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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폭탄' 맞은 조선…그 많은 뭉칫돈의 출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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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폭탄' 맞은 조선…그 많은 뭉칫돈의 출처는?

[해방일기] 1945년 9월 27일

1945년 9월 27일

조선은행권 발행고는 경이적 수자를 보이고 있는데 이를 일본이 항복한 8月 15日과 미군이 경성에 진주한 날과 현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8月 15日 4,975,148,877圓
9月 8日 8,463,890,631圓
9月 26日 現在 8,631,185,160圓

이를 보면 일본 항복 당시로부터 9月 8日의 미군 진주의 二旬 餘 사이에 거의 倍額인 23億萬圓이나 되는 엄청난 거액을 발행하였다. 이것은 조선 경제 질서의 교란 단말마적인 발악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것으로 이에 따른 인플레의 경향은 날로 심하여 그에 대한 적당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매일신보>, 1945년 9월 28일)


(☞바로 보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 기사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1944년 말의 발행고는 31억4000만 원이었다고 한다. (<네이버백과사전> "조선은행" 조) 9개월간 3배 가까운 증가인데, 대규모 전쟁의 파국적 종결을 전후한 시기로서는 그리 심한 것이 아니다. 화폐 경제의 틀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통화량이 한 달 사이에 70% 증가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새로 찍어낸 35억 원의 돈이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시중에 풀릴 시간이 안 된다. 그 대부분이 여기저기 뭉칫돈으로 쌓여 있었을 것이다.

"돈은 도는 것"이란 말이 있다. 경제학원론에서 처음 배우는 것도 경제적 가치를 덩어리(stock) 아닌 흐름(flow)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 상태(normal state)에서의 관념이다. 시장 실패(market failure) 상황에서 돈은 돌지 않고 덩어리로 뭉칠 수 있고, 그럴 때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가진 실체가 된다. 물의 순환이 순조롭지 못할 때 '물벼락'도 되고 '물 폭탄'도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상황에 관해 명분과 이념 이야기를 늘 읽고 들어 왔다. 그런데 인간이 명분과 이념만으로 사는 것이 아님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65년 전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는 명분과 이념을 더 많이 생각했겠지만, 현실적 조건을 아주 무시하지는 않았으리라는 말이다. 당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현실적 조건을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병준의 <우남 이승만 연구>(역사비평사 펴냄)에서 돈 문제를 밝히는 데 들인 노력이 돋보인다. 특히 50쪽 분량의 13장 "1945~47년 정치 자금 조성과 운용"에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져 있다. 이 시기에 이승만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진짜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 많다.

그런데 돈 문제를 파고들기 어려운 문제의 한 측면을 정병준의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치 자금의 규모를 대략 파악해 놓은 다음 그 크기를 최대한 실감나게 설명하려고 애쓰는데, 실감이 그리 잘 나지 않는 것이다.

GNP 대비로 계산해보면 1947년 1인당 GNP 35달러와 1997년 1인당 GNP 9,511달러는 무려 272배 정도 차이가 있다. 이승만이 당시 거둬들인 정치 자금을 최소 금액으로 상정해 1인당 GNP 대비에 단순 비교하면 현시가로는 73억 원에 해당한다. 또한 이승만이 거둬들인 정치 자금은 1945년 GNP의 0.3857%에 해당한다. (위 책, 608쪽)

2년간에 73억 원? 빙산의 일각이 차떼기로 드러나는 지금 세상에선 너무 귀여운 액수다. 그런데 GNP의 0.3857%?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2~3조 원은 될 것 같은데? 정치 자금으로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위 인용문 뒤에 "재정 규모 기준으로 환산하면, 137조4188억 원의 0.2288%인 314억40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된다"고 한 것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곱셈 결과는 314억4000만 원이 아니라 3144억 원일 것이다. 너무 '천문학적'인 숫자를 다루다 보니 자릿수가 헷갈린 모양인데, 저자 자신이 이렇게 헷갈리는 내용을 독자가 헷갈리지 않고 이해하기를 바라기가 힘들 것이다.)

틀이 다른 경제 상황 속에서 일정한 금액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정확히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름대로 정상 상태에서의 교환가치는 쌀 등 생필품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지만, 화폐의 분포가 고르지 않은 상태에서 뭉칫돈이 가지는 힘의 크기는 당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는 설명도 되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

이번 작업에서 가능한 대로 돈 문제를 많이 설명하고 싶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다. 화폐금융론에 밝은 선배 한 분께 쫓아가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그분을 놓고 '페리스코프'에 몇 번 쓴 글 때문에 너무 삐지시지나 않았을지 조심스럽다.

해방 직후 조선은행권의 대량 발행이 "일본인의 귀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을 몇몇 자료에서 봤지만, 그 수요가 어떻게 파악되고 어떻게 집행되었는지는 설명을 찾아보지 못했다. 추측컨대 '귀환 자금'이란 것은 신권 수요의 일부일 뿐이었는데 내놓고 얘기하기 좋은 것이라서 핑계 삼은 것이 아닐까 싶다.

총독부가 일종의 '정치 자금'을 필요로 했을 것은 당연하다. 여운형이 치안 유지를 부탁받으면서 1000만 원 내외의 돈을 함께 받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사실 여부를 확실히 판단할 근거는 찾지 못했다. 단, 얼마 액수건 돈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받고 싶은 마음'은 어쨌건, 총독부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총독부가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대상은 여운형과 건준 외에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10월 중순 이승만의 귀국 때, 그리고 11월 말 임정 인사들의 환국 때, 한민당 주류 인사들이 상당액의 자금을 제공한다. 그 사람들이 먹고 싶은 것 참으면서 꼭꼭 아껴뒀다가 제공한 돈이 아닐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에게 제공한 외에도 자기네 세력 확장에 필요한 데는 두루두루 썼을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현금 뭉칫돈은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자원의 의미를 넘어 그 자체가 권력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8~9월간 발행된 35억 원의 행방을 윤곽이라도 파악한 연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일부에 대해서라도 내 멋대로 한 번 짐작을 해본다. 한민당 주류 인사들은 일본과 만주에 상당 규모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총독부에서 그것을 사들이거나 보상한다는 명분으로 돈다발을 그들에게 쥐어주지는 않았을까?

내가 총독이라면 그렇게 했다. 막강하던 권력이 해소되고 있는 지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해관계를 최대한 공유하는 집단에게 지금 내가 실어줄 수 있는 힘을 최대한 실어줘야 한다. 김성수 집안이 가지고 있는 만주의 재산을 총독부가 사들이는 형식으로 새로 찍은 지폐를 차떼기로 넘겨준다면, 나중에 혹시 감사(監査)를 받더라도 할 말은 있다.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1945년 9월 중순 시점에서 조선 내 통화량의 40%가 최근 한 달 동안 찍은 새 돈이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그 대부분이 권력의 성격을 가진 뭉칫돈으로 존재했으리라는 것은 상당히 분명한 추측이다. 그리고 당시 한민당 주류 세력이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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