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사림은 선조를 성리학의 이상적인 군주로 키우려고 교육에 나섰다. 이황, 이이, 기대승 등 듣기만 해도 대단한 유학의 거장이 모두 선조의 경연 강사로 나섰다.
성리학의 연구가 도덕성명(道德性命)에 편중되어 실제 현실의 문제에 대한 연구는 적고, 교조적이며 도덕적인 문제에 치중한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관점은 당연히 의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도덕적 관점에서 사람의 성욕을 절제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한의학의 모든 대가는 성(性)과 건강과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해왔다. <좌전>에서 전국 시대 명의 의화(医和)가 진후(晉侯)의 병을 논하면서 "그 병은 여자를 가까이하면서 절도에 맞지 않고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진단한 것은 한 예다. 선조 시대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더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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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음이 정상이 아닌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어도 낫지 않으니 신하로서 누구나 걱정이 됩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선조의 목소리에 대한 근심스런 논의가 계속되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모두 자제한다. 이런 가운데 율곡 이이가 포문을 열었다. 이이의 성격을 두고 <조선왕조실록>은 "쾌직(快直)하다"고 표현한다. 거침없이 직설적이라는 뜻이다.
"소신이 병으로 오래 물러가 있다가 오늘 옥음을 듣건대 매우 통리(通利)하지 않으시니 무슨 까닭으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여색을 경계하는 말을 즐겨듣지 않으신다하니 성의(聖意)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맑지 못한 것이 여색을 삼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선조를 책망한 것이다.
선조는 이런 지적에 "그대가 전에 올린 상소에서도 그렇게 말하였으나, 사람의 말소리는 원래 같지 않은 것인즉 내 말소리가 본디 그러한데 무슨 의심할 것이 있나"라고 답변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때 "옥색이 자못 언짢아하며"라고 선조의 불편한 심기를 자세히 묘사했다.
그렇다면 선조의 목소리 이상을 지적한 이이를 비롯한 신하들의 지적은 맞을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선조는 즉위할 때부터 공부 부담과 정치적 결정에 대한 압박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받으면 외향적인 사람은 교감신경이 흥분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부교감신경이 흥분한다. 선조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부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미주신경 과긴장증이 오는데 발성 장애로 쉰 목소리가 생기거나 위장 운동 장애가 생긴다. 목소리의 이상을 호소하고 나서 선조는 위장 장애로 위장약을 복용하거나 소화 불량 증상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이이를 비롯한 신하들이 성호르몬과 목소리의 관계를 논한 한의학의 이론적인 부분만 보다가 스트레스를 유발한 자신들의 책임은 망각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목소리를 관장하는 부분의 첫 구절을 "목소리는 신장에서 나온다"로 시작한다. 현대는 자기표현의 시대다. 말을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도 부지기수다. 교수, 교사, 가수, 성우, 상인에 이르기까지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말로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며 살다보니 성대가 피로해지는 것 당연한 일이다.
성대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목이 마르고 건조해져 결국에는 쉰 목소리, 갈라진 목소리로 고생한다. 어떻게 하면 목소리를 윤택하고 탄력있게 할까. <동의보감>은 좋은 목소리를 내는 법으로 이런 방법을 권장한다. "말하거나 와우거나 읽을 때 언제나 기해(배꼽 아래 있는 혈 이름) 속에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운 목소리를 내는 약물도 거론하였다. 껍질을 벗긴 살구씨, 졸인 우유, 꿀을 반죽하여 알약을 만들거나 곶감을 물에 담갔다가 늘 먹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흔히 달걀을 먹는데 흰자는 성질이 서늘해서 인후두의 열을 식히고 염증을 없애서 목소리를 좋게 한다고 생리적으로 설명하였다. 노래 부르기 전에 먹는 날달걀도 속설이 아닌 근거 있는 정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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