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숙취 해소 '헛개나무'…"최선입니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숙취 해소 '헛개나무'…"최선입니까?"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헛개나무 vs 칡

술 하면 생각나는 선배가 있다. 회식 후 이튿날 앞니가 완전히 깨진 채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평소 집 앞에 있던 전봇대가 갑자기 두 개로 보였다는 것이다. 중간으로 가야겠다고 걸었는데 전봇대와 정면으로 부딪혀 앞니가 나갔다. 한 번은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물었더니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아스팔트가 번쩍 일어나서 자기 빰을 때렸다는 변명.

연말연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음주로 인한 건강의 적신호다. 특히 소주는 지금도 우리가 많이 마시는 술이지만 예전에도 경계 1호의 술이었다. <지봉유설>을 보면, 소주가 원나라에서 온 술이며 오직 약으로만 쓰고 함부로 마시지는 않았다라고 풍속을 해설했다. 그러면서 소주 독의 무서움을 경고한다.

"명종 때 김치운(金致雲)은 교리(校理)로서 홍문관에서 숙직을 하다가 임금이 내린 자소주(紫燒酒)를 지나치게 마셔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소주의 독은 참혹하다."

"술은 독이 될 수 있다. 평상시에 내섬시(內贍寺)에는 술을 빚는 집이 있다. 그 집 위에 덮은 기와는 쉽게 낡아 몇 해에 한 번씩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까마귀나 참새 떼가 모여들지 않는다. 이것은 술의 독한 기운이 서리기 때문이다."

술은 본래 약재로 쓰였다. 고의서 <양생요집>을 보면 술의 약효를 이렇게 설명한다.

"술은 약재로 적당히 마시면 모든 맥을 조화시키고 나쁜 독을 물리치며, 차가운 기운을 제거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장위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습기를 제거한다."

실제로 의사의 '의(醫)' 자도 술과 관련이 깊다. 밑받침이 '닭 유(酉)' 자로 되어 있는데 이것에 '물 수(水)' 자를 더하면 '술 주(酒)' 자가 된다. 이런 탓에 의사들은 신체 이상에 약재 대신 술을 가지고 치료하기도 했고 또 <양생요집>의 얘기처럼 술을 백약의 으뜸으로 평가했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술의 성질은 더운 것이다. 술을 마시면 불꽃이 치솟는 것과 같은 열기가 올라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술을 마신 이튿날에는 몸이 차갑게 식는다. 술은 알코올과 물로 빚는 것인데, 열기의 원인인 알코올이 분해되고 나면 몸속 위장에는 찬 성질을 가진 물만 남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술을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매운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먹고 사우나를 하는 것도 바로 위장에 남는 차가운 물을 데워서 혈관 속으로 빨리 흡수해 위장의 따뜻한 생리 기능을 되돌리려는 의도이다. 이런 원리를 염두에 두면, 각종 숙취에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가릴 수 있다.

칡은 예전부터 음주 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칡이 차가운 물을 흡수 발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칡은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심지어 칡을 캘 때 포클레인으로 캐내야 할 정도다. 그러나 그 줄기는 다른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햇볕을 독점해 다른 나무를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칡의 줄기와 잎이 뿜어내는 물의 양은 엄청나다. 한 시간에 두 양동이 정도의 물을 뿌리에서 끌어올려 잎에서 증발시킨다. 이런 칡의 특성 탓에, 그것은 인체에서도 가장 깊은 위장에서 물을 끌어올려 가장 높은 목 뒤의 뻣뻣함이나 열감을 식혀주고 풀어준다. 이런 약성으로 칡은 술독으로 생긴 위장의 차가운 물을 끌어올려 입이 마르는 갈증을 해소한다.

콩나물이 술독을 잘 푸는 것도 거의 같은 이유다. 콩은 콩나물로 자랄 때 물을 흡수하고 배설하면서 위로 자라 오른다. 위장에 있는 차가운 물기를 잘 배설하여 위장의 온기를 되돌린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해장술도 존재한다. 술로 차가워진 속을 데워야 위장의 온기가 되살아나면서 인체의 신진대사가 정상으로 되돌아간다고 믿은 것이다.

▲ 최근 헛개나무 열매로 만든 각종 기능성 음료가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최근에 술 깨는 약의 대명사가 된 헛개나무는 어떤 약성을 가지고 있을까? 헛개나무의 열매는 지구자(枳椇子)다. 육기(陸機)의 글을 보면, 이 헛개나무와 관련해서 이런 얘기가 있다.

"강남에서는 이것(지구자)을 맛있는 것이라 하여 나무 꿀 즉 목밀(木蜜)이라고 한다. 술맛을 삭혀버리는 것으로 이 나무는 기둥으로 만들면 그 집안에 있는 술은 모두 산패한다."

어떤 남방인이 주택을 수선하면서 이 나무 한 조각을 술 단지에 떨어뜨렸더니 그 술이 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헛개나무의 약효를 기록한 의서를 좀 더 살펴보면, 이것은 숙취에 효과가 있기보다는 과도한 음주 탓에 열이 쌓여 입이 마르면서 소변이 자주 나오는 만성 알코올성 신체 이상 증상에 유효하다.

헛개나무가 왜 숙취 해소에는 별 도움이 안 될까? 앞에서 말하듯이 숙취의 핵심은 위장이 차가워지면서 신진 대사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헛개나무 열매는 위장 온기를 되살리는 매운 맛은 없다. 위장의 습기를 배설하는 이뇨작용과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 <본초강목>의 요지다.

그렇다면, 최고의 술 깨는 약은 무엇일까? 한의학 의서를 보면, 갈화 즉 칡꽃이다. 처방 이름으로 '갈화해성탕(갈화로 만드는 술 깨는 처방)'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다. 칡꽃은 보라색으로 여름 초입에 흩뿌려지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지금 연말에는 이 꽃이 있을 리 없다. 몸에 맞게 마시고 삼갈 따름이다.

지난 1년간 '낮은 한의학' 연재를 성원해준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한의학의 낯선 사유를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졸고들이 여러분의 사고의 폭을 넓히고 건강을 지키는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더욱더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필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