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인생을 안 살아봤기 때문에 무엇을 놓쳤는지 알 수 없지만, 고백하면, 큰 정열로 살지 못한 것이지요."
"선생님의 학문적 경로는 이미 유례가 드문 정열의 증거 아닌가요?"
"그건 정열을 억제하고 규제하는 데서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큰 정열을 가지고 탐험을 한다든지 대모험을 한다든지 대행동가로서 산다든지, 그런 걸 놓쳤지요."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소파 위에 조용히 앉은 채, 선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2006년 6월 초여름에 시작된 대담이 어느새 10월의 막바지에 이르러, 열한 번째 대담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2주일에 한 번 나는 평창동 선생의 자택 거실에 어김없이 앉아 있었다.
오래된 책꽂이의 빛바랜 책들, 전축과 클래식 음반, 낡은 의자와 벽에 걸린 액자 등 거실 공간에 일정하게 자리를 잡은 사물들은 집주인의 성품을 닮은 듯 단정하고 고요하기만 했다. 이따금 졸음에 겨운 듯 선생의 품으로 파고드는 고양이의 조용한 몸짓에서는 한가로움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평안한 오후는 평생 도저한 인문학의 영역을 탐사해온 한 노학자의 사유의 지경과 만나는 즐거운 배움의 시간이었다.
ⓒ한길사 |
흔히 '심미적 이성주의자'라 불리는 김우창 선생과의 이 대화의 기록은 2006년 초에 본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 후 2년 뒤 여름, 8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되어 <세 개의 동그라미 : 마음, 이데아, 지각>(김우창·문광훈 지음, 한길사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2005년 리영희 선생의 <대화>(리영희·임헌영 지음, 한길사 펴냄)가 출간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은 것이 기획의 동기가 되었고, 한길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을 대담 형식으로 담아내는 일련의 '대화 시리즈'를 염두에 두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 '자유'와 '책임'을 지고의 원칙으로 생각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리영희 선생의 일생은 파란만장한 자서전으로 정리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반면 김우창 선생의 '이성'과 '관조', '합리'와 '객관'이라는 사유의 원칙에서 조형되어온 인문학의 세계는 또 다른 삶의 유형으로서 매력적이었고, 그 인문 정신의 깊고 넓은 스펙트럼과 학문의 정열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독문학을 전공하고 예술 미학에 대한 폭넓은 글을 써온 문광훈 선생에게 이 기획에 대해 말씀드렸고, 대담 진행을 맡아줄 것을 부탁드렸다. <시적 마음의 동심원>, <심미적 인문성의 옹호>와 같은 본격적인 '김우창 연구' 저작을 편집한 것이 인연이 되었지만, 이미 20여 년 넘게 김우창 선생의 모든 글을 찾아 읽을 정도로 관심이 많은 터여서 제의에 기꺼이 수락해주었다. 그동안의 공부에 대해 확인하고 물어볼 수 있는 기회라며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 <세 개의 동그라미 : 마음, 이데아, 지각>(김우창·문광훈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
일상생활의 존중 / 투명한 마음 / 행복과 생명의 충일감 / 주체적 존재의 어려움 / 글을 쓰는 것 / 삶은 결국 받아들이는 것 / 언어 너머의 존재 / 문화의 순수성 / 철학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 / 너그러움과 섬세함 / 보편적인 지식의 지평과 열림 / 감각과 이데아의 공존 : 풍부한 삶 / 자유와 인생의 아름다움 / 관조적 균형의 회복 / 자연과의 조화 / 인문 전통의 축적 / 교육의 핵심 : 학문과 인간의 성숙 / 우주에 가득한 행복 / 마음속의 공간 의식 / 자유의 폭과 삶의 길 / 조화로운 사회 공간의 추구 / 인간 이해와 고전 읽기 / 집단의 정의와 의심 / 문학과 과학의 동일성 / 동서양 지성의 비교 / 종교적인 마음 / 내면적 자아와 존재의식
