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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 벗어던지고 우주로 날아간 혁명가들!

[親Book]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

과학 소설(SF)이 남성의 장르라는 편견과 달리,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의 SF는 페미니즘의 전선이기도 했다.

50년대 이전 SF 작가 조안나 러스의 말을 빌리자면 "많은 여성의 이미지만 있을 뿐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대 페미니스트들은 SF 작가, 편집자, 출판인으로 연합해 함께 성장하며, 수동적인 여성상과 편협한 이성애 중심주의에 반발해 의도적인 '페미니즘 SF'를 썼다. 이러한 사회소설은 마르크스주의와 반전 운동과 같은 다른 사회운동과 힘을 합쳐 현대까지 이어지는 SF의 지향이 되었다.

SF가 사회 소설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드러내며 제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비평의 대상이 된 이 시대 SF 작가들 중,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소개된 이는 단연 어슐러 르 귄이다. 우리나라에도 뉴웨이브기 페미니즘 SF의 걸작이자 필독서로 꼽히는 <어둠의 왼손>(1969년)이 여러 차례 번역 출간되었고, 가장 최근인 2002년에 나온 시공사 판은 지금도 구할 수 있다.

▲ <어둠의 왼손>(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겨울이 끝없이 계속되는 행성 '게센'의 사람들은 평소에는 성욕도, 눈에 띄는 남성 또는 여성의 특징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26일마다 일종의 발정기인 '캐머기'에 들어가고, 그 며칠 동안만 남성 또는 여성이 된다. 게센 인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누군가의 아내인 동시에 어떤 아이의 아버지일 수 있다. 이 행성에 우주연방 에큐멘의 대사 겐리가 홀로 찾아가고, 우리의 온갖 편견을 전복하는 '다름'을 만난다.

<어둠의 왼손>은 하나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어느 날 얼음판 위에서 서로 밀고 끌어주는 두 사람의 모습이 르 귄의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그들의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었다. 이 매혹적인 소설은 SF라는 장르에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외계화해 다시 들여다보며, SF의 본질적인 경이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르 귄은 1976년 '과학 소설과 브라운 부인'이라는 에세이에서 <어둠의 왼손>이 SF이고, SF이어야 했던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소설은 인간이 빵 이외에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SF는 (굳이 말을 보태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듭 확인해야 하는 바) 상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 작가에게 좋은 도구, 의식의 확장 그 자체, 저 광대하고 어두운 배후를 엿볼 수 있게 할지도 모르는 어떤 존재"라고 말하며, 그렇기에 SF가 "이 이상한 시대의 진정한 메타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페미니즘 SF도 많다. 1950년대부터 SF계의 몇 안 되는 여성 작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주디스 메릴은 여성에게 부과되는 '어머니상'이 주는 공포와 무게를 다룬 <어머니만이>와 같은 소설을 발표했고,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에 반대해 캐나다로 영구 이주했다. 그의 전 남편이자 편집자인 프레데릭 폴은 공산주의자로 동료 SF 작가들과 공동 거주를 실험하고, <달그렌>, <여성 남자(The Female Man)>, <꼬뮨 2000> 같은 페미니즘 및 마르크스주의 SF를 적극적으로 출판했다. 그는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를 솜씨 좋게 비판한 우주 활극 <게이트웨이>로 1977년에 네뷸러 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했다.

조안나 러스는 여성 해방의 수준이 다른 여러 평행 우주를 탐험하는 <여성 남자>를 썼고, 남성 중심적인 의식 구조와 사회 구조를 소설가일 뿐 아니라 운동가이자 SF 비평가로서 분석했다. 사뮤엘 딜레이니는 동성애자이자 흑인이라는 이중의 소수성을 끌어안고, 성별과 성적 지향을 자유롭게 바꾸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달그렌>에서 성적 편견의 경계를 도발했다.

이중에는 <어둠의 왼손>처럼 지금도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책도 있지만, 21세기에 읽자니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낡은 이야기도 있다. 21세기의 SF는 더 이상 여전사가 되어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남성과 싸우자고 평행 우주의 다른 '나'들을 도발하는 주인공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SF 안에서 이미지를 넘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젠더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SF는 이 이상한 시대의 진정한 메타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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