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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소년' 이후 최고 '뻥쟁이'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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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소년' 이후 최고 '뻥쟁이' 탄생!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최제훈의 <퀴르발 남작의 성>

나는 뻥치는 걸 몹시도 좋아한다. 내 뻥에 속은 누군가가 거짓말쟁이라고 비난을 하면, 나는 즉시, 난 뻥쟁이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거짓말은 상대를 불순한 의도로 속이는 거지만, 뻥은 악의 없는 순수 그 자체의 속임이라고.

뻥이라니. 얼마나 귀여운 말인가. "뻥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휘발하는 오해와 그 뒤에 남는 아스라한 재미, 즐거움, 적당한 당황, 적당한 분함 등등…. 어찌 미워할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뻥쟁이가 되는 것을 즐기고 지향한다. ……근데 '나'가 누구냐고? 나는 에디터 C다. 시라고 불러도 좋고, 씨라고 불러도 좋다. 무슨 까닭으로, 자격으로, 입장으로, 이렇게 설레발을 치냐고? 두고 보면 알 일 아닌가. 조급해하지 마시라. 아무튼.

나는 최근 뻥의 아티스트를 만났다. 내가 그토록 신봉해 마지않는 뻥 계의 지존 '양치기소년 님' 이후 처음 느끼는 전율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양치기소년 님에 대해 한 말씀 올려야겠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고찰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유머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가 순교하신 분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뻥쟁이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 치밀하게 계산된 정황, 시종일관 변화 없는 표정, 똑 떼어대는 시치미까지. 소위 말해 뻥의 삼위일체를 가진 이 사람은 소설가다. 데뷔한 지 3년, 좀 늦깎이 신인이다. 얼마 전 자신이 그간 써놓은 뻥들을 한데 모아서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 펴냄)을 펴냈다. 그의 이름은 최제훈이다.

▲ <퀴르발 남작의 성>(최제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퀴르발 남작의 성 하면 어쩐지 번개 한두 차례 번쩍거리고 뒤이어 천둥까지 우르르 쾅쾅 내질러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 맞다. 퀴르발 남작님은 그런 성에 살았던 사람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꽤나 동안이었나 보다. 그리고 국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인육 먹고 살 사람이라는 뒷담화를 즐겼다. 그런데 그 뒷담화가 소문이 되더니, 사실이 되고 심지어 남작님께서 작고하신 뒤에는 옛날이야기까지 작화되었다. "옛날 옛적에 퀴르발 남작이라는 사람고기 먹는 사람이 살았대……"

그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 중 하나가 소설가가 되었다. 녀석, 사돈의 팔촌 이야기까지 다 팔아먹고 남은 거라곤 할머니가 들려준 옛이야기뿐. 결국, 고 얘기까지 팔아먹었다. 그랬더니, 영화 판권이 팔렸다. 이제 퀴르발 남작님은 식인귀가 되어버렸다. 명예 회복의 기회는 영영 없다. 그러게 살아생전 좀 잘하시지. 근데 영화가 어디 쉽게 되나? 감독이 고쳐놓은 것을 제작자가 뜯어내고, 여배우가 뜯어고치고, 만신창이가 되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퀴르발 남작님,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사람은 죽어도 작품은 영원하다잖아요. 이제 남은 것은 독자 및 시청자들의 몫이올시다. 이리저리 사람들 제멋대로 입방아 찧어댄다, 풍악을 울려라~.

최제훈 씨는 한 개의 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과정을 각 시대 각 나라의 여러 사람들을 통해 현란하게 보여준다. 끌려 다니던 이야기는 화자의 입맛에 맞게 구성되고 부풀려지고 축소되어서 마음껏 변형된다. "이야기란 게 뭐 다 그런 거지"라고? 오호라. 그럼 어디 퀴르발 남작님 되어 보실랍니까?

사실 나는 퀴르발 남작에 대한 소설도 영화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름 한 영화 한 소설 하는데 이럴 리가? 하여 몰래, 영화 사전, 네이버, 구글, 심지어 브리태니커까지 동원할 수 있는 검색처는 죄다 동원하였으며, 심지어는 퀴르발의 스펠링을 혼자서 추측해가며 외국 사이트들을 뒤져보았다. 작가에게 물어봤다가 무식하단 소리 들을까 봐서. 하다하다 결국 못 찾고 백기 투항,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항복이다. 그래 나 무식하다. 그런데 이 책, 영화 어디가면 볼 수 있누?

