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하는 약성이 큰 만큼 독성도 커서 생강을 버무리곤 했다. 아무튼 농민이 반하를 가져오면 일단 약성(독성)이 큰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입으로 씹어보는 것이다. 햇살이 뜨거운 어느 여름 오후, 한 할머니가 반하를 들고 한의원으로 들어왔다. 외양으로는 진짜가 분명했지만, 그래도 폼을 잡고자 한입에 깨물었다.
그 반하를 깨물자마자 입에 불이 나고 목구멍이 따가워서 오후 내내 괴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만상을 찡그린 나를 보는 그 할머니의 온화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처럼 반하뿐만 아니라 칡뿌리인 갈근, 산추라 불리는 백출, 천궁, 작약 등은 늘 한의원을 방문하는 (대부분이 농민인) 환자들과 약초상들이 수급을 조절했다.
지금도 이런 약재는 많지만, 햇살과 바람으로 말려 하나하나 껍질을 벗긴 그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약재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 약재와, 기계를 통해서 말린 약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햇볕으로 말리면 겉은 마르지만 속에는 진액이 축적돼 고유의 약성이 보존되지만, 기계로 말리면 내부의 진액조차 날라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렇게 진액이 날아간 약재가 예전만큼 약효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태양초 고추를 그토록 주부들이 찾는 것도 바로 이런 생활의 지혜 때문이다. 이처럼 지역 농민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한약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어졌다. 최근에 <맛있는 식품법 혁명>(김영사 펴냄)을 펴낸 송기호 변호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1995년 정부와 이익집단이 주도해서 더 많은 한약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틀을 짰다. 또 국산 한약재의 이력추적제도 폐지했다. 중국산 한약재가 국내에 들어와 국산 한약재로 둔갑해 팔리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조장한 것이다. 그 결과는 한약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국내 한약재 농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관련 기사 : GMO는 합법, 개고기는 불법? 식품법의 '추악한 진실'!)
▲ <향약집성방>. ⓒ프레시안 |
그러면 역사적으로 국산 한약재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국산 한약재는 예로부터 '향약'이라고 불렸다. 향약에 대한 효능 연구와 중국 약재와의 비교는 <향약집성방>에서 완성되는데, 이를 완성하고자 수많은 의관들이 중국에 가서 국산 한약재를 중국 약재와 대조 검토하면서 끊임없이 확인과 개선을 꾀했다.
세종 12년 노중례가 명나라에 가서 수십 종의 약재를 비교 검토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이런 향약에 대한 집착은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향약집성방>에 인용된 고려 의서도 향약에 대한 오랜 연구와 경험이 누적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이런 향약에 대한 인식은 <향약집성방>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대개 백 리나 천 리쯤 서로 떨어져 있으면 풍속이 서로 다르고 초목이 생장하는 것도 각각 적당한 곳이 있고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도 또한 습성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옛 성인이 많은 초목의 맛을 보고 각 지방의 성질에 순응하여 병을 고친 것이다."
이렇게 최근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역'에 대한 관점이 <향약집성방>에 담겨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신토불이(身土不二)',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 등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하다. 그리고 이런 <향약집성방>의 정신을 최근까지 실천했던 이들이 바로 한약재를 생산하는 우리 농민이었다.
최근에 소비 수준이 높아진 중국에서는 한약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산 한약재의 가격도 폭등하는 추세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한약재를 중국산에 의존하면서, 국내의 생산 기반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런 현실은 큰 위기다. 그나마 인삼, 당귀, 천궁, 작약, 황기, 산약 정도가 넉넉할 뿐이다.
중국인은 감기가 걸려도 한약을 먹고 치료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중국산 한약재의 원가가 치솟는 상황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몸에 딱 맞는 국내산 한약재뿐만 아니라 질이 낮다고 업신여겼던 중국산 한약재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한의학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의사는 우리의 파트너인 농민을 돌보지 않았고 그 결과는 이렇게 참담하다. 더 늦기 전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자본의 논리보다 상생의 논리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상생'의 원리로 의학을 실천하는 한의사들이 모르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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