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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고기 집착하는 사람들아! 이건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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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고기 집착하는 사람들아! 이건 몰랐지?"

[프레시안 books] 해롤드 맥기의 <음식과 요리>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내게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와 본문을 훑으면서 띄엄띄엄 건너뛰다 보니 그 첫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은 그 제목처럼 내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음식'과 '요리'에 관한 책이었으며, 그에 대한 상세한 과학적 해석을 담아 놓은 것이 그 첫 인상의 원인이었다.

아무리 흥미로운 책일지라도 1300쪽이 넘는 크라운판의 베개 같은 책을 단숨에 읽어치울 방법은 없다. 해롤드 맥기의 <음식과 요리>(백년후 펴냄)는 일종의 전문 사전으로 참고용 책이기에 그렇게 단숨에 읽으라는 책도 아니다. 요리나 음식을 하며 필요할 때에, 또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해당 부분을 찾아서 보라는 일종의 공구서이다.

우선은 가장 궁금한 '고기'를 다룬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 고기의 장은 색깔이 흰 고기와 붉은 고기의 차이부터 시작한다. 단기간에 많은 힘을 낼 수 있는 근육은 흰 고기이고, 꾸준히 힘을 낼 수 있는 근육은 붉은 고기라는 설명부터 나온다. 근육을 구성하는 섬유의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

▲ <음식과 요리>(해롤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백년후 펴냄). ⓒ백년후
거기에 우리가 먹는 동물들, 인간의 식육 역사, 사람들이 고기를 좋아하는 이유, 육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고기 섭취를 통한 감염, 광우병, 사육 동물을 통한 호르몬과 항생제의 섭취, 인도적인 고기의 생산, 근육 조직과 고기의 질감, 지방이 골고루 분포된 것이 고기의 맛과 관련이 있는지, 가축으로 기르는 동물들, 야생동물의 고기, 도축과 숙성, 포장과 보관, 방사선 조사, 고기를 적절한 질감을 지니도록 조리하는 방법, 고기를 조리하는 여러 가지 불에 관한 문제, 고기의 내장, 뼈, 가공한 고기 제품, 훈제나 건조 또는 소금에 절인 고기, 발효와 같은 끝도 없는 고기 이야기가 이어진다. 고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은 다 이 책이 있다는 듯이.

물론 이것들이 고기에 대한 지식들의 전부일 수는 없다. 지역별로 다른 고기 요리들을 죄다 다룬 것도 아니며, 개별적인 지역 사람들의 고기 선호에 대한 지식도 이 책에는 없다. 고기에 관한 지식 가운데 가장 밑바탕에 깔린 이야기는 고기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다. 이 과학적인 지식은 실제에도 아주 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지식이다.

고기는 어린 동물의 고기가 부드럽다고 선호하지만, 실제로는 풀을 뜯은 나이 든 동물의 고기가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낸다는 점, 또 우리가 흔히 '마블링'이라 부르는 근육 사이에 지방이 골고루 분포된 고기가 반드시 맛있는 고기가 아니라는 점과 같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지식들을 이 책은 공급한다. 또한 숙성이란 근육 효소의 작용에 의해 일어나며 일정한 정도 숙성이 되어야 맛이 좋아진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어떻게 하면 즙이 풍부하고 너무 익혀 푸석푸석해진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열과 요리법에 대한 지식들도 친절하게 전해준다. 고기에 익혀진 색깔을 예시하면서 고기에 일어난 화학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데에는 주방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나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읽는 독자가 거기까지 나아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냥 건너뛰고 맛있는 고기의 빛깔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만 읽어도 무방하다.

