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의 <정보 혁명과 권력 변환 :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각>(한울 펴냄)은 그동안 저자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몰두하던 연구 주제를 한번 정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 저자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연구자로서의 그를 기억할 수 있는 키워드는 '윈텔리즘(Wintelism)'이었다. 온라인 사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구성적인 권력을 '윈도우+인텔'이라는 윈텔리즘으로 정의했으니 현재의 변화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후, 그의 이러한 관심사는 '지식 국가', '소프트 파워(soft power, 연성 권력)'에 대한 소개로 이어졌으며, 이 책에 소개된 많은 글의 초고가 그 과정에서 조금씩 소개되어 왔다. 따라서 이 책은 지난 시간동안 그가 분절적으로 소개했던 개념과 이론을 아우르는, 김상배의 네트워크 사회 권력 연구의 '정리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2
▲ <정보 혁명과 권력 변환 :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각>(김상배 지음, 한울 펴냄). ⓒ한울 |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인터넷이나 정보통신(IT) 기기를 사용하면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오퍼레이팅 시스템(OS, 윈도우 등), 브라우저(익스플로러 등), 검색 서비스에 대한 사례 분석을 포함하고 있어서 개념·사례·이론의 구성이 매우 꼼꼼히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구나 책의 곳곳에서 사회과학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 정의'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접하는 문제에 대한 '열쇠'를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 고민 없이 사용하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보편(?)적인 서비스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술력이 단지 일개 기업의 기술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표준을 장악하여 권력으로 행사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러한 기술력 혹은 기술의 사용 정도를 정부의 힘으로 관리하려는 중국이나 쿠바와 같은 '규제 국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또 인터넷 커뮤니티, 온라인 사회운동, 온라인 재능 기부와 같은 자발적인 시민의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나는 현실 온라인 공간의 모습은 어떤 가능성을 던지는가? 이런 문제들이 진지한 저자의 논술을 통해 중요한 화두로 제시되고 있다.
두 번째 미덕은 이 책의 구성이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가 개념, 2부가 권력 사례, 3부가 대항 권력 사례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각 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해당 부분에서 소개한 내용에 대한 정치학 관점에서의 쟁점과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차분히 책을 따라 읽게 되면, 기술이나 정보, 네트워크라는 개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네트워크 사회에서의 권력의 실체에 대해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가듯이 정말 재미있게 알 수 있다. 무릇, 사회과학의 과제가 사회의 주요 현상에 대한 개념·사례·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사회과학의 본분에 매우 충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미덕은 지배 권력뿐만 아니라 대항 권력의 의미를 살렸다는 것이다. 즉, 공급자 입장에서 표준을 결정하는 거대 권력만을 중요하게 부각시킨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율과 협력의 문제 또한 중요한 가치라는 것도 비중 있게 주장하고 있다. 즉, 네트워크 정치 분야의 연구자들이 강조하는 '공급자만큼 중요한 수요자', '권력만큼 중요한 문화적 창의성', '지배만큼 중요한 동의와 협력'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강조가 제시되어 있는 만큼 매우 민주적인 관점을 가진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3
네트워크 정치 분야의 연구자로서 매번 느끼는 안타까움은 인터넷이 자판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정보 사회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사회로 발전하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만 사용하면 사람이나 사회가 갑자기 나아지고 발전한다고 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조차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지루함이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사람이 그 원리를 알고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기술이나 정보와 넘쳐나는 서비스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아는 만큼 이해하고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당연한 원리를 차분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언제까지 강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바로 그것이 네트워크 정치학에 성급한 결과물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사항이다. 이 책은 그러한 답답함의 상당 부분을 정말 시원하게 해소해주는 부분이 있다. 또 외국 사례의 무분별한 이입이 아닌 우리나라의 현실을 끌어안음으로써 진지하고 성실하게 네트워크 사회를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이해의 중요한 척도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로서 느낀 저자의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몇 가지 아쉬움을 제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연구자인 나의 관점에서 보아도 책이 너무 어렵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개념 설명은 정말 정확하게 맞는 개념풀이인데, 좀 더 쉽게 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마도 이것은 학자와 일반인이 만나는 접점에서 항상 발생하는 현상일 수도 있는데, 철저한 설명의 완벽성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소 이해하기 쉬운 일상적인 사례들도 좀 더 부드럽고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저자의 풍부한 고민 덕에 새로운 용어들이 꽤나 많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러한 신조어에 딱 맞아 떨어지는 사례가 풍부하게 제시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머리에 쏙 들어오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네트워크 사회의 주요 지배 권력과 대항 세력을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사례에 대한 제시는 촛불 집회뿐이다. 즉, IT 강국으로서의 우리나라가 지배 권력과 대항 세력의 중요한 행위자나 의미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한 번 생각해봄직 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지배 전략을 짜는 동안, 리눅스와 위키피디아가 대안을 형성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성찰,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일반론과 원론의 관점에서는 일단 저자가 제시하는 네트워크 사회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문제들 때문에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서로 경합하는 이른바 '망제(網際·inter-network)' 구조에서 영영 멀어지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시되었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인터넷 혹은 네트워크의 문제 역시 '우리의 문제'가 되었을 때 더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네트워크 사회를 연구하는 나를 포함한 다른 연구자들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며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4
서평의 기능은 그 책을 모르는 사람에게 책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깊이 있게 전달하는 것에 있다. 한편으로 섣부른 평가를 통해 선입견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어쩌면 책에 누를 끼치는 섣부른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마무리하기 전에 꼭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네트워크 사회 권력 연구의 '최종 정리 버전'이 아니라 이후의 더 깊고 좋은 연구를 위한 '중간 정리 버전'이라는 것이다. 정치학의 핵심 명제는 권력뿐만 아니라 권력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을 바탕으로 또 다른 주제의 깊이 있는 후속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