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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막힌' A씨가 '기막혀' 절망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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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막힌' A씨가 '기막혀' 절망한 사연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귀가 막힌 것과 기가 막힌 것

'기막히다.' 이 말은 어떤 일이 놀랍거나 언짢아서 어이없을 때 쓴다. 필자의 한의원에서 1년 동안 귀가 막힌(이관폐쇄증) 병을 치료한 환자 A씨가 최근에 기막힌 일을 당했다.

이 환자가 이관폐쇄증으로 고생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은행원이었던 이 환자는 자기 은행을 살리고자 미국 출장을 오가며 무리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귀가 막히고 팽창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병원을 전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한의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서 상당히 호전된 상태다.

이렇게 건강을 찾아가던 이 환자는 최근에 잦은 병가로 정리 해고를 당했다. 귀가 뚫리려던 참에 기막힌 일을 당한 것이다. 은행을 살려보겠다고 과로를 한 탓에 병을 얻었는데, 그 병 때문에 정리 해고를 당하다니….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 같아서 환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씁쓸했다.

이렇게 귀가 막히는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 현대 의학은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귀가 막히는 느낌은 이관의 개폐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관은 귀와 코 사이에 연결된 통기관으로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음식을 삼키면 관이 열려 공기가 교류하면서 귀 내부의 공기압과 외부의 공기압이 같아지게 된다.

고막은 귀 내부와 외부의 공기압이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잘 진동하여 음을 알아듣기가 쉽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관이 열리고 닫히면서 귀 내부의 공기압을 조절한다. 그러나 이관의 개폐에 문제가 생겨 닫혀 있거나 계속 열려 있는 경우가 있다. 계속 닫혀 이관이 막혀버리는 것을 이관협착증, 계속 열려 있는 것을 이관개방증이라 한다.

이관협착증은 코와 목에 염증이 있어서 이관의 개폐가 원활하지 않아 닫혀버리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외계보다 귀안의 압력이 낮아지고 고막이 안쪽으로 당겨져 고막의 진동이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고막은 음의 미묘한 진동을 포착하기 힘들어져 저음성 난청을 일으킨다. 낮은 음이 잘 들리지 않거나, '붕' '웽' 하는 저음성 이명이 나고, 귀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고, 자신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서 들리고 귀를 찌르는 듯한 증상도 있다.

이관개방증은 이관이 계속 열려서 고막이 과잉으로 진동되어 난청과 이명, 자신과 타인의 음성이 울리는 증세가 나타난다. 또 자기의 호흡음과 고막이 움직이는 소리가 이명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관개방증은 선천적으로 이관이 열리거나 고막이 엷은 사람에게 많은 병이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로 이관 주위의 지방이 얇아지면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faqs.org
여기까지가 현대 의학의 견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기계적 해석이 아니라 전통적 기(氣)의 관점에서 스트레스나 과로로 이 질환이 생겼다고 바라본다. <황제내경>에서는 "소양경인 담(膽)이 열을 받으면 귀가 통증이 생긴다"며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 점은 우리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나면 귀가 막히는 먹먹한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증상으로 한의원을 찾은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명 정도가 스트레스 이후 귀가 불편해졌으며, 이 중에 8명이 이관협착증과 같은 증상의 고통을 호소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스트레스, 과로 이후에 귀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귀가 막히는 것을 이렇게 풀이한다.

"오장의 기가 궐역(厥逆)하여 귀로 들어가 귀가 꽉 막혀(痞塞) 들리지 않는데 이때는 어지럼증이 동반한다."

'궐(厥)'은 기(에너지)가 다해서 소진된 상태를 말한다. '역(逆)'은 그것을 회복하고자 무리한 반전을 꾀하는 상태다. 이것은 계속 언급한 신장 부신과 관계가 있다. 부신의 기능이 떨어지면 몸은 에너지를 힘들게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열(火)'이 솟구친다. 스트레스, 과로로 '열'이 나는 게 바로 이런 상태다.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허열'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은 이런 상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귀로 기가 궐역하면 귀 안에 기가 가득차고 열이 몰려 귀 안이 훈훈하거나 화끈거린다."

이처럼 한의학에서 귀는 신장과 관계가 깊다고 보았다. 신장이 사계절 중 겨울을 상징하듯이 귀도 찬 기관이다. (손을 불에 데었을 때 귓바퀴로 손이 가는 것도 이런 사정을 말한다.) 신장의 기능이 정상일 때는 귀가 차갑게 응축돼 소리가 명징하지만, 신장 기능이 허약해서 부신이 제 기능을 못하면 열과 바람(風)이 생긴다.

이 때에 귀는 풍선에 바람을 넣은 상태처럼 내부가 막혀 귀 주변까지 먹먹한 느낌으로 불쾌해진다. 부신 연구자는 이렇게 입을 모은다.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장기간으로 진행되면 부신의 힘이 고갈된다. 이렇게 부신의 힘이 고갈되면 이전에는 전혀 무리라고 여기지도 않은 사소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 점을 생각하면 귀가 막히는 일이 기막힌 일이 사실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나저나 기막혀 귀가 막힌 증상을 호전해놓았더니, 다시 기막힌 일을 당한 저 환자의 아픔은 누가 살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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