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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대신 양배추? 이것이 망국의 조짐인가!

[철학자의 서재] 리샹의 <중국 제국 쇠망사>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역사에 대하여 이와 같은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10여 년 늦게 태어났던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조셉 토인비도 역사에 대하여 비슷한 정의를 내렸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상호작용이다." 역사는 유독 왜 이렇게 도전하고 응전했던 무시무시한 투쟁의 과거들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국가적 시련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당면한 시대적 물음 앞에서 쩔쩔매고 있을 때, 슬며시 다가와 귀띔해주는 반면교사로서의 역사가 매력적인 것은 당연한 법. 이쯤 되면 우리는 굳이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과거와 대화하는 법'을 깨치게 된다. 그가 말하지 않았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유독 이 '쇠망'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중국사를 서술한 책이 여기 있다. <중국 제국 쇠망사>(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가 바로 그것이다. 마치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을 보여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구미가 당기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망국으로 가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라니.

이 책은 동아시아 최초로 거대한 통일 제국을 건설했던 시황제의 진(秦)으로부터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천하를 거머쥐게 된 주원장의 명(明)에 이르기까지 1800년이 넘는 중국 제국들의 쇠망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상식적이지 못할 만큼 폭정(暴政)과 실정(失政)을 일삼던 황제들의 모습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와 같았다.

망국의 조짐이 만연한 도성 안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도 없는 암흑이었다. 이 멈출 줄 모르는 기관차에 탑승한 백성들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아둔하고 무능한 군주에게 기회는 없다

▲ <중국 제국 쇠망사>(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중국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시황제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전국 각지를 순수(巡狩)하면서 보낸다. 영생을 꿈꾸던 비운의 황제는 황궁이 아닌 타지에서 숨을 거두고, 황위를 노리는 신하들에 의해 썩은 주검으로 황도에 돌아온다. 시체 썩는 냄새를 가리고자 뒤섞인 생선들과 함께. 황제의 말로가 이러하니 그 나라가 오래갈 리 있겠는가? 진은 시황제가 숨을 거둔 뒤 겨우 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황제의 측근이던 환관 조고(趙高)는 음모와 아부, 권모술수에 능했던 사람이다.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큰 아들 부소(扶蘇)를 대신해서 자신의 제자였던 작은 아들 호해(胡亥)를 황제의 자리에 앉혔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더니. 호해는 즉위와 동시에 황실의 왕자와 공주 모두 24명에게 사형을 내렸고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해 아방궁을 지었다. 또 후궁의 미색에 빠져 조정을 돌보지 않았으니 바야흐로 환관 조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둔하고 무능한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가 쇠망의 길로 내달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진의 운명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에 의해 그 명을 다하고 말았다.

어리석은 황제 주위에는 무능한 신료들뿐이었다. 그들은 아첨꾼 아니면 소인배였다. 이들이 하나로 뭉쳤으니…. (157쪽)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맹자는 말한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라면 백성들 또한 그 임금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들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라면 백성들 또한 그 임금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온 천하의 입장에서 즐거워하며 온 천하의 입장에서 근심하고서도 왕 노릇을 못하는 자는 여태껏 보지 못했습니다.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樂以天下, 憂以天下, 然而不王者, 未之有也. <孟子> '梁惠王章句下') 백성들의 즐거움과 근심을 함께 할 수 있는 군주라야 백성들도 그 군주의 즐거움과 근심에 마음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2010년 겨울은 서민들에겐 유독 더 춥게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서민들의 겨울나기는 김장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배추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대통령은 최근 값이 오른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밥상에 올리라고 청와대 주방장에게 지시했단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을 생각해 비싼 배추김치를 먹지 않겠다는 뜻이라는데….

맹자는 군주가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두고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고 했다. 군주가 여민동락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백성들의 근심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겨 속을 태우는 임금이 있다면, 백성들 또한 상심한 임금을 보고 병이 나실까 노심초사하는 법이다.

권력은 사치와 향락으로 썩어간다

충청도 어느 소도시에는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던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딴 교량이 하나 있다.

물론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 "OOO 다리"로 불리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가 그곳에 사는 지인에게 직접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 하나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당선이 되면 다리를 하나 놔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단다.

궁금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과 지방 소도시의 교량 건설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국회 홈페이지를 한참이나 뒤졌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찾지 못했다. '국회의 권한'은 '국회 소개'란에 명시되어 있었는데 '국희의 의무'는 눈에 띄지 않아 괜스레 고개만 갸우뚱거렸을 뿐이다.