실제로 주방에서 사용하는 여러 요리의 기술들은 요리사들이나 음식을 하는 사람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지식이다. 선대에서 내려온 지식들도 있을 것이고 스스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기술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식들이 전부 옳으냐에 대한 의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여러 요리사들의 기술이 다르고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조리의 기술들에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숙련된 요리사라면 거부감을 느낄 만도 하다. 그렇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과학적 지식을 조목조목 요리의 과정에 대입한다는 것은 새로운 창의성을 위한 큰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다. 과학은 때에 따라 변하지 않는 지식을 전해주기에, 새로운 시도가 논리적 합당성이 있어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를 미리 예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원리를 알고 그 응용을 넓힌다면 요리사의 요리는 한층 더 발전할 소지가 충분해지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서양 사람의 관점이 뚜렷하게 보인다. 박학다문의 저자는 서양의 것만이 아닌 우리의 김치나 젓갈들도 다루고 있고 꼭 서양의 것만이 아닌 지구촌 곳곳의 음식들에게도 일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젖과 유제품에서 시작해서 와인, 맥주와 증류주로 끝나는 순서는 서양의 음식들을 대표한다. 자신의 관점에서 음식과 요리를 다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1984년에 발간된 초판에서 생선은 고기의 한 부분으로 다뤘다는 점도 서양 중심의 관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생선 애호가의 권유에 의해 고기에서 생선을 따로 분리해서 서술했듯이, 서양 중심의 <음식과 요리>는 차츰 전 세계를 아우르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음식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양의 음식들이 동쪽으로 밀려들었지만 이제는 동쪽의 음식도 서쪽으로 번져가며, 음식의 재료뿐이 아닌 조리의 방식이나 형태들도 서로 활발하게 교환하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지역의 음식들은 존재하지만 퓨전의 거센 물결은 차츰 그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서양 음식이니 동양 음식이니 하는 구분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재미를 꼽을 수 있겠다. 오랜 동안 출판에 종사하며 수많은 책들을 펴낸 이 책의 번역자 이희건을 만났을 때 이 방대한 책의 번역에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꼭 1년 전에 번역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수와 편집에 걸린 시간을 빼면 거의 7~8개월에 번역을 마쳤다는 뜻이다.

그렇게 빨리 번역을 마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원저의 재미에 번역자가 빠져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피곤한줄 모르고 미친 듯이 번역에 몰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느 공구서와는 다르게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 수 있다. 원저자의 문장은 마치 솜씨 좋은 문필가의 글처럼 유려하고 지식 전달에만 급급한 기색이 전혀 없다. 아마도 이 책의 원저가 장기간 잘 팔린 책인 것을 보면 지식의 내용도 좋지만 저자의 글 솜씨에 힘입은 바도 크다고 짐작할 수 있다.

옮긴이도 오랜 편집자 경험에서 우러난 매끄러운 번역에 상을 주고 싶다. 이 책의 더 큰 강점은 공구서인 책의 특성에 맞게 꼼꼼하게 공을 들인 색인에 있다. 색인 작업은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품은 들지만 빛은 나지 않는 작업이다. 애써 만든 색인이 몇몇 오자 때문에 독자들의 항의를 받기 일쑤인 그런 작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보통 색인의 몇 배나 더 힘든 입체 색인까지 곁들였다. 한 항목만이 아닌 곁가지 항목들을 배열하여 독자가 원하는 항목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다면 이 두껍고 비싼(?) 책에 맞는 독자들은 과연 누구일 것인가? 직업이 전문 요리사라면 이 책은 자신의 요리를 발전시키고 설명할 수 있는 든든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남들의 입맛에 자신의 생계와 명예를 거는 요리사라면 음식과 요리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할 수 없을 것이며, 고객들에게 자신의 요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도 항상 곁에 두고 탐닉해야 할 책이다.

그리고 요리에 관심이 많고 요리에 대한 즐거움을 아는 분들이라면 떠돌아다니는 레시피를 섭렵하기보다는 이 책 한 권이 요리에 대한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줄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호기심만 가득한 나와 같은 독자라면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나, 음식의 유래나 역사에 관한 보다 깊은 지식이 아쉽다. 하지만 한 권의 책에서 어찌 이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있으랴.

지금 구제역이 창궐하여 축산 농가가 피해를 입고, 옆의 일본 열도가 지진과 해일로 온통 비탄에 빠진 이때에 <음식과 요리>에 관한 이 글을 쓰는 일에 죄스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는 그래도 먹어야 산다는 것이 우리네 슬픈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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