸브는 계속 열려 있었고 그 사실을 알리는 계기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원자로의 (노심이) 용융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처럼 스리마일 섬 사고는 다섯 가지 이상의 문제가 겹치면서 일어났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301쪽)

자,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날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는 지독히 운이 없었습니다. 하나씩 일어났으면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을 일들이 '우연히' 여러 개가 겹치면서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많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정오까지 보내야할 중요한 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①문서를 집 컴퓨터에 저장만 해두고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②오전에는 대개 집에 있던 동생도 그날은 일찍 학교로 나갔습니다. ③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길이 막혀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④얼른 집에 달려갔더니 주머니에 열쇠가 없습니다. 아침에 열쇠를 챙기지 않고 나온 것입니다. ⑤집을 잠그고 나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업 중인지 휴대전화를 꺼놓은 상태입니다. 결국 저는 강제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였습니다.

사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일상생활에서도 서너 개의 불운이 겹쳐서 때로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인공물 중 하나인 원자력 발전소에서 스리마일 섬 사고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페로는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 스리마일 섬 사고와 같은 재난을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고 부릅니다. 페로가 보기에,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복잡한 인공물이 작동하는 과정 속에서는 항상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런 문제들이 겹쳐서 발생하는 사고는 피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어떻습니까?

귀찮은 문제가 낳은 참사

▲ <불확실한 세상>(김명진 외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참고가 될 만한 책이 한 권 더 있습니다.

다이앤 본의 <챌린저 호 발사 결정(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 Risky Technology, Culture and Deviance at NASA)>. 이 책 역시 번역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글래드웰의 같은 책과 <불확실한 세상>에 실린 김명진의 글에서 그 핵심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챌린저 호 폭발 사고를 기억하시죠? 1986년 1월 28일 발사 후 73초 만에 산산조각나면서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한 그 비극적인 사건 말입니다. 우주 비행사가 아닌 서른일곱 살의 여교사 크리스타 맥컬리프도 이 사고로 사망해 큰 충격을 주었지요. 저도 텔레비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맥컬리프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챌린저 호 사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습니다. 우주 왕복선을 발사할 때 추진력을 더해주는 로켓 부스터의 틈새를 막는 고무 부품인 오링(O-ring)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일 아침의 추운 날씨 때문에 고무로 만들어진 오링이 탄성을 잃었고, 이 때문에 연결 부위로 뜨거운 분사 가스가 새어 나오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지요.

여기까지만 보면, 챌린저 호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 같습니다. 그러나 다이앤 본은 <챌린저 호 발사 결정>에서 또 다른 진실을 보여줍니다.

NASA의 엔지니어들은 우주 왕복선이 처음 발사되기 훨씬 전인 1977년부터 오링의 틈새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 왕복선 발사시 생기는 오링 틈새의 크기를 알아내기 위해 지속적인 실험을 진행했고, 실험 결과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힘든 협상을 거쳤다.

그 결과 그들은 오링의 틈새와 그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손상이 '수용 가능한 위험(Acceptable Risk)'이라고 보고 우주 왕복선의 발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1981년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우주 왕복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과정에서 오링이 손상된 사례가 때때로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러한 오링의 손상은 우주 왕복선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았다." (<불확실한 세상>, 302쪽)


심지어 발사 당일 아침에는 엔지니어들 사이에 토론도 있었습니다. 몇몇 엔지니어들이 오링 손상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지만, 그 전에 훨씬 더 손상이 심했을 때도 우주 왕복선을 성공적으로 발사시켰던 다수의 관리자, 엔지니어들은 그런 의견을 묵살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이었습니다. 다이앤 본은 이렇게 말합니다.

"챌린저 호 발사에 이르는 결정은 규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과거에 단 한 번도 잘못된 적 없던 문화, 규칙, 절차, 규범이 이번에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챌린저 호 폭발 사고는 간부들이 비도덕적인 계산을 하기 위해 규칙을 어겨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규칙을 따른 끝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305쪽)

선생님, 생각해 보십시오. 1987년에 챌린저 호는 이미 세 차례나 성공적으로 발사에 성공했었습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낳아야 하는 엔지니어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성공이 반복될수록 '수용 가능한 위험'의 대상을 더욱더 늘렸을 것입니다. '직접 해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잖아!'

어디 오링뿐이겠습니까? 우주 왕복선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부품 중에는 오링처럼 '수용 가능한 위험'을 안고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았겠지요. 설사 오링의 틈새 문제를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제2, 제3의 문제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운이 안 좋았을 때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발전소는 1971년부터 무려 40년간 가동 중이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습니다만, 결정적인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연히 지난 40년간 원자력 전문가, 노동자는 알게 모르게 '수용 가능한 위험'의 숫자를 늘렸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까요?

잠재적 문제가 낳은 참사

▲ <인간과 공학 이야기>(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최용준 옮김, 지호 펴냄). ⓒ지호
선생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지진 해일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뜬금없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떠올렸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금문교는 1937년에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거센 조류, 짙은 안개, 험한 지형 등 온갖 난관을 뚫고 건설한 이 다리를 미국 토목학계에서는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지요.

1937년 5월 27일, 20만 명의 시민이 모여서 진행한 개통식을 보면서 엔지니어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데요. 20만 명이 다리 위에서 자유롭게 거니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그 엔지니어들은 50년이 지나고 나서야 자기들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위험을 알게 됩니다.

