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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진짜 폭발은 실험 한 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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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진짜 폭발은 실험 한 번뿐이었다!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이승헌의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하나의 폭발이 있었다. 이것은 실험이었다. 실험의 주체는 '천안함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민군 합동 조사단'(이하 조사단).

그들은 올해 4월 혹은 5월 어느 시점에 자체적으로 수중 폭발 실험을 실시했다. 그러곤 폭발 후 흡착된 것으로 보이는, 천안함 선체 곳곳의 물질과 천안함 침몰 지점 부근에서 건진 어뢰의 흡착 물질을 긁어내 이를 함께 비교했다. 그들은 이 세 가지 물질이 동일하다고 결론 내리며, 이것은 곧 천안함이 폭발로 인해 침몰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조사단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자. "세계 최초의 버블제트형 폭발."

하나의 발견이 있었다. 그것 또한 "세계 최초의 발견"(감격하기엔 이르다). 지난 6월 29일 조사단은 언론 3단체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위의 실험 후 조사단이 내놓은, 흡착 물질의 성분 분석 결과가 관련 학계의 상식과는 크게 어긋난다는 것이 주된 논점이었다. 과학적 상식에 불일치하는 그 유례 없는 결과에 또다시 고무되었던 것일까. 그들은 "산에서 고래를 만난 격"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더 이상의 해명은 없었고 설명회도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9월 13일 한 권의 보고서를 출간하고 바로 다음날 조사단은 해산했다. '세계 최초의 발견'은 정정되지 않았다. 조사단이 이를 재검증하고자 시도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 물리학자 이승헌의 사건 리포트>(이승헌 지음, 창비 펴냄). ⓒ창비
한 묶음의 메모가 있었다. 천안함 사건의 과학적 진상 규명에 앞장섰던 한 과학자가 보내온 사건 리포트이자 연구 일지였다. 그의 메모에는 위의 폭발 실험 이후 자신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사연, 조사단의 논리상 문제점 등이 거칠긴 했지만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만난 과학자, 정치인, 기자들에 대한 기록도 흥미로웠다.

이 사건의 추이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의 연속. 다만 이 사건이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었던 만큼 진상 규명의 어떠한 성과가 책에 담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다른 한편 이 일기들을 차근차근 묶어내는 일이 과연 언론의 속보에 익숙한 독자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이 고민은 포스트잇에 적힌 채 새로운 교정지가 나올 적마다 그 위에 슬쩍 붙여지곤 했다.

조사단의 과학적 검증의 문제, 다시 말해 '검증하지 않는 과학'의 문제는 무엇인가. 본래 현대 과학의 통상적 절차를 따른다면, 조사단의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내용을 동료 연구자들을 통해 검증하고 학회나 논문을 통해 인정받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오히려 이 책의 저자가 보여주는 검증의 사례가, 답답해 보일 정도로 원칙적이다.

그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동료 연구자에게 묻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도 모르는 사항을 수많은 동료 연구자에게 묻고 또 묻는다. 또 이미 자신이 직접 검토한 실험 결과를 바로 언론을 통해 발표하지 않고 논문으로 완성하여 이를 동료에게 재차 검증 받는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2005년 황우석 사태 당시 황우석 씨가 보여준 '기자 회견 과학자'로서의 면모와 크게 대조된다. 2005년 황우석과 2010년 조사단, 그 둘의 유사함을 따져보는 일도 재미있을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가깝게는 김대중 정부 당시 '신지식인론'이 등장하면서부터였을까, 과학자는 '비판적 지식인'과는 거리가 먼 '과학기술 전문인'으로서 제 역할을 정한 듯하다. 저 멀리 사르트르, 아인슈타인의 예까지 굳이 꺼낼 것 없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서의 비판적 지식인상(像)은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그 자리를 전문인들이 채웠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전문적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를 통제할 사회적 장치가 사라졌다는 말과 뜻이 같다.

과학자들은 대중과 멀어지고 그럴수록 대중이 과학기술에 품는 환상은 커져가는 듯하다. (그 수많은 과학 에세이들이 정치·사회적 이슈를 생략한 채 잘 팔리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이승헌 교수의 고군분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지 않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에 품고 있는 환상이 도리어 과학적 진상 규명을 막아서는 것은 아닌지,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성찰이 전혀 부재한 현실에 어떤 중요한 계기라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우리는 황우석 사태를 잊은 지 오래다), 과학기술을 도입함에 있어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는 진정 요원한가 등의 문제의식이 시급한 과제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연평도 포격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좀 더 널리 공유하고자 했던 바람을 다시 주머니 속에 구겨 넣게끔 했다.

한 실험이 있다. 실험자는 피험자들에게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래를 틀겠노라고 미리 알려준다. 그 노래는 실제로 재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그 노래를 실제로 들었다고 말한다. 흔히 '화이트 크리스마스 효과'라고 불리는 이 실험 결과는, 인간의 청각이 무의식적으로 '공백을 채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청각만의 능력이라고 보기엔 뭔가 아쉽다.

다행히, 인간의 오감(五感) 아니 육감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영역을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는 실제로 터지지는 않았지만 실체감이 확실히 느껴지는, 어떤 모종의 포격에 대면하고 있지 않은가. 이승헌 교수가 얼마 전 보내온 메일의 내용처럼, 평화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를, 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야 하는가를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의 일기도 계속 쓰이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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