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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교육 혁명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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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교육 혁명을 꿈꾸며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이오덕 교육 문고

고인돌 출판사는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저서를 새롭게 기획하고 편집하여 '이오덕 교육 문고' 총서로 펴냅니다.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담겨 있는 <민주 교육으로 가는 길>과 이오덕 선생님의 문학 정신을 담은 <삶을 가꾸는 어린이 문학>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원고를 다시 보면서 기분이 환해지면서, 한편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글에는 아주 뜨겁고 순정한 피가 돕니다. 좋은 글은 정말 내 몸에 흐르는 피처럼 문장에 피가 흐릅니다. 편집하는 사람은 피가 돌고 숨 쉬는 글을 만날 때 기분이 환해지면서, 한편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오덕 선생님 글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경계는 세포처럼 미세한 감각 영역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먹줄로 뚜렷하게 그은 선도 아니고, 판도 아닙니다. 그리고 흑과 백의 진영도 아닙니다. 경계는 들숨과 날숨의 관계와 같습니다. 들숨과 날숨의 경계는 없습니다. 들이마심과 내쉼이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점이 모여 어느 순간 선이 되듯이 경계는 있습니다. 바로 그 경계 지점은 되돌아봄과 내다봄의 깊이에 있습니다. 성찰의 깊이에 있습니다.

▲ <민주 교육으로 가는 길 : 이오덕 교육 철학의 뿌리>(이오덕 지음, 고인돌 펴냄). ⓒ고인돌
이오덕 선생님 글은 성찰을 줍니다. 아주 불편한 성찰을 줍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서도록 합니다. 진실 쪽으로 정직하면 이오덕 선생님 글은 따뜻한 마음의 밭이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줍니다. 거짓 쪽으로 기울면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안 읽힙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작은 거짓에도 세포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모호한 지점은 없습니다. 이 점이 우리나라 교육자나 지식인 사회,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점이고 이오덕의 삶과 저서를 안 읽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뜻을 세우고 간절하게 원할 때 두 손을 모아 합장합니다. 경계는 두 손 모아 합장하는 속에도 있습니다. 합장 속에 진실의 자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또 거짓도 흐릅니다. 합장은 두 가지를 다 포개고 있습니다. 합장 속에 흐르는 자장을 느낄수록 불편해집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내 발자국도 어느 지점에 자국을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에서 흐르는 자장은 어떠한 작은 거짓도 스스로 게워내게 하는 힘입니다. 체했을 때 가장 좋은 처방은 얹힌 것을 게워내는 게 가장 좋지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체해서 속이 쓰리고 썩어 가는 것이 많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가 체해서 얹힌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냅니다.

"아이들을 멸시하고 기죽게 하는 식민지 교육은 남의 나라의 자본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고 좋아 못 견디는 사람들을 따라 더욱 저질이 되어 겉모양만을 다듬고 꾸미는 속임수를 쓰고 그 속임수를 가르치는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 교육으로 가는 길>, 24쪽)

역사는 에누리가 없습니다. 깎아 줄 수 없습니다. 건너 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찌꺼기를 게워내지 못했습니다. 일제 식민지 찌꺼기는 부정한 권력과 투기 자본과 짝짜꿍이 되어 부패하고 부패하여 거대한 권력 암 덩어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암 덩어리는 수십 년 간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포클레인으로 구겨 벽락부자들의 쓰레기통으로 처박히고 있습니다. 암 덩어리는 산과 강을 사지절단 하는 것도 모자라 능지처참을 하고 있습니다. 암 덩어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빠르게 전이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회초리 교육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이를 호되게 나무라며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드문 경우가 있었습니다. 동무들과 나눠 먹지 않고 저만 많이 먹으려고 욕심 부리는 경우, 약한 동무를 놀리고 저 혼자 잘난 듯이 위세 부리는 경우,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이기려고 하는 경우, 물욕이 너무 센 경우, 거짓말을 하는 경우 따위에는 매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배움이 많은 집이나 적은 집이나 매한가지로 생활이 된 가정 교육이고 학교 교육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직 가르친다는 것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남을 이기고 남의 위에 올라서는 것, 점수 많이 따는 것, 온갖 잡동사니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제 새끼를 이토록 추악하게 기르는 동물은 없습니다, 이건 기르는 것이 아니라 짓밟아 죽이는 것, 서로 잡아먹게 하는 짓입니다." (<민주 교육으로 가는 길>, 183쪽)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탱크처럼 밀고 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교육'의 실상입니다. 인간이 종족을 이어가는 싹인 아이들까지 시장에 내 놓고 교육 상품으로 팔아먹겠다는 것,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고 돈과 자본의 기계가 되겠다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아이들 교육에서 우리 모두 자유롭지 못합니다. 많건 적건 경쟁 교육, 점수 따기 교육, 서구 숭배 교육에 가해자이고 피해자입니다. 암 덩어리는 남을 학대하고, 스스로 학대하는 속에 괴물처럼 커집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사람들의 의식을 분열시키고 천박하고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인간관입니다. 왜? 우리가 뿌리지 않은, 부정한 권력과 남의 자본이 뿌린 암 덩어리를 우리가, 그리고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받아야 합니까.

"생각하니 제가 선생님들께 부탁할 말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하던 말입니다. '아이들을 살려주십시오! 선생님들, 부디 아이들이 살아나도록 해 주십시오.' 바로 이 말입니다."

▲ <삶을 가꾸는 어린이 문학 : 이오덕 문학 정신>(이오덕 지음, 고인돌 펴냄). ⓒ고인돌
이오덕 선생님은 조선 시대 실학 개혁 사상가인 정약용 선생 이후 가장 주체적인 겨레의 사상가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개혁 사상은 부패하고 무능한 봉건 왕조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결국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베트남민주공화국 호치민 수상이 살아계실 때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혁명가들이 찾아갔습니다. 사회 혁명을 이끌 사상과 길을 묻자, 호치민 수상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선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지 않느냐? 정약용 선생에게 배우고 혁명의 길을 찾으면 된다."

지금 호치민 수상이 살아 계셔서 같은 질문을 드린다면, 호치민 수상은 이같이 말하겠지요.

"한국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있지 않느냐? 이오덕 선생에게 배우고 혁명의 길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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