여하튼 그 정치인은 군사 정권 시절부터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내지 못하는 전직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에 국가 요직을 거친 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왜 이 일화가 제국의 쇠망과 관련이 있을까? 맹자가 양(梁)나라 혜왕과 주고받은 유명한 말이 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선생께서 천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으니 또한 장차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길,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왕께서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우리 집에 이롭게 할까?' 할 것이고, 사대부와 서인들도 '어떻게 내 몸에 이롭게 할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가지고 다투게 되니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孟子見梁惠王. 王曰, "叟! 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而國危矣. <孟子> '梁惠王章句上')

위로 황제부터 아래로 백관까지, 그들은 문화와 권력과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마땅히 갖추어야 할 직업적 도덕의식이 없었다. 그들은 외부의 압력에 웅크리기만 했다. 오로지 생각하는 바는 구차하게 살길을 찾고 권력과 재산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225쪽)

문득 '합리적(合理的)'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선배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합리(合理)라는 말이 본래 이치에 합당한지를 따지는 것인데, 요즘은 합리의 기준이 이익(利)에 있는 것 같아. 그럼 '합리적(合理的)'이 아니라 '합리적(合利的)'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것보다 더 합리적(合利的)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뭔가 좀 이상한 게 당연한 법.

칼을 받들고 붓을 버려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소유했던 몽골제국의 건국자, 칭기즈칸. 그에게는 그의 기상을 빼닮은 손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원(元) 세조, 쿠빌라이 칸이다. 중국 본토를 호령했던 몽골족이 세운 원도 흥망성쇠의 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원의 쇠망 원인을 한 마디로 일갈했다. "칼을 받들고 붓을 버려서!".

'칼'을 받든다는 의미는 오늘날 어떻게 해석될까? '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물리적 도구를 의미했다. 역사적으로 무력이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의 침략을 면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국경을 초월하는 초국가 기업들이 득세하고 있는 오늘날 국경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칼'의 의미도 변했다. 현대적 의미의 '칼'은 이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자본'에 그 지위를 넘겨주었다. '칼을 받드는 것'은 국가 자본을 확충시킬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붓'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는 '영리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학문 영역'이라는 의미에서 '순수 학문'이 정답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는 비단 문사철(文史哲)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순수 과학도 포함되며 으레 순수 학문 바깥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이론 연구도 여기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붓을 버리는 행위'는 순수 학문에 대하여 '영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얕잡아 보는 것이다. 요컨대 합리적(合利的)이지 않다는 의미.

고려와 조선 시대의 지배 계층을 우리는 양반이라고 불렀다. 양반이란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함께 부르는 말로 문(文)과 무(武) 중에 어느 하나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우니 양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왕을 보위하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제국의 안녕을 위해서 '칼'과 '붓'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이 '실용 학문'과 '순수 학문'은 국가를 운영하는 이론적 양 날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칼을 받들고 붓을 버려라!' 망국의 길잡이가 될지니.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

이제 세상은 절대적인 지위를 가진 군주의 말 한 마디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彼一時, 此一時也. <孟子> '公孫丑章句下')"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때는 천자의 지위를 가진 황제에 의해 나라가 좌우되었지만 지금은 정치인 한 명의 정책 실패가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을까?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무시무시한 힘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오늘날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두 가지는 모두 한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표'고 나머지 하나는 '초'다. '표'는 4년 혹은 5년마다 치러지는 선거에서 자신의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다. 자기를 태워 세상을 비춘다는 '초'는 순백의 자태에 불이 붙는 순간,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다섯 살배기 꼬마 손에 들린 촛불 하나를 두려워할 정도이니 그 파급력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국가의 흥망성쇠가 정치권력이 만들어내는 정책들에 의해 좌우된다지만 그들의 권력이라는 것이 국민들에게서 양도받은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것도 '잠시' 빌려간 것일 뿐이다.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문제의 근원은 우리들에게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힘이 작동하는 한, 앞서 살펴본 망국의 공신들은 이제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아직 우리는 그 힘을 깨닫지 못했을까?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으면서도 남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염구(冉求)가 말하였다. "제가 스승님의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겐 그럴 힘이 부족해서 못하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서 포기하겠지만 너는 한계선부터 긋고 있구나.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論語> '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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