1987년 금문교 개통 50주년을 맞아서 샌프란시스코 시는 다리를 오가는 차량을 통제하고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시민에게 다리를 완전 개방합니다. 새벽부터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구름처럼 다리로 몰려들었습니다. 다리의 양쪽에서 출발한 시민들이 다리 가운데서 만났을 때는 다리 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모두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약 25만 명의 시민이 다리 위에 서 있었고, 금문교는 지난 50년 동안 버텨 왔던 어떤 무게보다 훨씬 많은 무게를 버텨야만 했습니다. 네,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다리 중간 부분이 3m나 아래로 축 쳐졌고, 다리를 매단 케이블 몇 가닥이 이미 느슨해진 상태였으니까요.

만약 그 때 누군가가 "다리가 무너진다!" 하고 외마디 외침이라도 질렀다면, 수십만 명이 그대로 수장되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런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은 없었고(다리 위에 있는 사람은 사실 위험을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없어서 사고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금문교가 개통된 지 50년이 지나서야, 설계를 할 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이 다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십 만 명의 시민이 수장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감수하고서야,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었던 금문교의 숨은 결함을 밝혀낸 것입니다.

사실 현대의 인공물을 둘러싼 온갖 사연을 살펴보면, 이런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헨리 페트로스키가 <인간과 공학 이야기>에서 강조했듯이, 안타깝게도 대다수 엔지니어들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웁니다. 그래서 마이크 마틴과 롤랜드 신진저는 아예 이런 과정을 '사회적 실험'이라고 부릅니다. (<불확실한 세상>, 299~300쪽)

원자력 발전소, 우주 왕복선, 다리가 안전하게 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사회적 실험). 아무리 사전에 검사를 많이 하더라도 최종 검사는 그것이 사회 속에 던졌을 때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최종 검사는 금문교의 예처럼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대참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금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들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진 해일이 원자력 발전소를 덮쳐서 발전소의 모든 전기가 끊어지는 상황에 대비했어야 했는데…' 하고요.

글쎄요.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요? 바닷가의 원자력 발전소를 다 폐쇄해야 했을까요? 만약의(?) 위험을 대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해일이 덮쳐 정전이 생겨도 냉각 기능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원자력 발전소를 개조라도 했어야 했나요? (물론 불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지금 원자력 발전소 중에서 걱정없이 가동할 수 있는 게 남아 있을까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청와대까지 나서서 "국내의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국내의 원자력 발전소는 일본보다 안전장치를 훨씬 더 많이 해놓았기 때문이랍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바로 밑에서 진도 6.5의 지진이 나도 끄떡없다." 진도 7.0 이상의 지진이 나면 어쩌려고요?

스리마일 섬 사고, 챌린저호 사고 또 후쿠시마 사고를 살펴보면, 이런 호언장담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형 사고는 평소에는 통제가 가능했던 사소한 문제들(스리마일 섬 사고), 평소에는 위협이 아니었던 귀찮은 문제들(챌린저 호 사고),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잠재적 문제들(후쿠시마 사고)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문명사적 전환의 기회다!

K 선생님이 이렇게 푸념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강 기자,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사는 방법뿐이잖소?"

글쎄요. 스리마일 섬 사고, 챌린저 호 사고 또 후쿠시마 사고는 분명히 우리가 만든 세상은 첨단 기술의 실패가 낳은 재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곁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위험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찰스 페로는 <정상 사고>에서 위험을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대단치 않은 조치만으로도 감소시킬 수 있는 위험, 둘째 대응하는 데 중대한 노력을 요구하는 위험, 셋째 어떤 편익도 훨씬 능가하는 위험이 그것입니다. 일단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인공물을 놓고서 이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따져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의 경우에는 헨리 페트로스키가 지적했듯이 실패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위험을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리고 세 번째 위험의 경우에는 그것을 폐기하고, 대신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가진 시민들 사이의 논쟁도 불가피할 테고요.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현대 과학기술이 낳은 인공물의 위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민주주의를 요구합니다. 이제 전 세계에서 또 한국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둘러싼 대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원자력 에너지는 페로가 말한 세 가지 위험 중 어디에 속할까요?) 이런 논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합니다. 소수의 에너지 전문가와 정책 관료가 독점해왔던 에너지 권력에 균열을 낼 테니까요.

더 나아가서 우리는 조만간 선택을 해야할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와 핵무기로 상징되는 원자력 에너지와 그 위험을 계속 안고 갈 것인가?' 후쿠시마 사고는 어쩌면 문명사적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환을 만드는 것 역시 바로 우리의 역량에 달렸을 테고요.

다음 편지에서는 문명사적 전환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유쾌하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후쿠시마 사고가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태로 번지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지금 후쿠시마에서 핵 재앙을 막고자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는 수십 명의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이티에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2011년 3월 18일

강양구 드림.

이 글에 등장하는 'K 선생님'은 가공의 인물입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가슴 조리며 지켜보는 독자 여러분이 바로 'K 선생님'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여러 가지 내용은 다음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위험의 총량 : 챌린저 호 폭발 사고의 또 다른 진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김영사 펴냄).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 기술, 확대된 불확실성', <불확실한 세상>(김명진 외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인간과 공학 이야기>(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최용준 옮김, 지호 펴냄).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찰스 페로의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 : Living with High Risk Technology)>와 다이앤 본의 <챌린저 호 발사 결정(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 Risky Technology, Culture and Deviance at NASA)>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눈 밝은 편집자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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