"에? 그거 뻥인데?"
"……"


상처 입은 뻥쟁이의 자존심은, 금세 감탄으로 바뀌었다. 이 사람, 선수다. 잘못 걸렸다. 다들 겪어봤겠지만, 항복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간 각고의 노력은, 뭐 어쩌라고. 나는 즐기기로 했다. 최제훈 씨의 이 즐거운 뻥 놀이를. 그랬더니 이번에는 셜록 홈스가 되어 뻥을 치기 시작한다. 점입가경은 이럴 때 쓰는 말이렷다.

그러니까 때는 1903년. 은퇴하고 요양 차 지방에 내려간 셜록 홈스가 왓슨 박사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쩌고저쩌고 근황에 대해 화려한 입담을 과시하던 그가 최근에 맡은 살인 사건을 전한다. 옆 동네 어떤 하숙집 밀실에서 누군가 살해를 당했다. 누구냐고? 놀라지 마시라! 바로, 바로! 비밀이다! (궁금하시면 사서 읽어보시라.) 이토록 화려한 셜록 홈스의 부활이라니. 내가 아주 몹시 어렸을 때 <보물섬>에서 셜록 홈스가 런던의 어느 건물 지하실(어느 건물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애석하다.)에 냉동된 채 아직 살아 있다는 뉴스를 본 이후 최고로 설레는 뉴스다. 아무튼 툭 튀어나온 짱구머리에 파이프를 멋있게 입에 문 채로 셜록 홈스가 다시 사건을 맡아 해결한다. 물론 소설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는 이 명탐정을 부활시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메시지는…… 역시 비밀이닷! (여기서 모두 말해버리면, 아무도 안 사겠지. 책 안 팔리면 월급이 안 나올 테고, 카드빚을 못 갚은 나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테러를 저지를지도, 그러니 지구 평화를 위해서.)

어디 셜록 홈스뿐인가, 이 소설집에는 마녀들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고, 톰과 제리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복달이고, 오래전 잠들었던 프랑켄슈타인이 번쩍 눈 뜨며 깨어난다. 아니. 아니.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기는커녕, 엉덩이 아프게 그걸 어떻게 타냐는 마녀의 불만 섞인 인터뷰가, 다중인격자가 자신의 인격들에 톰과 제리란 이름을 붙이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프랑켄슈타인은 사실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창조한 이의 이름이라고, 그 괴물을 마음대로 만들어낸 건 사실 우리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런데.

과연 이 정도로 '뻥의 아티스트'라는 대담한 별칭을 붙일 수 있을까?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뻥으로 버텨온 서른하고도 하나. 어중간하게 놀라운 뻥 정도는 넘치도록 보고 듣고 당했다. 하지만 최제훈 씨에겐 못 당하겠다. 그는 단순한 뻥쟁이가 아니다. 그는 퀴르발로, 셜록 홈스로, 마녀들, 프랑켄슈타인으로 지금-여기의 부조리를 밝히고 병듦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로 이야기의 본질을 탐구한다. 현상과 현실이 맹목을 불신임한다.

본질? 탐구? 현상? 맹목? 한숨부터 나오는 골치 아픈 단어들인 거, 잘 안다. 나도 그런 단어들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최제훈의 이 재미있는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은 빵빵 터지는 웃음과 결국 마지막 장까지 읽게 하는 호기심 유발로 단숨에 당신을 그 너머로 데려갈 테니. 이것이 최제훈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이 가진 미덕이요 매력이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 아름다운 뻥쟁이의 '아트한 뻥'을 마음껏 만끽하시라.

이 놀라운 신인이 선사하는 근래 보기 드문 소설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할 테니 …… 뻥치지 말라고? 역시 걱정하지 마시라. 본인, 최제훈 작가보다 더 잘할 자신 없어서 뻥 접었다. 진짜다. 진심이다. 믿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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