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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개념' 20대 : 김예슬? 아니 너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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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개념' 20대 : 김예슬? 아니 너희들!

[2010 올해의 책]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프레시안 books' 송년호(21호)는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 서평위원이 의견을 모아서 선정한 두 권의 '올해의 책'(<삼성을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외에도 8명의 서평위원이 나름대로 선정한 '나의 올해의 책'을 별도로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김예슬 선언문>을 보고 "이렇게 글을 잘 쓰니 자기 소개서도 잘 쓰겠다"라고 부러워했다지만 나는 그들의 글을 읽으며 "김예슬은 무슨, 지들이 훨씬 잘 쓰는구먼. 어떻게 대학생들이 이렇게 글을 잘 쓰지" 싶었다. '진심'.

여기서 '그들'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펴냄)에서 저자 엄기호의 수업을 듣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리포트로 써 낸 덕성여대·연세대 원주 캠퍼스 학생들이다.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그들의 글을 읽었을 때 치밀어 오른 저 한 줄에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추천하는 이유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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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지음, 푸른숲 펴냄). ⓒ푸른숲
하나는 고백하기 부끄럽고도 매끄럽게 설명되지 않는 이유다. 지금 내가 글 써서 밥 벌어 먹는 입장인 까닭이다. 가진 거라곤 이 재주뿐이니 내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었으면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좋은 글을 쓰는 또래들을 볼 때마다 치졸하니 초라한 감정이 솟구친다.

이 지질한 감정은, 단순히 기자를 진로로 선택한 사람으로서의 알량한 자의식 말고도, 무엇이 됐든 비교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위태로워진다는 생존의 불안감과도 연결돼 있다. 당연히 대학 때는 더 심했다. 비영어권으로 유학을 간다든지 다른 애들 취업스터디 할 때 영화 동아리나 시민단체에서 시간을 보낸다든지, 짐짓 남달라 보였던 행동은 한 꺼풀 벗기면 비교우위를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몸부림이었다.

연애 경험도 '잉여' 짓도 특이한 취향도 어떻게든 '스팩(Specification)'에 포함시켜야만 마음이 편했던 시절, 고만고만한 범인(凡人)들끼리 서로의 불안을 눈치 채면서도 솔직한 얘기를 꺼내놓지 못했다. 누굴 탓하거나 구조에 대들거나, 그도 아님 혼자 '대학은 기업의 하청 업체'라며 피켓을 들 자신도 없이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이 얘기를 한다. 별것도 아닌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너희들은 속물"이라는 기성세대의 비난을 감수했던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짱돌을 들라"는 외침에 뒷머리를 긁거나 'SKY' 출신 20대 저자들의 고백조차 '남다른 스펙'이라며 부러워했던 이유, 김예슬의 선언 내용이 아니라 그의 학벌과 글 솜씨를 쳐다보고 있었던 이유와 맞닿는다. 그 기록이 나의 치졸한 욕망을 상기시킬 정도로 훌륭한 글이었으니, 참으로 묘한 경험이었다. 질투는 '너희들도 이런 발가벗겨진 느낌에서 이런 고백을 했겠구나' 하는 공감으로 귀결됐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글을 잘 썼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학생들의 과제물을 취합한 저자나 책으로 엮어낸 편집자가 손을 댔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그 글을 보고 탄복한 것은 문장 구조가 탄탄했단 사실과는 무관하다. 설사 원본은 맞춤법이 다 틀려 있었더라도 중요치 않다. 글이 좋았던 이유는 그들의 언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이들이 20대들이 유아 상태에 머문 채로 성장하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언어가 없고, 언어가 없으므로 세상을 읽지도 세상에 개입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 속에서 이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언어로 사고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글이나 속에 담겨 있는 통찰에 빛이 났으며) 그 언어는 엄기호가 다음 질문을 던지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만일 이 책이 '아, 이 친구들도 자신의 언어로 사유하는구나' 하고 그들의 말을 발견하는 데 그쳤더라면, 그래서 확성기를 들이대고 말았더라면 '이것도 청춘이다' 정도의 박력밖에 갖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제목은 '저자의 언어'로 되묻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엄기호는 이들의 언어를 통해 "나는 어떤 언어로 그들과 만나려 했는가', '또 나의 언어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새롭게 인식하게 했는가'를 사유함으로써 자신 역시 성장했다고 밝힌다. "영어로 말한다면 이 책이 20대들과 연결되는 전치사는 'with'이고", "그들은 나의 지적 파트너였으며 도반(道伴)이었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이 책은 확실히 '엄기호의 성장기(記)'로 읽힌다. 이들의 수업은 가르침을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에게 "남의 언어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언어로 말하는 힘, 그리고 그에 대해 팽팽하게 긴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했다.

기업의 하청 업체가 되어버린 대학, 그 안에서도 취직과 상관없는 교양 수업에서 이런 만남과 기록이 가능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 대화를 놓치지 않고 책으로 묶어낸 부지런함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교실 안팎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래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사유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는 믿음에도 기대를 걸게 한다.

그럼 언어의 무게를 깨달은 이들의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저자 엄기호와 덕성여대 학생 윤희정의 대담으로 진행된 이 책 관련 기사 (☞'프레시안 books' 13호 : '20대는 '찌질이'? '486'한테 보고 배운 것뿐인데')에서 찾을 수 있다. 소통이며 관계 맺기다. 그리고 이제는 20대를 비난했던 기성세대가 답할 차례다.

"사람은 약하다. 한 사람이 '정치화'하려면 수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486세대는 한 번 자신의 20대의 경험을 돌이켜보라. 학회, 동아리, 교지, 신문, 유인물, 현수막 등…. 이 모든 정치화의 장치의 수혜를 486세대는 듬뿍 받았다. 그리고 이런 장치를 계기로 수많은 관계가 만들어졌고.

그런데 이런 장치의 절대 숫자가 줄었는데 20대 보고 "너희는 왜?" 하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질타다. 나는 20대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교수, 강사, 시민운동가,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를 만나는가?'"


'올해의 책'은 역설적이게도 '굳이 올해가 아니어도 괜찮은 책'들이다. 그리고 시대를 잘 읽은 책들은 꼭 시대를 뛰어 넘는다. 그러니 이 책을 집어 드는 건 굳이 올해가 가기 전이 아니어도 좋고, '이 시대의 20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진지한 고백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며, 자신을 성장하게 한 사람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사려 깊을 수밖에 없다.

약간은 감동적이기까지 한 '수업 이야기'는 사례(Example) 연구에 게으른 학자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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