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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피 빨아먹는 대학은 뱀파이어! 이름은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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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피 빨아먹는 대학은 뱀파이어! 이름은 'Inc.'

[프레시안 books] 제니퍼 위시번의 <대학 주식회사>

이번 학기에 문을 연 고려대학교의 신축 기숙사는 민간 자본으로 시설을 짓고 외부 업체가 운영하며 수익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 새로운 민자 기숙사의 한 달 입주비는 식비를 제외하고 39만5000원. 학교가 직접 운영하던 기숙사에 비하면 비용이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이 학교는 지난 2008년 등록금 인상분으로 총 175억 원을 챙겼으며 그 해에만 적립금으로 412억 원을 쌓아뒀다.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영리법인인 학교 재단이 그 쓰임새도 불분명한 채로 어마어마한 돈을 해마다 남긴다는 것은 돈을 제 목적에 맞게 제 때에 쓰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 1년이 멀다하고 새 건물을 지어 올리면서도 학생에게, 강사에게, 청소 노동자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대학을 더 이상 대학이라 불러야 할까?

▲ <대학 주식회사>(제니퍼 위시번 지음, 김주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대학 주식회사>(김주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의 저자 제니퍼 위시번은 원제인 "University Inc."대로 대학을 아예 기업이라 부른다. 저자가 끈질긴 취재로 미국 대학의 추악한 이면을 들춰낸 이 책을 들여다보면 대학을 왜 기업이라 하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브라운 대학 교수 데이비드 컨은 나일론 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폐질환 집단 발병 사건을 조사해, 발병 원인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학회에 발표하려고 했다. 그러자 해당 기업은 컨이 현장 조사 때 서명한 비밀 유지 협약을 근거로 그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 기업은 위협에 그쳤으나 대학은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컨이 몸담고 있던 의과대학은 그에게 발표를 취소하라고 지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강의를 빼앗고 결국엔 대학에서 내쫓았다. 내막에는 나일론 기업과 브라운 대학의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기업의 오너와 가족은 브라운 대학병원의 이사회 임원이었으며, 병원의 실험실과 진료 센터를 건립하는데 막대한 돈을 댔다. 교수 하나 때문에 기업과 대학의 밀월관계를 망칠 수 없었던 것.

대학도 대학이지만 교수들, 특히 의과대학 교수들이 제약 회사와 금전적인 유착관계를 맺고 있음이 드러났다. 특정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한다든지, 제약 회사의 자문 역할을 맡는다든지, 주식을 보유하는 등 제약 회사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교수들이 해당 업체의 신약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직접 수행하는데 그 결과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논문 대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제약 회사가 저명한 교수의 이름만 빌려 임상 시험에 관한 논문을 직접 쓰고 이를 학술 잡지에 버젓이 게재한다. 교수는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로 수천 달러를 챙기면 그만이다. 미국 대학에서 수행하는 임상 연구비의 80%를 기업이 댄다는데, 이렇게 기업의 돈이 밀려들수록 대학의 신뢰도 망가질뿐더러 국민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다른 전문직은 (형식적으로라도) 공정한 판단을 해칠지 모르는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시늉을 하는 데 반해 대학은 교수들한테 금전적 이해관계를 공개하라고 그저 '권고'할 뿐이다. 그렇다고 연방정부의 관리 감독이 잘 이뤄지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물론 미국 대학은 과거부터 기업과 꾸준히 협력했다. 19세기 말 주정부가 토지를 무상으로 불하하여 설립된 주립 대학은 초기부터 공학과 농업 등 실용적인 목적의 교육을 실시해왔으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생명공학의 발전, 생명체에 대한 특허 부여, 연방정부의 대학 지원액 감소, 1980년 베이-돌 법 제정 등 연이은 사건을 거치며 대학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이제 "대학과 기업 간의 경계가 없어져 버렸다." "문제는 기업의 돈이 대학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이 아니라 대학이 기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제 대학은 명실상부한 기업이 되었다.

