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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젠 백범 팔아서 '윤봉길 조작 사진' 옹호하나"

[인터뷰] 강효백 경희대 교수 "가짜 사진을 '보물'로 지정하자고?"

<신동아>가 조작 의혹이 제기된 1932년 5월 1일자 <아사히신문>에 실린 윤봉길 의사 연행 사진을 옹호하고 나서 사진을 둘러싼 진위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앞서 2008년 12월에도 같은 주장을 지면에 실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관련 기사 : "일제의 '윤봉길 조작 사진' 옹호하는 <동아일보> 뭔가?")

<신동아>, '가짜' 의혹 사진을 보물로 지정하라?

<신동아>는 지난 10월호(613호)에서 김희연 객원기자의 "윤봉길 의사 연행 사진 보물로 재지정하라"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2008년 12월과 마찬가지로 충남대학교 김상기 교수(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의 의견을 빌려서 가짜 의혹이 제기된 문제의 사진이 "진짜"라고 한 번 더 주장했다.

이 기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측의 말을 빌려서 "(사진이 진짜라고 판명된 만큼) 이 사진에 대한 보물 해제 철회"를 언급했다. 애초 문제의 사진은 1972년 8월 15일 윤 의사의 다른 유품과 함께 보물 제568호로 일괄 지정되었으나, 조작 의혹이 일면서 보물에서 해제됐었다.

그렇다면, <신동아> 측이 인용 보도한 김상기 교수의 주장은 타당한가? 김상기 교수는 백범 김구 선생이 저술한 <도왜실기>에 실린 사진을 문제의 사진과 비교해서 "해당 사진이 진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윤 의사를 마지막으로 본 백범 선생이 <도왜실기>에 실은 사진이 "가짜일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 사진 조작 의혹을 제기한 강효백 경희대학교 교수(국제법무대학원, 전 중국 상하이 영사)의 주장은 다르다. 강효백 교수는 1일 <신동아>와 김상기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음은 강 교수의 주장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아사히신문> 1932년 5월 1일자 1면에 거사 후 윤봉길 의사의 모습이라고 주장한 사진. 최근 <신동아>는 충남대학교 김상기 교수(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의 주장을 근거로 이 사진이 "진짜"라고 보도했다. ⓒ프레시안

"이젠 백범의 이름까지 팔며 '가짜' 옹호하나"

- 김상기 교수와 <신동아>가 이번에는 백범 선생의 <도왜실기>에 실린 사진을 증거로 내세웠다.

"어이가 없다. 우선 독자들이 속을 수 있으니 <도왜실기>가 무슨 책인지 알아보자. <도왜실기>는 백범 선생이 1932년 스스로 주도한 의거의 진상을 중국인에게 알리고자 중국어로 쓴 책이다. 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자 엄항섭 씨 등이 1946년 우리말로 번역해서 발간했다.

바로 이렇게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엄 씨가 당시 떠돌아다니던 여러 가지 자료를 확인 없이 덧붙였다. 바로 이 과정에서 김상기 교수가 언급한 그 사진이 들어간 것이다. 즉, 김상기 교수와 그 말을 그대로 따라 쓴 <신동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백범 선생은 그런 사진을 1932년에 <도왜실기>를 발행할 때 넣은 적이 없다."

- 그렇다면, <도왜실기>에 나중에 덧붙여진 사진은 무엇인가?

"그 사진은 지난 2008년 김상기 교수가 뜬금없이 들고 나와서 <동아일보>가 보도했던 바로 그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32년 4월 30일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에 실린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진은 <신동아>도 언급했듯이, 일본 통신사 <니혼 뎀포(Nihon Dempo)>가 공급한 것이다.

이 사진이 <도왜실기>가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윤 의사의 사진으로 잘못 첨부된 것이다. 즉, 김상기 교수와 <신동아>는 일제가 조작한 '가짜' 사진을 또 다른 일제의 '가짜' 사진과 비교하면서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는 백범 선생의 이름까지 팔면서 말이다. 아마 백범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지하에서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김상기 교수가 백범 선생의 <도왜실기>에 실렸다고 주장한 사진. 이 사진은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 1932년 4월 30일자에 실린 것이다. 이 사진 설명 하단에는 분명히 일본 통신사 <니혼 뎀포(Nihon Dempo)>로부터 공급받은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강효백 교수는 "이 사진은 백범 선생이 1932년 <도왜실기>를 펴낼 때 첨부한 것이 아니라, <도왜실기>가 해방 후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서 첨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그렇다면, 무슨 사진과 비교해야 하나?