대담은 언제나 가벼운 담소로 시작해 당시의 신문과 방송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안에 대한 얘기로 이어지고, 어느 새 깊이 있는 담론으로 무르익었다. 데카르트,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베냐민, 칸트, 니체, 푸코, 데리다, 릴케, 헤세, 실러, 괴테, 카뮈, 사르트르, 공자, 노자, 퇴계, 율곡, 다산 등 서양과 동양, 철학과 문학, 과거와 현대를 종횡하며 인문학 전반의 많은 사상가들과 그들의 주요 사유의 단초들이 '별무리'처럼 등장하여, 선생의 유연하고도 견고한 논리를 뒷받침했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적인 삶의 태도와 방법을 궁구하고 있되, 그 주장은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적절해 보이는 것이었다. 언제나 견지되고 있는 '이성'과 '합리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문광훈 선생은 말한다. "그의 언어에는 감정이 표백되어 있다. 표백된 언어는 정신의 기율이다"라고. 어느 한편에 분명히 서야 하고, 주의주장이 강한 우리 사회 풍토에서 보면 모호하고 답답한 견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과 사회의 부박성이, 과장과 비유가 지나치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이 이성과 합리성이 아닐까.
이성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말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선생은 "이성이야말로 물질적 세계나 생활 세계의 경의에 이르는 제일 좋은 수단"이고, 그것은 "간단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우주의 끝에까지 가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본성에 충실한 것으로서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때의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하는 자유"를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강요되지 않은 마음에서 발현되는 윤리와 도덕의 실천을 경험한다.
'이성'과 함께 '마음과 내면성'에 대한 성찰은 선생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마음'은 인간의 인식과 소통에서 항상 작용한다. '내면성'은 인식론적 반성으로 얻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투명한 마음이 그냥 거기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생은 인간이 자신의 내면적 진정성 속에서 저절로 행동할 수 있는 삶의 조건,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가끔 이 책이 던지는 무수한 사유의 개념들이 연못 위에 떨어진 많은 꽃잎을 연상시킬 때가 있다. 그 풍경이 꼭 마음의 움직임을 닮은 듯해서다. 꽃잎은 물 분자의 자연스런 움직임으로 천천히 부유하다가도 한때의 바람에 동요하는, 그러나 결코 멈추는 법 없이 어떤 고요한 동적 평형의 상태를 그린다. 그래서 김우창 선생은 이 책의 제목으로 '세 개의 동그라미'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모든 인식의 노력은 지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마음은 그로부터 일정한 개념을 구성해낸다. 그 개념은 단순한 개념일 수도 있고 세계의 뒤편에 숨어 있는 플라톤적인 이데아가 드러나는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이 개념이 마음의 구성 작용 속에서 형이상학적 빛을 발하는 것으로 느껴질 때 그러한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인식의 과정에서 지각과 이데아와 마음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빗나가기도 한다."
ⓒ한길사 |
선생은 인문학자로서의 지금까지 삶에 대해 "경험의 누적으로 생기는 것인지 타고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소명'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명성이란 고고한 마음의 마지막 흠"이라는 밀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중요한 것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소명이며 더 가치 있는 것은 주어진 또는 맡은 바 일에 충실한 삶이라고 했다. "큰 정열로 살지 못했다"고 겸손해하는 선생의 인생이야말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한, '물음의 정열'을 지속한 삶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 책이 많이 읽히지 못한 데 대해서는 편집자로서 안타까움이 든다. 대담에서 너무나 많은 말을 쏟아내어 꺼림칙하다고 선생은 말했지만, 그 몇 자락이라도 우리가 붙들어본다면 인문학의 드넓은 세계에 다가서는 하나의 좋은 통로를 만날 것이다. 사물과 현상을 통찰하는 사유의 명징함이 빚어내는 말과 언어의 향연이 우리의 생각과 시야를 맑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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