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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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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병

[한윤수의 '오랑캐꽃']<314>

70년대 말 이야기다.
친구네 집에 가정부가 있었다.
그 집 식구들이 가족처럼 잘 대해주었지만, 그녀는 버스 안내양으로 취직해 나갔다.
얼마 후 길에서 만났을 때
"(안내양 생활이) 좋아요?"
하고 묻자 그녀가 말했다.
"훨씬 좋죠! 퇴근이 있잖아요."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에겐 농장생활보다 공장생활이 훨씬 좋다.
왜?
퇴근이 있으니까.

경기도 여주와 이천에서 캄보디아 여성 6명과 남성 1명이 왔다.
모두 농장에서 일한다.
퇴근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
더구나 한국에 온 지 2달 밖에 안 된 초년병들이다.
아직 *외국인등록증도 안 나왔다.

초년병의 특징은 겁에 질려서 두리번거리는 것.
꼭 촌닭 장마당에 내놓은 것 같지!

두리번거리면서 소파(가명)가 말했다.
"매달 10만원씩 떼는데, 왜 떼는지 모르겠어요."
A간사가 별 표정 없이 대답했다.
"왜 떼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부당하게 공제한 돈이라면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지요."

금방 울 것 같은 큰 눈을 꿈벅이며 소렉(가명)이 말했다.
"먹을 게 없어요. 쌀하고 김치 밖에 안 줘요."
A간사가 무감동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것만 줘도 주는 건 주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농장 그만둘 수는 없지요."

시타(가명)가 최후 진술하듯 말했다.
"방도 너무 비좁고, 농장 옮기고 싶어요. 다른 데 갈 수 있나요?"
A간사가 판결을 내리듯 말했다.
"갈 수 없어요. 1년 동안은!"

대화가 위험 수준이다.
초년병에게 사무적인 대답은 금물이다.
가뜩이나 불안한데, 그런 대답은 작은 희망마저 앗아갈 수 있다.
이 순간에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 마디.

가까이 가서,
뻐드랑니를 드러내고 썩소를 지으며
"걱정 마!"
하자,
이 병아리들 비로소 미소를 짓는다.
됐다!
무릎을 굽혀 눈을 맞추고
"도와줄게!"
하니 활짝 웃었다.

그들은 마음이 풀어져서 한 시간 정도 더 지껄이다 갔다.
통역 셍호르가 수고했다.

▲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초년병들이 모였다. ⓒ한윤수

*외국인등록증 : 외국인등록증은 90일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에게만 발급된다. 따라서 이 쯩이 나와야 비로소 한국에서 90일 이상 일한 합법 노동자라는 실감이 난다. 쯩이 나오기 전에는 항상 불안하다.

☞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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