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위증을 하던 증인 앞에 갑자기 변호인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 증거를 들이댄다. 가끔 즉석에서 새로운 증인을 신청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방청석 어딘가에 앉아 있던 증인이 조용히 일어나면서 증인석으로 걸어 나온다. 넷째, 새로운 증거와 증언으로 상황은 급반전되면서 억울한 누명을 쓴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 받는다.
다섯째, 무죄를 선고 받기까지의 피고인의 인생 역정, 정확하게는 무죄를 선고 받기 위한 변호인의 고군분투 과정이 법정에, 아니 영화에 그대로 연출된다.
그렇다면 현실은?
한 번이라도 형사 법정에 가본 사람이라면 기대를, 혹은 상상을 깨는 풍경에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은행 창구 앞에서 번호표를 들고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썰렁한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사건 번호가 호명되기를 기다리기 마련이다. 기다리는 시간보다 재판을 받는 시간은 더 짧기 마련이어서 생소한 법률 용어들의 뜻을 이해하려고 정신을 가다듬을 찰라 '자리로 돌아가라'는 판사 혹은 법정 경위의 불호령에 피고인은 당황해 하며 방청석으로 돌아온다.
검사는 너무 많이 읽어서 그대로 외워 버린 듯한 상투적인 문장을 기계적으로 읊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형량을 법원에 구한다. 변호인은 이야기할 때만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다가 피고인보다 더 상반신을 굽실거리며 판사에게 선처를 해줄 것을 호소한다. 판사가 피고인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할 때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절대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대신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봐 주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인도 늘 그래왔듯이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능수능란하게 소송을 진행한다. 오로지 이런 소송을 처음 해보는 피고인만이 '이게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꽉 짜인 형사 재판의 틀 안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인생 역정을 혹은 사정을 마음껏 이야기할 기회는 없다.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자신의 분노나 억한 심정을 형사 법정에 표출할 방법도 적당하지 않다. 신속성, 혹은 공정성을 이유로 판사는 귀와 눈을 막는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기가 막히고 적나라한 총천연색의 인생 극장이 형사 법정 안에서는 그저 사건 제○호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게 건조하다.
그렇다면 진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다 똑같은 살인자가 아니다. 돈을 훔쳤다고 해서 다 똑같은 도둑놈은 아니다. 범죄를 즐기는 사이코패스가 있는가 하면 (적당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 그게 범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걸 범죄로 간주하는 법 규정이 더 문제가 있는 때도 있다. 범죄라고 볼 수 있는지 애매모호할 때도 있다. 예컨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건 똑같은 데도 어떤 경우에는 단순한 채무 불이행으로 그칠 뿐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기로 처벌을 받기도 한다. 저마다 동기와 이유가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피해자와의 관계도 다르고 시간과 때도 다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실체도 다르다. 단정하건대 백 개의 살인이 있다면 그 백 개의 살인은 모두 다르다.
▲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갤리온 펴냄). ⓒ갤리온 |
저자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1964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1994년부터 베를린에서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2009년 8월에 출간되고 나서 무려 50주 이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건조한 형사 사건 제○호를 완벽한 드라마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심과 열정이 필요하다.
변호인이라고 하더라도 관심과 열정을 가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사건과 의뢰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하나의 사건을 풀기 위해 의뢰인의 인생을 탐구하고 의뢰인 주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건에 집중한다.
저자는 의뢰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기 위해 23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결국 사건을 풀어내고 만다. 사건 주변을 찍은 사진 한 장을 골몰히 지켜 본 끝에 상황을 반전시키는 대목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의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변호사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변호사에게 필요한 제1덕목은 관심과 열정이라는 것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건조한 형사 사건 제○호를 완벽한 드라마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도 빼 놓을 수 없다.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허구와 실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이야기에 대한 해석도 저자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것은 이 책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책 제목에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들어 있다.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어떻게 감히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는가'와 '어떤 방식으로 살인자를 변호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예, 변호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이라면 자기가 변호하는 사람이 극악무도한 자라고 하더라도 변호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당연히 무죄를 주장해야 한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형량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변호사는 고객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최선은 진실을 아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정황만 알고 있어도 혹 억울한 판결을 당할 수 있는 의뢰인을 보호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의뢰인이 정말 무죄일까 하는 의문은 중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변호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161쪽)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비교적 간단하다. "법이 정하고 있는 절차를 잘 활용해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확립되어 있는 형사 절차 안에서 어쨌든 피고인은 형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를 추정 받는다. 증거가 없으면 피고인이 자백을 하더라도 유죄를 선고할 수 없고 그럴싸한 증거들이 아무리 많아도 결정적인 단서가 없으면 역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기소만 되어도 피고인은 범죄인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피고('피고인'이라는 표현이 맞다. '피고'는 민사 소송에서 쓰이는 말이다)의 말을 믿고 안 믿고 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법정에서 필요한 것은 증거일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피고가 훨씬 유리하다. 그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않아도 좋으며 정확한 진술을 했다는 증거를 낱낱이 열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검사와 판사에게는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이들은 증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주장해서는 안 된다. 말은 간단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추정과 증거를 항상 정확히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짐작에 지나지 않음에도 우리는 확실히 알았다고 믿고 앞만 보며 성급히 달려 나가기 일쑤다. 그리고 앞질러간 모든 것을 다시 주워 담기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306쪽)
자칫하면 가십거리로 치부될 뻔한 이야기들이 음미하고 곱씹어 볼 이야기로 재탄생한 것은 직업에 대한 고뇌와 양심을 가진 변호사가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50주 이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는 말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진중한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책 안 표지에는 "약자의 편에 서서 활약한 경험을 묶은 것이 이 책이다"라고 쓰여 있지만 그보다는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을 묶은 것이 이 책이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독일의 언론 <슈피겔>이 "대단한 이야기꾼의 탄생"이라고 평가한 것이 찬사의 의미만은 아닐 테다. 최소한 이 책을 읽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가벼이 여기는 사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의미가 들어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신문의 사회면에 난 오늘의 사건, 사고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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