기업이 된 대학은 대학에서 생산된 교육과 연구를 시장에 내다팔아 돈을 번다. 대학들이 돈을 벌 욕심에 정보기술(IT) 호황에 기대어 너도나도 온라인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정작 교육은 부실해지고 문을 닫는 가상 대학만 속속 생겨났다. 일부 대학에선 특허와 라이선스를 통해 연구 성과를 상업화하여 '대박'을 치기도 했으나 그런 성공 사례는 극히 드물 뿐 대부분 대학에선 지적 재산권을 관리 유지하는데 오히려 돈이 더 들어가는 게 현실이다. 컬럼비아 대학은 자신이 보유한 형질 전환 관련 특허를 연장하기 위해 의회에 로비를 벌이고 생명공학 기업과 법적 소송을 벌이는데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비용을 충당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처럼 공격적으로 지적 재산권을 확보하려는 치열한 경쟁 탓에 연구 결과로 만들어 낸 특정 물질뿐만 아니라 연구 과정에 쓰이는 도구나 기법까지 특허를 내자 후속 연구가 방해를 받기 일쑤였다. 저자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쥐덫에 특허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덫으로 쥐를 잡는다는 생각 자체에 특허를 부여함으로써 더 나은 쥐덫을 개발할 동기를 없앴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특허나 학교 기업을 통해 연구 결과를 상업화하려는 시도가 근래에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대학을 기업처럼 '경영'하는 것은 이미 보편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이 회사를 차리고 한약재, 건강 음료, 고추장, 햄 등 상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다판다. 최근엔 학교 기업이 학교 담장 바깥으로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되었고 업종도 여관, 노래방, 담배 판매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폭 확대되었다. 교수들은 특허출원에 열을 올린다. 대학이 자본을 출자해 주식회사(지주회사)를 설립하여 기술을 판매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지적 재산권 확보 노력이 대학에 돈을 안겨다 준 것도 아니다. 대학이 저한테 어울리지도 않은 일을 하니 당연한 결과일 밖에. 전국의 140여 개 대학 산학협력단을 대상으로 한 해 동안 지적 재산권으로 보유한 기술·지식을 타인에게 이전하여 올린 수익을 조사한 결과 학교당 평균 1억4500만 원에 달했다. 그런데 특허를 출원하고 유지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평균 1억9200만 원이었다(<2008 산학 협력 백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학교 기업도 적자를 면키가 어렵다.

어디 상업화뿐이랴. CEO형 총장이랍시고 기부금 유치에 열을 올리지 않나, 비용 절감을 위해 조직을 구조 조정·아웃소싱하고 시간강사한테 학부 교육을 맡기다시피 한다. 그러면서도 학교 홍보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입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 모아 등록금 수입을 올리려 애쓴다. 몇 년 전 미국발 금융 위기가 강타했을 당시 몇몇 사립대학이 주식 투자에 손을 댔다가 수백 억 원을 날려먹은 적도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999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세금으로 지원된 연구 도구에 지나친 독점적 라이선스를 부과하지 말라는 지침을 발표했으며, 2003년에는 영국의 왕립학회가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하고 공격적인 특허 출원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과학자들이 특허가 아닌 좀 더 개방적인 혁신 모델을 강구하라는 서한을 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 보낸 일도 있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겠지만 기업마저도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유력한 기업들은 단기간에 수익을 내려는 대학의 탐욕을 비난하면서 대학이 자신의 중요한 역할을 외면하고 있음을 우려하였다. 기업 대표들은 대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육과 인재 양성이며 그럼으로써 기술 혁신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상품 개발은 대학에 적합한 역할이 아니며, 대학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러한 기업의 우려는 대학과 기업의 상생적 관계를 모색하는 위시번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대학 연구가 갖는 진정한 가치는 특정한 목표가 정해진 응용·개발 연구가 아니라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는 기초 연구에 있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주었음을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는 저 유명한 바네바 부시의 보고서 <과학, 끝없는 개척지>가 떠오른다. '순수 과학'의 이상을 꿈꿨던 부시는 기초 과학은 산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을 해야 하며 과학자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세계 대전 후 미국 과학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축적된 기초 과학 지식이 종국엔 생명과 환경에 위협을 가하는 전쟁 무기와 생명공학 상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면 '순수 과학'을 향한 이상이 얼마나 순수했는지는 의문이다. 부시의 생각과는 달리 기초 과학과 그것의 기술적 응용이 딱 부러지게 구분되지 않으며 오히려 기초 연구 그 자체가 바로 상업적 가치를 지니는 경향이 최근 생명공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게다가 과학(지식)은 중립적이기에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사례들에 의해 반박된 바 있다. 착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 유익하게 쓰이기만을 마냥 기다릴 것인가?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과 노바티스 간의 연구 계약을 조사한 외부평가단의 지적은 오늘날 기업이 대학에서 수행되는 연구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를 정확히 꼬집었다.

"노바티스가 (대학의) 식물·미생물학과와 제휴한 것은 응용 연구를 더 많이 진행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업적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기초과학 연구에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의 과학 연구가 지향해야 할 바로서 기초 연구를 주장하기엔 우린 너무 많이 달려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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