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이 크다'라는 말에 대한 기록은 동양 삼국에서 모두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통이 크다'와 '통이 좁다'를 '위구불소(胃口不小)', '위구흔소(胃口很小)'로 표현한다. 글자 그대로 위장의 구멍이 작지 않다가 '통이 크다'이고 위장의 구멍이 작다가 '통이 좁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통이 크다'를 '腹つ大'로 표현하는데 '배가 크다' 즉 위장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위장은 왜 '통이 크다'는 말의 핵심이 되었을까. 위장은 음식물을 담는 큰 그릇이다. 또 음식물을 담지만 금방 비워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 것이지만 남인 음식물이 지배하는 공간인 것이다.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내 것과 남의 것을 따지지 않는 관용 정신에 바탕을 둔 기관이 위장이며, 이런 위장의 기능을 염두에 둔 말이 바로 '통 큰'이라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육체에 집착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허공이 인간을 먹여 살린다. 말기 암 환자가 되어 집중 치료실에 들어간다면 인체의 요관, 호흡관, 배변 기관, 기관지 등의 관들은 모두 외부의 관으로 이어진다. 이 순간 바로 인간이 관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중에 관이 하나라도 막힌다면 생리 활동에 엄청난 지장을 받는다. 있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이 나를 살린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은 바로 이런 사실의 명확한 표현이다. 특히 소화관은 이런 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관이다. 구강에서 항문까지 총 8m나 되는 소화관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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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11장과 6장은 '무용지용'과 '현빈지문(玄牝之門)'에 대해 상징과 해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위장의 존재와 그 작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1장부터 살펴보자.
"수레바퀴에 달린 30개의 살이 모두 바퀴의 안쪽 테인 곡으로 모이고, 그 곡의 한가운데 뚫려있는 빈 구멍에 축을 넣어야 수레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어도 그 속이 마땅히 비어야 그릇이 쓰임새를 얻고, 벽을 뚫어 문과 창을 내고 방을 만들어도 텅 빈 안이 있어야 방의 쓰임새를 얻는다. 그러므로 있는 것을 이로움으로 삼고 없는 것은 쓰임새로 삼는다."
이 대목은 비어있는 관, 즉 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화관이 축이 되어 인체가 생리 기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11장이 위장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라면 6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위장의 기능을 설명한다. 특히 '현빈지문(玄牝之門)'의 '현빈(玄牝)'에 주목해야 한다.
'현(玄)'은 '적(赤)+흑(黑)'이다. 검은 것은 어둠으로 죽음의 문이고 붉은 것은 밝음으로 생명의 문이다. '빈(牝)'은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음식물은 생기를 축적한 채로 입으로 들어갔다가 생기를 잃고는 항문으로 나온다. 들어가는 것은 생(生), 나오는 것은 사(死)로 이런 생사의 문을 출입하는 관을 바로 위장이라고 본 것이다.
'통이 크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위장의 크기와 관계되는 말이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이익에 집착하거나 내 것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같이 들어 있다. 한의학의 고전 <본경소증>에서는 과식에 대한 경고를 다음처럼 기술하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음식이 필요하다. 곡식이 위로 들어오면 소화를 통해 전신에 음식물의 영양을 퍼뜨린다. 과식으로 소화 작용이 원활치 못하면 기(氣)가 막히고 응결하여 위장의 맥락이 약해진다. 위장에 힘이 없어져서 배가 고프지 않고 항상 포만감과 막힘을 느끼면서 모든 이상이 일어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대형 할인점이 소비자를 혹하고자 내놓은, '통큰 치킨'은 통이 큰 치킨이 아니다. 먹기만 하고 내놓지 않으면 변비가 되어 <본경소증>의 경고처럼 인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기업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모으기만 하고 내놓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통이 크다'의 말에 들어있는 핵심 가치는 '관용'과 '절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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