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김남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을 읽지 않았고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앞으로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은 이 글을 건너뛰는 편이 좋겠다. 게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또 다른 작품 <커튼>의 가장 중요한 스포일러가 명백하게 누설될 예정이므로, 스포일러에 민감한 분들에겐 이 글이 최악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건장한 청년들은 일찌감치 떠나 버려 마을에는 결혼 못한 처녀들과 은퇴한 장교들이 많다. 우리 마을의 취미이자 오락은 '남 얘기 하기'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화자는 마을의 존경받는 의사 제임스 셰퍼드다. 그는 이날 저녁 애크로이드의 초대를 받고 그의 방으로 간다. 애크로이드는 죽은 연인 패러스 부인이 자신에게 편지를 남겼다며 패러스 부인이 누군가의 협박에 못 이겨 자살한 것임을 밝힌다. 그리고 문제의 편지가 도착한다. 애크로이드는 셰퍼드에게 혼자 있고 싶다고 청하고, 셰퍼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크로이드가 서재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추리 소설의 특성상 당연하게도 애크로이드 저택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씩 살해 동기를 갖고 있다. 애크로이드와 돈 문제로 자주 다투었던 의붓아들 랠프 페이턴, 과거에 모시던 주인을 협박한 전력이 있는 집사 파커, 애크로이드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여 지내는 조카딸 플로라 애크로이드, 애크로이드가 죽은 그날 아침 셰퍼드를 찾아와 독약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던 저택 관리인 러셀 양. 이때 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한다. 은퇴한 후 킹스 애벗 마을에 정착한 이 노탐정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찰 대신 사건을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수사하기 시작한다.
1926년 발표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말 그대로 추리 소설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던진 충격이 얼마나 컸냐면, 무려 20년이 지난 1945년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이 추리 소설 장르를 공격적으로 비판한 글을 <뉴요커>에 발표할 때 제목을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지 알게 뭔가(Who Cares Who Killed Roger Ackroyd?)"라고 붙였을 정도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범인은 바로 화자인 '나', 제임스 셰퍼드였던 것이다. 푸아로의 바로 옆집에 살았으며 심지어 그의 조수 역할까지 자청했던 남자, 애크로이드의 절친한 벗이었던 남자, 사건의 전말을 객관적으로 가감 없이 전달한다고 믿어졌던 남자가 범인이었다. 그러니까 탐정 혹은 수사관에 준하는 인물이 살인범으로 밝혀졌다는 건, 탐정/범인을 진실을 대변하고 정의를 실현시키는 존재/사회 질서를 교란시킨 죄로 처벌받아 마땅한 존재의 대립 쌍에 두고 구별지어왔던 독자들의 암묵적인 관습을 보란 듯이 비웃은 셈이다.
크리스티의 데뷔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 푸아로와 함께 등장하는 '나' 헤이스팅스의 존재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화자 '나' 셰퍼드를 자연스럽게 헤이스팅스를 대신하는 존재로 여겼다. 푸아로는 순진한 헤이스팅스에게 자주 그러했든 셰퍼드의 무지를 자주 비웃고 "하지만 난 알고 있습니다"라고 뻐긴다. 헤이스팅스에게는 사실 거의 어떤 캐릭터라고 할 만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지 홈즈의 친구 왓슨이 그러했듯, 푸아로의 천재적인 두뇌를 돋보이게 만드는 도구(이자 독자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셰퍼드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게다가 셰퍼드가 사건을 기술하는 방식에는, 자신의 살인 행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누락시키는 교묘한 트릭이 존재했다.
"그 편지는 9시 20분 전에 그에게 전달되었다. 내가 그를 떠난 것은 정확히 9시 10분 전이었고, 편지는 여전히 읽히지 않은 채였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망설이며 무슨 잊은 일은 없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빠뜨린 건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방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은 이 작품을 "유쾌하게 써내려갔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분명 위의 문장을 쓸 때 단어 하나 구둣점 하나마저 쓸까 뺄까 전전긍긍하며 혼자 웃고 있었을 것만 같다. 추리 소설의 특성상 독자는 거의 전적으로 작가에게 종속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을 따라가며 작가가 탐정의 입을 빌려 해설하는 사건의 전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닫힌 결말, 닫힌 세계.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는 결국 폭군이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필연적으로 재독을 요하는 작품이다. 일단 범인이 셰퍼드임을 알고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다면 양가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데 첫째, 성실한 기록자의 시선을 따라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살인자의 관점으로 독자를 끌어들였다는 데서 오는 소름끼치는 불유쾌함(이를테면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처럼)이 느껴진다.
둘째,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트릭은 분명 온갖 '잘못된' 단서들로 흐릿해지고 교란시키는 뛰어난 기교로 뒷받침되지만, 사실 '화자가 범인이다'라는 놀라운 역발상 자체에 몰두한 나머지 다소 무리한 방식의 추리를 감행한다는 게 느껴진다. 범인의 의외성 면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트릭의 과도한 장식성에 대해선 분명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곧 소개할 피에르 바야르 역시 이 점에서 착안하여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썼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간결하고 원숙한 후기작들을 읽다보면,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기발한 자기과시가 다소 김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놀랍게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지막 작품 <커튼>에 이르면 그녀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불러온 온갖 논란을 자신의 손으로 '끝장 낸다'. 지극히 음울하고 비관적인 이 걸작에서, 푸아로의 신실한 친구 헤이스팅스마저 강력한 살인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을 집행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가장 사악한 범죄자(푸아로는 그를 두고 <오셀로>의 간교한 인물 이아고에 비유한다)를 푸아로가 직접 처단한다. 그리고 '살인자' 푸아로는 자살한다.
▲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펴냄). ⓒ여름언덕 |
더불어 같이 읽으면 좋을 책.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펴냄)를 추천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이자 파리8대학 문학교수인 바야르는 상당히 대담하게 "셰퍼드가 진범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푸아로야말로 '해석 망상' 환자일 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는 책 첫머리 발문으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클라이맥스를 인용한다.
"잠시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흘렀다. 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은 미쳤소.' 그러나 푸아로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미치지 않았소.'"
바야르는 곧바로 확언한다.
"우리는 과연 에르퀼 푸아로의 추리가 유효한지, 그리고 셰퍼드 의사가 살인을 저지른 게 정말 확실한 사실인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낱낱이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다시 읽는 이 책은 부득이하게도 자신 또한 한 권의 추리 소설이 될 것이며, 결국 책의 마지막 쪽에 가서는 독자를 우리가 보기에 가장 그럴듯한 해답 쪽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니까 바야르는 롤랑 바르트가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썼던 그 유명한 구절,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를 즉각 실천한 셈이다. 바야르가 제시하는 이 사건의 진범을 여기서 밝힐 순 없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진범이 등장한다.
놀라운 건, 이 해석이 지나치게 그럴싸하기 때문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본이 머릿속에서 지워질 지경이다. 어떤 문학 텍스트에 관한 꼼꼼한 비평문이 분석가/탐정의 수사록과 유사하다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는 그 비유에 가장 잘 들어맞는 주제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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