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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여덟 잔 이상 물을 마시면 건강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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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여덟 잔 이상 물을 마시면 건강해!" "정말?"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건강 비법의 허와 실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왜 굳이 한의사를 지망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솔직히 하나를 얘기하자면 농사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 집안일을 도와서 하는 농사일은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들판 한가운데서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나처럼 농촌에서 자란 이들은 잘 알겠지만, 농사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모내기였다.

틈틈이 농사일을 도왔던 나는 모를 심는 대신 양 옆에서 못줄을 맞추는 일을 맡았다. 모를 한 줄 다 심고 나면 "어이" 소리와 함께 줄이 옮겨지고 다시 한 줄을 심는다. 해 뜨면서부터 시작된 이 괴롭고 지루한 과정은 해가 뒷산을 넘어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이 되어서야 끝났다.

보리 짚단이나 벼 짚단을 쌓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볏짚은 한 단씩 쌓고 나서, 양쪽 끝에서 방향을 달리해 대각선으로 한 단씩 쌓았다. 힘들더라도 이렇게 한 단씩 차곡차곡 쌓지 않으면 순식간에 이때까지 쌓아놓은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모내기부터 볏짚 쌓기까지 지루한 반복 속에서 한철의 농사일이 끝난다.

뜬금없이 힘든 농사일 타령을 한 것은 최근의 세태가 수상해서다. 한국 사람의 일에 대한 집중력과 성취욕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몇 백 년에 걸친 선진국의 산업화 과정을 불과 수십 년 만에 따라잡은 한국 경제나 최근의 정보통신(IT) 산업, 영화 산업 등은 그 결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 법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이런 집중력과 성취욕이 낳은 결과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걱정도 된다. 이 과정에서 바로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이다.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렇게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코, 귀에 이상이 생긴 이들이니 더욱더 그렇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의 병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태도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단시간에 집중적인 치료를 원한다. 환자를 현혹하는 많은 이들이 침 한 방에, 뜸 한 방, 약 한 첩에 병의 치료를 호언장담하니 환자들이 이렇게 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의사도 알고 환자도 안다. 그런 한 방 치료는 불가능하다.

모두에서 농사일의 예를 들었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순서를 밟아야 하는 법이다. 병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몸이 건강했는데 갑자기 병이 찾아온 것처럼 얘기를 하는 환자가 있다. 그러나 이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수십 년, 수년간 병을 키워온 사실을 결국 확인하곤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키워온 병을 치료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건강을 찾는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은 보조일 뿐이다. 식습관이 병을 키웠다면 식습관을 고치고, 술이 잦았다면 술을 줄이고, 운동을 멀리했다면 매일 동네라도 산책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으면서 볏짚을 쌓듯이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battelle.org

한 의학 전문 기자가 하루에 물을 몇 리터씩 꼭 마셔야 한다는 요지의 건강 비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때부터 물 마시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들이 많다. 참 딱한 일이다. 물은 일반적으로 섭씨 4도다. 잘 알다시피 몸은 36.5도를 항상 유지한다. 이런 몸에 찬물을 과하게 섭취하는 게 과연 좋을까?

특히 몸이 약해서 몸속의 물을 제대로 데우지 못하는 이들은 이렇게 벌컥벌컥 마시는 찬물이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비타민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양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지만, 남는 것은 결국 간, 신장에서 처리해야 할 노폐물이다. 이 노폐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역시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반복하지만 건강은 침 한 방, 뜸 한 방, 약 한 첩, 물 한 컵, 비타민 한 알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농사일 아니 세상일이 모두 그렇듯이 건강을 지키는 일도 자기와의 지난한 싸움이다. '대박'으로 얻은 성공이 모래로 쌓은 성처럼 항상 불안하듯이, 건강에도 '대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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