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중국에서 대중서라는 사실이 내용이 가볍거나 엄밀하지 못함을 뜻하지 않는다. 대중서라는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음식 문화가 지닌 함의들을 손쉽게 이해하도록 하고, 지루한 학문적 논증들을 생략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은 학문적 논증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림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예절과 풍속, 문학, 음악, 철학 등에서 중국의 음식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가을비가 내리고 맑게 갠 날 앞산이 문득 앞에 다가와 있는 것과 같다.
▲ <중국 음식 문화사>(왕런샹 지음, 주영하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음식 역시 높은 사람들의 것이다. 하기는 기장밥이나 조밥에다 절인 채소나 채소를 끓인 국을 놓고 먹는 것이 서민들의 음식이니 그 음식 문화를 기록하기도 논할 것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높으신 분들의 음식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것이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먹는 것에서라면 결코 지지 않으려 한다. 삶에 있어서 즐거움의 가치를 집이나 옷에 두기보다는 음식에 두는 경향이 많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은주 시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층의 음식들을 보면 중국인들이 왜 지금도 이렇게 음식을 중요시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지배층의 문화는 아래로 내려가 일반인들의 밥상까지도 화려하게 변모시키는 것이다.
주대의 연회에 있었던 솥에 담긴 고기 종류만 해도 입이 벌어지고, 그 이후로 내려가도 음식은 더욱 더 화려해지기만 하지 결코 쇠락하는 경향은 없다. 이런 중국의 음식 전통이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지금의 중국 백성들의 밥상을 중시하는 전통을 만들어낸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이 황제와 귀족들의 음식 문화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맛있는 음식은 오로지 황제와 대신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적 자산이며, 아울러 중화 민족의 것이며, 동시에 백성들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시대가 지니고 있는 문화의 정도를 살피기 위해서는 황제의 식탁을 언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대부들이 행한 행동과 말도 함께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음식 문화를 이야기할 때 어디서나 부딪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백성들의 음식들은 보잘 것 없었으며, 가진 자들만이 먹고 마시고 즐겼다. 하물며 사회주의 국가에서 황제와 귀족의 음식 문화를 논하면서 이렇게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황제와 귀족들은 말로는 백성을 위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입맛을 즐겼던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황정견이나 소식 같은 소수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전체로 보면 그런 문화의 흐름이 5000년이나 지속되고서야 일부의 대중들이나마 그 음식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이른 것이다. 어쨌거나 이 책의 원제가 주는 의미는 실제로는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명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이 황제와 대신들의 밥상 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대도 그 음식 문화의 흐름은 마치 커다란 양자강의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며 흐르듯이 도도한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은나라의 음주와 주나라의 음식을 먹는 자리에 부과한 수많은 예절과 형식들, 춘추 전국 시대의 음식과 관련된 원한과 정변, 한나라의 서역과 교류를 통해 풍부해진 음식 재료, 위진 남북조의 사치스러운 풍조, 당나라의 황제가 내리는 음식과 신하가 황제에게 바치는 음식, 북송과 남송의 북쪽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풍부해진 음식 문화, 명·청 시기의 번성함과 서로 융합되는 음식 문화 등은 이런 도도한 문화와 풍습의 흐름을 적절하게 드러내주거니와 음식이란 것이 얼마나 정치와 풍속에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수많은 예화와 음식과 관련된 문학 작품들이 적절하게 인용되어 지루하지 않게 음식의 세계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마치 한 상의 거나한 만한전석(滿漢全席·18세기 초 청나라에서 기원한 만주족, 한족의 음식을 총망라한 황제의 상차림)을 차려놓고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저자의 이야기는 두툼한 분량에도 손쉽게 책장을 넘기게 하는 재미로 가득 차 있다.
전반적으로는 이 책은 흥미로운 중국 음식, 더군다나 호화롭기 짝이 없는 중국 음식으로 풀어쓴 중국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저자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많이 있다. 특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선사 시대인 신화 시대의 고대인에 대한 피상적인 설명과 고대인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자신을 중국의 문명인으로 자처하는 오만함을 느끼게 한다.
고대인의 날것을 먹는 생식에서 불을 쓰는 화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나 농업과 목축의 발달은 저자가 인식하듯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고대인들도 지식의 축적이 오늘날처럼 풍부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혜가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그 지혜들이 모이고 쌓여서 지금의 문명을 만든 것이다. 수렵민이라 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오랜 관찰과 지혜를 바탕으로 농업과 목축을 발전시킨 것이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고대인을 무시하는 태도는 현대에 사는 문명을 갖추지 못한 원주민을 미개인이라 폄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옮긴이가 주석에서 지적했듯이 중화주의에 매몰된 역사관은 이 책을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중화주의는 중국의 것은 모두 무척이나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자신들의 것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이를테면 중국이 모든 문명의 발상지이며 외부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중화 문화에 흡수되었다는 인식이다.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온 종자들은 원래 있던 식물들의 개량종을 가져온 것뿐이지 그 모든 식물들이 중국에도 있었다 하는 서술 같은 것이 그 사례이다. 하지만 그 영역이란 것이 그 당시 중원의 중국과는 관계없는 변방의 지역들에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적 시점에서 지리는 지금의 강역을 중국으로 삼고, 그 적용 시대는 무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과의 마찰에서 보여주듯이, 그리고 동북공정으로 우리와 마찰을 빚었듯이,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 중화주의가 수많은 불협화음을 빚을 중국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란 사실을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중화주의가 이전의 제국주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이념으로 주변과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점은 이 책이 다수의 중국 독자를 위해서만 쓰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크다. 비록 이웃한 나라의 음식 문화사이기는 하나 우리에게도 문화사 서술에 많은 시사점들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 책에 필적할 일관된 <한국 음식 문화사>가 없다.
이 책을 번역한 주영하 교수는 <한국 음식 문화사>를 쓸 수 있는 저자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풀무원 김치박물관의 학예연구사를 지냈으며,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중국에서 민속학을 전공했으며, 일본에서 연구교수를 지내 동양 삼국의 음식 문화에 대한 천착이 남다르다.
벌써 여러 권의 음식 문화에 관한 저서들이 그의 내공이 무르익어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 여기에서 젊은 날 공부의 한 매듭을 맺었으니 그의 다음 과제는 <한국 음식 문화사>가 되어야 한다. 그의 다음 작업을 고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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