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문자를 만들 때 세 번 줄을 그어서 그 가운데를 연결시키는 것을 왕(王)이라고 한다. 삼(三)은 하늘, 땅,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다."
당연히 왕의 건강, 질병, 치료는 국가의 안위를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다. 왕의 건강 관리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노력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학문적 시스템도 마련했다. 왕을 치료하는 어의에 숙련된 궁중 의사뿐만이 아니라, 세간의 뛰어난 명의를 포함시킨 것은 그 예다.
왕의 건강을 관리하는 데 의사만 참여한 것도 아니다. 어의들의 다양한 치료의 타당성은 유학자인 제조들이 검증했다. 질병 해석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선을 선택한 열린 의료 체계였던 것이다. 이런 식의 '협진' 체계는 오늘날 동서양의 의료 모두 눈여겨봐야 할 모습이다.
질병과 치료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도 수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향약'이라 불렸던 토속 의료가 주류 의학에 체계적으로 편입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검증한 향약이 숙련된 의사와 유학자를 통해서 의학으로서의 가치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국내 의학의 성과에 중국 의학을 접목해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이용은 제한적이었다. 17세기 조선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하멜 표류기>가 "의원은 고관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일반 백성이 의원을 부를 여유가 없다"고 꼬집은 것은 그 한 예이다.
최고의 의료를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왕이 무병장수를 누린 것도 아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에 불과하다. 그들은 왜 단명했을까? 답은 바로 오늘날에도 만병의 근원인 과로와 스트레스다. 특히 스트레스는 대부분의 왕들이 토로하는 가장 기본적인 병이었다.
조선의 두 번째 왕 정종은 "본인은 본래 병이 있어서 밤이며 마음속으로 번민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성군이라 칭송받는 세종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한 의원은 "전하의 병환은 맥의 상부는 성하고 하부는 허하므로 정신적으로 과로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세조도 질병이 끊이지 않아서 꿈속에서 본 칠기탕(七氣湯)에 현호색을 복용했다.
▲ 드라마 <동이>의 숙종(지진희). ⓒMBC |
또 다른 골칫거리는 종기였다. 이것은 세종, 문종과 같은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가장 지긋지긋한 질병이었다. 효종은 종기를 치료하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숨을 거뒀고, 정조 역시 종기를 치료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바로 이 종기의 원인도 바로 '화(火)'다. <동의보감>을 보자.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흔히 이런 병이 생긴다." "아픈 것, 가려운 것, 창양, 옹저, 저, 진, 유기, 멍울이 생길 때 속의 답답함이 심한 것은 다 화열에 속한다. 이때 불에 가까이 해서 약간 덥게 하면 가렵고 몹시 뜨겁게 하면 아프다. 불에 닿게 하면 헌데가 생긴다. 이것은 다 화의 작용이다."
스트레스가 종기를 유발하거나 안질 등 다른 질환의 내재적 원인이었다면, 과로로 생긴 피로는 육체적으로 가하는 고통이었다. 조선의 왕은 근본적으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추구하였다. 내적으로는 성인 같은 인격을 완성하고 외적으로는 왕다운 왕 노릇을 하라는 규범이다.
성인 같은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 학문에 매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연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매일 신하들과 학문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일 수밖에 없다. 업무와 공부가 반복되고 신하에게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 잠까지 줄이면서 건강에는 붉은 경고등이 켜진다. 초조감이 쌓여 잠을 잘 수 없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게다가 잦은 술자리와 잠자리는 무장의 후예인 강철 같은 그들의 체력을 소진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세조의 경우는 단적인 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어렸을 때 방랑한 혈기로서 병을 이겼는데 여러해 전부터 질병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왕위에서 쫓겨난 이들은 장수했다. 정종은 어렸을 때부터 허약해 주변의 걱정거리였지만,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는 63세까지 살았다. 태조 이성계도 왕을 내놓고 74세까지 장수했다. 광해군도 재위 기간에는 화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을 호소했으나 폐위된 후에는 67세까지 살았다.
이런 예를 보면 뛰어난 명의, 신경 쓴 음식이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과로를 피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법임을 알 수 있다. 건강에는 요행수가 없다. 진실이 이런 데도 '한 방'에 건강을 보장해주는 비법을 내세우고, 이에 혹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뻔히 보이는 건강의 진실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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