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이 책들은 모두 한국방송(KBS) <역사스페셜>에서 다루었다. 앞의 책은 지난 9월 25일 '나는 노비이고 싶다-1586년 다물사리 소송 사건'으로, 뒤의 책은 7월 10일 '조선의 무관 노상추, 그가 남긴 68년간 기록'으로 방영되었다. 토요일 오후 8시 황금시간대에 나갔으니 고마울 따름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글의 말미에 다시 언급하고 싶다.
▲ <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임상혁 지음, 너머북스 펴냄). ⓒ너머북스 |
여기에 원고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하고, 피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고 반박한다. 당시 노비 소송에서는 자신이 노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왜 다물사리는 스스로 노비라고 강력히 주장했을까?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부모 중 한 쪽이 노비이면 그 자손 또한 노비가 되는 '양천제'와 멀쩡한 양인을 자기 노비라고 호적에 올리는 '암록', 역을 회피하기 위해 세력가나 기관에 몸을 맡기는 행위인 '투탁' 등 조선 시대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된다.
이 책의 서사가 되는 이지도·다물사리 판결 문서와 4건의 입안은 안동의 학봉 김성일 종택에서 소장한 수많은 고문서 사이에 연원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발급 연대를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 내용 또한 의성 김 씨와 전혀 관계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임상혁은 간지, 연호, 인물들의 나이, 지명, 판결한 이의 서명, 분쟁 사항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조한 끝에 다섯 건의 결송 입안이 모두 김성일이 나주목사로 재직했던 시기에 처리한 판결문이었음을 밝혀냈다. 저자는 책을 펴내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고문서의 만성적인 기근 현상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조선 전기의 소송 법서는 <사송유치>뿐이다. 그는 "한국에 한 종류밖에 없는 16세기 민사 소송 실무 매뉴얼이 일본에는 여러 종류가 전해진다는 걸 알았다"며 "도쿄, 나고야 등지의 도서관을 돌면서 그것을 확인할 때 가슴이 벅찼고, 이 자료들이 일본으로 유출된 계기가 임진란이라는 것을 규명하고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고 말한다. 한 지식인에 의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조선 시대의 재판 풍경이 비로소 우리에게 펼쳐진 것이다.
▲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문숙자 지음, 너머북스 펴냄). ⓒ너머북스 |
문숙자는 일기 자료를 토대로 제도사와 거시사에 지친 역사적 감수성을 다시, 새롭게 한다. 저자는 "68년간의 일기가 주는 다종다기한 내용과 더불어 청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는 그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나 자신이 18~19세기를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서문의 표현처럼 때로는 노상추에 감정이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냉정한 관찰자가 되어 그들의 세계관을 주관적·객관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그래서 그의 기술은 특정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관련된 부분을 발췌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기 전체를 음미한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저자의 공은 무엇보다도 한 가족의 생애와 일상을 통해 신분제 사회에서 당대인들이 지향하고 추구해온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직접 체험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집필 기간은 7개월쯤 걸렸으되 이는 십수 년의 공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는 지금까지 화석처럼 각인되어 있던 역사상을 버리고 그들이 살았던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보게 한다. 우리의 어머니의 아버지, 그의 할아버지가 살았을 그 시대에 과연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했을까, 느꼈을까'.
지난 9월 25일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은 "1586년 3월, 상대가 노비가 아닌 양인이라고 소송한 양반과 스스로를 노비라고 주장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로 시작한다. 구성과 스토리, 내용이 <나는 노비로소이다> 그 자체이지만 이 책의 저자 임상혁은 여러 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저자와 저서에 대한 표기조차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엑스트라였다. 조선 시대 사법 풍경을 되살려 볼 수 있게 한 연구자의 치열한 지식 생산의 과정에 대한 예는 무시되었다.
지난 7월 10일에 방영된 '조선의 무관 노상추, 그가 남긴 68년간 기록'을 보면서 나는 한 번 더 절망했다.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음에도 책의 저자는 인터뷰이의 한 명에도 끼이지 않은 것이다. 문숙자는 이 다큐멘터리의 단지 시청자였다.
방송 작가가 한문으로 기록된 68년치의 일기 자료를 보고 스토리를 짰다고 치더라도 '가족사'라는 시선으로 볼 수 있었을까? 전국을 돌며 고문서를 조사하고, 이를 정리·분석하는 것이 오랜 일상이 된 연구자들, 이들은 누가 알아주어야 하는가? 출판사와 방송사의 편집장, PD 등이 하는 지식의 사회화라는 통로 역할은 근원적으로 지식 생산자가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