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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녀' 제인 구달! 그게 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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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녀' 제인 구달! 그게 다일까?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데일 피터슨의 <제인 구달 평전>

운명의 만남이라든가, 평생 다시없을 기회, 또는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라는 것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삶에서 결정적 순간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미운 오리가 백조가 되고,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화려한 공주님으로 변하는 그런 경우가 과연 있을까?

적어도 제인 구달에게는 있었다.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의 제안을 받아들여 곰베 유역으로 침팬지 관찰을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 그녀의 이후 인생이 뒤바뀌었다. 물론 그녀는 이전에도 활기차고 매력적이었고, 낭만과 몽상을 좋아하며, 열정과 끈기가 있는 여성이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동경해 친구를 따라 아프리카 케냐로 올 정도로 과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세계적인 영장류학자가 되거나 존경받는 환경운동가가 되는 것 같은 운명은 없었으며, 그녀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범한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대학 교육은 받지 않고 비서라는 평범한 일을 하고 있었고, 아마 그 후로도 조금은 특색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 리키는 제인 구달에게 곰베로 갈 것을 권했고,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의 운명은 변했다. 영장류학의 운명 역시 그랬다.

▲ <제인 구달 평전 : 인간을 다시 정의한 여자>(데일 피터슨 지음, 박연진·이주영·홍정인 옮김, 지호 펴냄). ⓒ지호
데일 피터슨의 <제인 구달 평전 : 인간을 다시 정의한 여자>(박연진·이주영·홍정인 옮김, 지호 펴냄)는 평범한 소녀였던 제인 구달이 어떻게 세계적인 학자가 되고, 1년에 300일 넘게 세계를 돌아다니는 활동가가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밝힌다. 그녀의 이야기는 실로 믿기 힘든 성공담이다. 부정할 수 없이 제인 구달의 성공에는 몇 가지의 행운이 관여했다.

케냐의 친구가 그녀를 초대한 것, 케냐 나이로비에서 박물관에서 일하게 된 것, 그곳에서 루이스 리키를 만나고 친해진 것, 리키가 그녀를 침팬지 관찰자로 추천하여 곰베로 떠나게 된 것 등…. 이런 행운이 없었다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침팬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다른 대단한 위인들에게서 보이는 남들보다 확연히 뛰어난 능력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는 총명하긴 했지만 유달리 천재적인 발상과 두뇌를 지닌 것도 아니었고, 사교적이긴 했지만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는 끈기와 성실함이 있었으며, 또 당시 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쓸데없는 고정관념이 없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반복되는 관찰 활동을 지치지 않고 수행하면서, 다른 이들이 못보고 있던 침팬지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성공에는 물론 행운이 필요했지만,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오히려 그 성공 이후의 삶이다. 제인 구달은 곰베에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인간을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로 정의해오던 시대에 제인의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리키가 "'도구'를 다시 정의하거나 '인간'을 다시 정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겠군"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것은 제인 구달을 영장류학계의 신데렐라로 만든 획기적인 발견이었고, 이후 그녀는 루이스 리키와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의 후원 아래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틱한 발견이 오늘날의 제인 구달을 만든 전부일까? 제인 구달을 설명하는 많은 글들은 주로 이런 인상적인 순간들만을 제시한다. 그녀가 곰베로 가 기성 과학자들이 보지 못했던 많은 것(침팬지의 도구 사용, 육식, 감정 표현 등)을 발견했고 동물행동학을 뒤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일견 옳은 이야기지만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다.

제인 구달이 그 발견을 한 것은 불과 그녀 나이 27살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후로도 수십 년을 곰베에서 머물며 그곳에 세계 제일의 영장류 연구소를 세우고 운영했다. 제인 구달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여러 단체와 개인들에게 후원을 받고, 저술과 강연 활동을 통해 연구소를 세우고 유지하는 비용을 마련했다.

이 책은 제인 구달이 곰베에서의 침팬지 연구를 계속 이어나가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갖은 노력들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은 행운 같은 것은 전혀 개입하지 않은, 순전히 제인 구달 스스로의 노력과 인내, 침팬지들을 향한 열정의 산물이었으며, 순수한 학문의 세계와는 다르게 세속적인 영역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녀는 애걸하다시피 자금 후원을 받아야 했으며, 현지 정부와의 관계도 신경 써야 했고, 돈을 노린 납치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그런 고난들을 겪어내며 제인 구달은 곰베 영장류 연구소를 현장 동물행동학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또 그 이후에는 침팬지들이 처한 밀렵과 서식지 파괴의 위험을 알게 되면서 침팬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침팬지 보호에 나선다.

지금 그녀는 활동 범위를 넓혀 환경, 생명 운동에 매진하면서 세계인의 존경을 얻게 된다. 이제는 학자로서보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제인 구달이 더욱 유명할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드라마틱한 발견의 이야기보다도 목표를 향한 그녀의 지치지 않은 의지와 노력들이 더욱 인상 깊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수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제인 구달을 만든 근본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행운과 기회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제인 구달에게는 곰베로 갔던 것이 그 행운과 기회였다. 그러나 그 행운과 기회를 얼마만큼 활용하고 키우느냐는 각자에게 달렸다. 제인 구달은 그때 그저 본인을 유명하게 만든 발견만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최초의 성공을 시작으로 더 많은 것을 시도했고 이루어냈다.

인간과 침팬지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관심, 고난에 굴하지 않는 열정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최악의 순간에도 희망의 이유를 찾아내는 낙관적인 태도가 그녀의 삶과 과학, 그리고 사회운동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으며, 그것들이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었다.

이 책은 제인 구달의 눈부신 업적들 사이에 있는 그녀의 노력과 의지, 고난과 고뇌, 사랑과 이별을 엮어 제인 구달이라는 평범한 소녀가 어떻게 존경받는 위인이 되었는지를 면밀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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