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8일. 트위터 영향력 1위인 시골 의사 박경철 원장님이 본인의 트위터에 직접 올린 글이다. 바로 이 책 데이비드 오렐의 <거의 모든 것의 미래>(이한음 옮김, 리더스북 펴냄)에 대한 격찬이다.
오랜 피로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2010년 여름, 난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광산에서 다이아몬드 원석 하나를 발견했다. 이미 수많은 광부들이 다녀갔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그렇지만 대부분의 원석은 싸구려 공깃돌보다도 덜 매력적이다. 숙련된 세공 기술과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킬링 포인트가 있어야지만 1년치 월급을 탈탈 털어서 12개월 할부로라도 반드시 살 수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되는 것이다. 대체 그 돌조각이 뭐라고 결혼 예물로 포지셔닝된 것일까?
4년 전, 난 이미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 저명한 비즈니스 미래학자들의 기술적 미래 예측이라는 훌륭한 원고를 죽도 밥도 아니게 만들어버렸다. 당시에는 꼬장꼬장한 선배에게 주눅이 들어 내 생각을 말하지도 못했고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며 콘셉트도 타깃도 포지셔닝도 이도저도 아닌 책을 만든 것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눈물이 났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그리고 이건 다이아몬드 원석이 아닌가!
▲ <거의 모든 것의 미래>(데이비드 오렐 지음, 이한음 옮김, 리더스북 펴냄). ⓒ리더스북 |
캐나다에서 처음 출간된 제목은 <아폴론의 화살>이다. 퓌톤을 죽이고 가이아로부터 신탁을 탈취한, 미래를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는 '아폴론의 화살'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은유적 표현이다. 이를 어떻게 성미 급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한단 말인가. 단군 신화도 아니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론을 현대에 다시 살려내어 "독자 여러분, 이 책은 신화 책이 아니고 미래 예측에 관한 책이에요"라고 다이렉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신화, 철학, 과학, 수학, 천문학, 경제학 등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지식을 토대로 예측의 역사를 살펴보고, 미래 예측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예측이 가장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씨, 건강,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으니 '거의 모든 것의 미래'라고 하면 제목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후일담이지만 과학칼럼니스트인 이정모 선생님을 만나 식사 하는 자리에서 제목의 의미를 한참이나 생각하셨다며 편집자의 상업적 마인드에 대해 살짝 꼬집으셨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이건 그냥 내 마음대로 칭찬으로 해석하련다.
그렇다면 이 책의 독자는 누구인가? 미래 전망서와 트렌드서를 읽는 사람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자인가? 아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빚어낸 인류의 미래에 관한 결정판 <거의 모든 것의 미래>는 다양한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리더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가벼운 독서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미래 예측에 관한 사회학적, 과학적 배경을 살펴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과연 올바른 예측을 하고 있는지, 예측의 한계와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심도 깊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타깃이다.
그렇다면 리더들을 위해 이 책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 카피와 디자인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 나는 훈남인데다 실력도 뛰어난 디자이너에게 원고 자체의 내용보다는 원고의 콘셉트에 대해 몇 번씩 만나 설명을 했다. 주변에서는 너무 자주 만나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만날 때마다 한 번이라도 더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표지는 한 번에 통과가 되었다. 그렇지만 본문을 진행하는 동안 세상에 듯도 보도 못한 해괴한 문자들을 찾아내고 입력하느라 혼쭐이 난 디자이너는 엄청난 텍스트의 압박과 난해한 기호들로 인해 다시는 이런 책은 하지 않겠다며 고통스러움을 호소했다.
이왕 드비어스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똑똑하기로 치면 따라올 자 없는 교정자도 쥐어짜 보자. 나는 세상에는 두 가지 책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인덱스가 있는 책과 인덱스가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인덱스 분량만도 수십 쪽에 달하는데 교정자는 마지막까지 수많은 용어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울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OK 교정과 대조를 보면서 그날 밤 난 내가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 번역자인 이한음 선생님께 완벽해질 때까지 피드백을 받기로 했다. 정말이지 선생님의 번역 실력은 최고다. 원고를 보내드리고 나서 기다림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기다리고 독촉하고 혼나고 수정하고 기다리고 독촉하고를 몇 달간 반복했다. 용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짚어주시며 번역자이자 감수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셨다.
몇날 며칠을 수십 개의 SERI 보고서를 읽으며 리더와 석학들에게 필요한 항목과 덕목들을 이 잡듯 뒤졌다. 부제와 띠지, 표지 카피 단어 하나하나 고르고 골라 섬세하게 다듬었다.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하면서 경박하지 않고 그렇지만 상업적인 타깃과 포지셔닝, 메시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카피를 찾아서…….
그렇게 원석을 다듬으며 난 어느 정도 자신감과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미래는 어떨까? 저자 데이비드 오렐은 이런 말을 했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경제'처럼 '출판'도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 선택, 심리의 영향을 받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상호작용이다. 다시 말해 '살아 있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성의 표지다.
그렇지만 데이비드 오렐은 혼돈과 오류를 걸러낸 보다 정교한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나비 효과의 폭풍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철저한 시장 분석과 독자 패턴 분석, 과학적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정교한 모형의 책을 만들어낸다면 어떨까? 공들여 자신이 편집한 책의 미래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전지전능한 아폴론의 화살! 지금 이 화살을 손에 쥐고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있는 구제역을 막아내어 안타까운 농심(農心)을 위로하고 자식 같은 소돼지를 구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이종격투기 선수처럼 현란한 몸놀림으로 결정타 한 방 날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하다. 내가 만든 책을 100만 부 베스트셀러에 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지어 아폴론의 화살은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할 능력이 있다니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책에 등장하는 피타고라스처럼 아폴론의 화살을 손에 쥐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2011년 1월 12일. 신화 속에 등장하는 아폴론도, 아폴론의 화살을 얻었다는 피타고라스도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과학이라는 눈부신 기술이 있고 이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예측 과학의 한계와 오류는 분명히 있지만 인간이 자신의 능력보다 뛰어난 슈퍼컴퓨터를 개발했듯이 우리는 이러한 오류들을 걸러낸 또 다른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만 나비(효과)를 탓하자. 아폴론의 화살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을지라도 위험을 가리키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가 항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지는 않을까? 설령 폭풍을 예측할 수는 없다고 해도 폭풍에 대처할 우리의 능력은 예측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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