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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지구 침공 임박? 군대도, 경찰도 못 믿어!

[親Book]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그림자>

얼마 전, 올슨 스콧 카드의 과학소설(SF), <엔더의 그림자>(나선숙 옮김, 루비박스 펴냄)가 번역 출간되었다. 만화와 게임으로도 만들어지며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엔더의 게임>(백석윤 옮김, 루비박스 펴냄)의 후속작이다.

올슨 스콧 카드의 데뷔작인 <엔더의 게임>은 1985년 단행본으로 처음 나왔다. 지구인들은 '버거'라는 외계인과 우주 저편에서 장기전 중이다. 지구에서는 엄격한 산아 제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엔더의 부모는 엔더의 형과 누나가 보인 특별한 재능 덕분에 셋째 아이의 임신을 허락받는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금지된 아이', 셋째 엔더는 결국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져 군사학교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다른 학생보다 작은 몸집 때문에 비웃음을 사지만, 놀라운 리더십으로 주위 아이들을 제 편으로 끌어당기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전투 게임'에서 승리해 나가는 엔더에게 독자들은 열광했다.

카드는 <사자(死者)의 대변인>, <제노사이드>, <엔더의 아이들> 세 권을 후속으로 출간했는데, 여기까지가 '엔더 4부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공사에서 전부 번역 소개했고, 루비박스에서 최근 첫 권인 <엔더의 게임>을 새로 내놓았다.

▲ <엔더의 그림자>(올슨 스콧 카드 지음, 나선숙 옮김, 루비박스 펴냄). ⓒ루비박스
카드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99년에 <엔더의 게임>과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새로이 발표했는데, 이 책이 바로 이번에 나온 <엔더의 그림자>이다. <엔더의 그림자>의 주인공은 군사학교에서 엔더를 만나 최측근이 되는 엔더보다 더 어린 천재 소년, 빈이다. 이 소설은 <엔더의 게임>에서 '엔더보다 더 작은 아이'로 소설 중반에 등장하는 빈이 우주로 나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땅콩 몇 알로 생사가 나뉘는 빈민가에서 자란 빈은 무섭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워 살아남아 우주선에 오른다. 그리고 인류의 희망이라고들 하는 엔더를 만난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엔더버스(Enderverse)'라고까지 불리는 거대한 세계의 역사다.

우주전쟁을 소재로 한 SF는 차고 넘치고, 처음에는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분투하던 주인공이 차츰 성장해 큰일을 해내는 전개는 '우주 활극(Space Opera)'의 정석이다. 그렇다면<엔더의 게임>과 <엔더의 그림자>의 어디가 그렇게 특별한 걸까?

SF에 대한 흔한 편견 중, '애들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SF를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되짚어 보라. 어린이를 겨냥한 표지나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문구를 제외하고, 실제로 그 이야기 속에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가? 아마 없으리라. 청소년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하인라인의 글조차도, 실제 소설 자체에는 운전과 연애가 가능한 '젊은 어른'이 등장한다.

이는 비단 SF에 한정지을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린이는 자신의 감정과 내러티브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추상적인 미성숙의 상징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가 어린이의 물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진 채 소설에 주체적으로 등장하기란 매우 힘들다. 미국 판타지 소설가 션 스튜어드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한 소설을 예로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 아들과 함께 우주선을 탔는데, 아들의 팔이 부러졌다. 물론 어머니는 그렇게 격렬해진 분쟁에 분노한다. 그러나 그 언급 이후 아들은 다시 나오지 않고 어머니는 열심히 싸우기만 한다. 이것은 소설에서 어린이를 다루는 아주 전형적인 방식이다.

실제로 열 살짜리 다친 아이가 어머니에게 오지 않는 것이, 아무리 바빠도 주인공이 방에 돌아가 아들이 어쩌고 있나 보거나 점점 격렬하고 위험해지는 전투 와중에 아들을 생각하지 않고 화려한 액션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스튜어드는 묻는다. 걔는 화장실은 어떻게 가고 밥은 어디서 챙겨 먹고 머리는 어떻게 감을까?

또 소설에 등장하는 어린이/청소년은 성장을 지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떤 어려움을 겪은 아이는 그 단계를 넘어 이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어린이는 반드시 미성숙한 존재, 경험을 통해 극복해야 할 특성을 가진 존재일까?

<엔더의 게임>은 SF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연령대를 비약적으로 낮추고 이런 물음에 대한 전복적인 대답으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 엔더와 그의 동료들은 전투를 위한 훈련을 받고 공부를 하지만, 그런다고 '작은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훈련을 받아 봐야 예닐곱 살짜리 몸이다. 또래 집단의 미묘한 알력과 성장에 대한 초조함, 아무리 독립된 주체라도 권력을 쥔 어른과 생존을 위해 교류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 성인에 비해 절대적인 완력이 딸려 겪는 어려움이 이 이야기에는 그대로 살아 있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직 아껴둔 독자들을 위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엔더의 게임>과 <엔더의 그림자>에서 엔더와 빈이 마침내 해 내는 일들은 오히려 어린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엔더의 그림자>에서 빈은 예비 군인들을 자기 입맛대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어른들에게 맞선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몸집, 고정관념에 덜 지배당하는 사고, 어른들의 당연한 무시와 방심을 이용해서. 어린이가 아직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어린이 그 자체로서 성장해 나가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엔더의 그림자>는 <엔더의 게임>을 반드시 먼저 읽은 다음에 보아야 할 책으로, 이후에 빈이 엔더를 전투 학교에서 만나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사실을 독자가 안다는 전제 하에서 쓰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엔더의 게임>을 재미있게 읽고 나면, <엔더의 그림자>를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진짜 어린이들이 소설의 중심에 선, 이 드문 SF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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