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해왔는지라 해박하고 박식했다. 대화가 우리 현대사를 주제로 할 때, 그이는 촌철살인 격의 말을 내뱉었다.
"이 나라는 MADE IN USA 아니냐."
간혹 한마디 말이 한권의 책보다 더 깊은 진리를 품고 있을 적도 있다.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를 이처럼 간단히 압축하고 있는 말이 없겠다 싶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법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소중화' 운운하며 살다 나라 경영권을 일제에 빼앗기면서 우리의 근대사는 질곡에 빠졌다. 오랫동안 민족적 열패 의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국운을 되찾고자 하는 거대한 열망이 우리에게는 별로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고작 3·1 운동과 6·10 만세 정도였고, 분열을 거듭하면서도 명맥을 유지했던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청소년 시절, 학교는 여기까지만 가르쳤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친일을 했던 무리가 쓴 문학 작품이 버젓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이 나라 근대사가 왜소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 강한 호기심으로 책을 읽어나가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른 나라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듯, 나라를 되찾기 위한 무력 행동이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쳐졌다는 것을 말이다. 국내에서도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며 일제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희한한 점은 이 자랑스러운 역사에 재갈을 물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사회주의 세력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더욱이 김구의 임시정부가 미국과 펼친 침투 작전도 알려지지 않았다. 좌우를 망라하고 빛나는 저항의 역사를 가려버린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바로 이 나라 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했다.
왜 우리의 현대사는 굴절되고 왜곡되고 말았을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불행하게도 자력으로 나라를 해방하지 못해서다.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 세력은 1940년대부터 사실상 궤멸 상태에 이르러 활동이 미약했다. 중국공산당 일원으로 활동한 일군의 세력도 한반도 운명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국내에 있던 사회주의자들도 거의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임시정부도 너무 늦게 행동했다. 나라를 제 힘으로 찾지 못했을 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마는지 우리 현대사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현대사는 'MADE IN USA'라는 말이 나왔고, 그 모든 불행한 것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 세력 가운데 이른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며 역사의 역설이라 여겼다. 숨기고 감추고 억압하니 오히려 더 강한 반발력으로 금기에 도전하는 무리가 나타나는 것이리라. 한 번은 거쳐야 하고 홍역을 치르는 과정에서 균형을 잡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분당하는 사태를 지켜보며 이른바 '종북 세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이 나라 역사에 강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이들이 있구나 싶었다. 이것은 역사의 함정일 터이다. 한 체제의 출발이 상대적으로 진보성을 띠었다 하더라도 오늘의 정치가 인민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비판받아 당연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추종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그런 관점을 수용할지 의심스러운데다, 그 무리 때문에 진보 진영 전체가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적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 <현대사 아리랑>(김성동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
책 자체도 읽어내려 가기 쉽지 않았다. 1차 자료가 그대로 본문에 인용된 데다, 연관성 있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겹치는 내용도 많았다. 토박이말이 자주 나오는 것을 좋아해야 하는지 불편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김성동의 개인사를 아는 이라면, 그가 왜 이런 책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터다. 더불어, 책에 실린 인물이 하나같이 장편 소설 주인공감이건만, 소설가가 소설로 쓰지 않고 약전으로 쓸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볼 만했다. 삶이 역사였던 이들이라 아마도 소설이라는 그릇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 근대사가 자랑스러울 터다. 어찌 이토록 많은 이들이 민족 해방과 민중의 삶을 위해 살았을까 싶다. 일제의 탄압이 아무리 심했다 하더라도 강철 같은 신념으로 암흑의 시대를 헤쳐 나갔다. 읽다 보면, 과연 내가 그 시절의 청년이었더라면 그들처럼 살았을까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많이 배운 이는 공부하다 보니 참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서, 가진 것 없는 이는 두루 잘 사는 세상 만들어 보려고, 여자로 태어난 이는 그 서러운 운명을 바꿔보려고 가시밭길을 걸었다. 이 책의 부제대로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에 깔린 분노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단 한사람의 업적으로 수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권력을 누렸던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그것이다. 기실, 역사가들의 작업을 소설가가 차용하여 문학 작품을 써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 근현대사 전공자들에게 도전한다. 치열하게 객관적 진실을 추구했는가, 라고. 권력이 공식화한 결과물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며, 다른 증언과 자료를 내놓는다. 역사의 함정에 빠진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셈이다.
이제 나이가 드는 것일까. 극단으로 흐르는 이들의 선동에 동의하지 않게 된다. 거기에 숨어 있는 권력욕에 넌더리를 친다. 오래 걸리더라도 스스로 발견한 진실이 아니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 조급증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성동도 그런 심정으로 이 책을 썼겠지 싶다. 좌우의 극단주의자들과 다른 차원에서 나는 내 나라 역사가 자랑스럽다. MADE IN USA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버리고 민중들의 염원을 기반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어서다.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이 공간에서 펼쳐졌다면, 우리 역사야말로 시간에 펼쳐지는 대장정이리라. 그리고 이 과정이 바로 김성동이 기리는 혁명가들의 한을 풀어주는 해원굿이 되리라 믿는다.
<현대사 아리랑>을 붙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갈 필요는 없다. 책상머리에 두고 순서에 상관없이 틈틈이 읽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그러면서 문학평론가 김종철이 이 책의 추천사에 쓴 말을 느리게 확인하면 될 터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편견 없이 역사를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투적인 이데올로기적 인식 틀을 떨쳐버리고, 뛰어나게 양심적인 인간들이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대목에서 끝내 좌절하고, 역사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경로와 그 의미를 정당하게 음미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성숙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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