백범 김구 선생이 1932년 5월 10일 공개한 거사 3일 전인 1932년 4월 26일 태극기 앞에서 찍은 윤봉길 의사의 사진.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의 거사 이후인 1932년 5월 10일 공개한, 거사 3일 전인 1932년 4월 26일 태극기 앞에서 찍은 윤봉길 의사 사진과 비교해야 한다. 나는 지난 2008년 성형외과 의사의 자문을 얻어서 이 사진의 인물과 <아사히신문>,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도왜실기>)에 실린 사진의 인물은 '다르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었다."

"윤봉길 의사 형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 처음에 사진에 의문을 품었던 것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정황을 묘사한 당시 기사와 문제의 사진이 다른 것이 큰 계기였다.

"그렇다. 이미 몇 년 전 <프레시안>에서 자세히 보도를 했었지만, 한 번 더 <상하이타임스> 1932년 4월 30일자를 살펴보자. <상하이타임스>는 미국계 신문으로 굳이 기사를 조작하면서 반일 감정을 조장할 만한 이유가 없는 매체다.

▲ 2008년 한 성형외과 의사는 "<아사이신문>이 공개한 사진은 백범 김구 선생이 공개한 사진과 얼굴 윤곽이 다르다"고 지적했었다. ⓒ강효백
(폭탄이 터진 후) 회오리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군중들 사이에 조선 사람 윤봉길이 있었다. 그는 군경들에 의해 구타당해 쓰러졌다. 주먹, 군화, 몽둥이가 그의 몸을 난타했다. 만일 한 사람이 죽게 된다면 바로 그 조선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곧 그 회색 양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땅에 떨어졌다. 잠시 후 그 한국인은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의 몸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총검을 가진 군경들이 그가 쓰러져 있는 곳에 비상 경계선을 치고 군중들로부터 그를 차단했다. 군경들이 비상경계선 안에서 그를 감시하였다. 곧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그 조선인은 (일본군에 의해) 머리와 다리가 들려 짐짝처럼 통째로 차 뒷좌석에 구겨 넣어졌다. 그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바로 이게 거사가 일어난 직후 윤봉길 의사의 모습이었다. 전쟁 중에 일본 군대의 최고위급이 한꺼번에 여러 명 희생되었다. 일본 군대가 <아사히신문>에 보도한 것처럼 신사적으로 윤봉길 의사를 연행해 갔을까? 아니면 <상아이타임스>에 실린 것처럼 참혹하게 유린했을까?"

- 강효백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여러 개 있었다.

▲ <동경일일신문> 1932년 4월 30일자.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에서 사진기자의 부상 사실을 보도했다. ⓒ강효백
"그렇다. 지난 2008년 6월 15일 <SBS 스페셜>에서 방송한 '윤봉길은 이렇게 총살됐다'의 취재 과정에서 <아사히신문> 고위 관계자가 했다는 증언이다. 그는 '(이 사진은) 우리도 의문이 가지만 왜 그것이 그렇게 표현이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계속 검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문제를 시인했다.

또 다른 정황 증거도 있다. 최근에 발굴한 <동경일일신문> 1932년 4월 30일자를 보면 '사진기자가 현장에서 부상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현장에 있던 일본인도 부상을 많이 당했다. 가짜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이 중 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부상한 기자의 사진을 실은 <동경일일신문>을 한 번 보라.

- 이런 증거에도 계속 사진을 '진짜'로 믿고 싶은 이들이 많다.

"이렇게 여러 가지 증거가 있음에도, 심지어 이 사진을 보도한 <아사히신문>마저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판에 한국 정부(국가보훈처), 유족(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언론(<동아일보>, <신동아>) 등이 나서서 가짜 사진을 옹호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윤봉길 의사의 방계 유족이 나를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는데, 담당 검사가 이러더라.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르고 나서 일본의 폭행에 의해서 만신창이가 됐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굴해냈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고소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게 바로 일제가 사진을 조작한 이유다. 이 검사의 말대로 만신창이가 된 윤 의사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면 아마 반일 감정에 횃불처럼 일어났을 것이다.

- 지난 10년간의 문제제기 덕분에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이 사진이 삭제되었다.

그렇다. 일본이 조작한 가짜 사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섰는데, 많은 시민이 상식에 입각해서 호응해줘서 그런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를 통해서 근대화했다'는 주장을 펴는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를 제외한 다른 교과서에서는 이 사진이 모두 삭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 일부 유족과 언론이 나서서 심지어 가짜 의혹이 있는 사진을 '보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시민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 나도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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