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가지 않은 길을 선호하고 권장한다. 개성과 창의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제도화된 과정에서는 누구나 못 가서 안달인 탄탄대로를 고집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일류 학교나 유명한 대기업이 그 예다. 지상에 난 물리적인 길에 한정하여 보면, 가지 않은 길은 탐험가나 모험가의 몫이다. 그 밖에 여행이라 부르는 모든 행위는 이미 나 있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정수일 지음, 창비 펴냄)은 여행기다. 기왕에 존재하던 길을 답습한 뒤 여정에서 얻은 정보와 해석과 소회를 담은 글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문명 교류사의 한 장을 밝히는 여행기다. 인류의 발길이 동서를 교차하면서 형성해 놓은 무수한 문물과 사상과 습속의 반경을 통찰하듯 음미하여 정리한 학술적 보고서다.
▲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정수일 지음, 창비 펴냄). ⓒ창비 |
정수일은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끊임없이 답사를 한다. 답사는 외견상 여행의 형식이어서, 이미 나 있는 길을 되풀이하여 걷는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길,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길, 무수한 물건과 감정과 행위가 교차한 길만 찾는다. 목적은 오직 하나, 다른 사람들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보물을 찾는 일이다. 그 보물은 다이아몬드라 불러도 좋고 진주라 하여도 상관없다. 인류의 발걸음 속에서 문명 교류의 흔적을 체계화하고, 그 안에서 다시 지금의 우리와 나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초원의 실크로드를 다룬 이 책의 서문에서 스스로 초양노옥(草洋擄玉), 초원의 바다에서 문명의 주옥을 건져낸다고 밝힌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그의 여행은 다르고, 여행기는 특별하다. 가장 오래된 길에서 가장 새로운 것을 찾는 기록이다.
문명 교류는 인류의 생명이 탄생한 이래 그 삶의 양식과 질을 드높이고 확장해 온 총체적 궤적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어휘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살다 간 선대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 미래를 개척할 후손의 모든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 자체가 문명 교류의 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길이 실크로드다. 실크로드는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구체적 교역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교류에 기여하는 통로 자체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돼버렸다. 하늘의 실크로드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동서를 연결하는 좁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세 가닥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좁은 의미의 실크로드인 육로, 즉 타클라마칸 주변의 오아시스 도시 국가를 따라가는 길이 첫 번째다. 오아시스로의 위쪽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과 배를 타야 가능한 바닷길이 나머지 둘이다. 이 책은 제목이 나타내듯 초원의 실크로드를 답파한 여행기다. 4년 전에 오아시스로 편(<실크로드 문명 기행>, 한겨레출판 펴냄)을 냈으니, 조만간 해상로 편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초원로 역시 크게 세 구간으로 구분한다. 책의 순서대로 말하면 중국 션양에서 시작하여 내몽고라고 부르는 네이멍구까지 돌아오는 대흥안령 구간, 칭기즈칸 제국의 중심에 해당하는 몽골 전역, 전장 1만㎞에 시간대가 일곱 번이나 바뀌는 광대한 시베리아 초원로다.
정수일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네 차례에 걸쳐 모두 43일 동안 여행하였다. 하지만 어디 그게 전부이기야 하겠는가. 진지한 학자의 발걸음은 횟수에 관계없이 반복하는 데서 관광객들과 차이가 난다. 정수일은 모든 답사로를 두 번째 이상 밟았다. 1952년 초가을 베이징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처음 장거리 기차를 탔을 때(42쪽), 그로부터 6년 뒤 8월 카이로 대학 유학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길에(21쪽), 30년 전 모스크바로 가던 도중 비행기의 불시착으로(456쪽) 모두 한 번 이상 들렀던 곳을 되새김질 하듯 다시 탐색하였다. 기묘하게도 그는 같은 장소를 거듭 찾을수록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내는 능력을 가졌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텐호프가 이름 붙인 이래 실크로드가 세계인의 관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을 전후하여 유럽의 탐험가들이 사막 주변의 유적을 발굴하면서부터다. 지난 세기 후반까지 일본에서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었던 분야가 실크로드였다. 그러다 어느새 그 열기는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실크로드가 살아 움직이는 거의 유일한 곳이 우리나라일지 모른다. 우리에겐 정수일이란 뛰어난 문명학자가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독립한 학문으로 체계화를 시도한 뒤 (<씰크로드학>, 창비 펴냄 ) 계속 답사와 연구와 사색의 결과를 내놓고 있다.
독자를 시원한 초원의 길로 안내하는 이번 저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고전적 여행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여정에 따라 보고 듣고 만나는 문물과 사람에 관한 세밀한 기록이다. 대상에 대한 기술의 태도가 주지주의적이어서, 치밀한 만큼 삭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직접 번역한 <이븐 바투타 여행기>(창비 펴냄)가 그러하듯, 깨알 같은 글씨를 인내심으로 읽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이븐 바투타는 물론, 현장이나 마르코 폴로나 혜초의 여행기 모두 마찬가지다.
정수일의 실크로드학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보통의 실크로드 지도는 서쪽의 로마와 동쪽의 장안(시안)을 이으며, 중간에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강조하는 정도다. 분명 무지 또는 게으름의 소치다. 길이 어찌하여 거기에 그칠 뿐이겠는가. 교류의 흔적이 있는데 길이 없을 리 없다. 울산과 경주 경계 부근의 괘릉 입구에는 신라 때 다녀간 페르시아 인의 석상이 있다. 정수일은 기존의 실크로드 지도를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걸쳐 다시 그렸다. 바로 한반도 확장설이다. 새 지도는 오아시스로뿐만 아니라 초원로와 해로에도 공통으로 적용한다. 그러므로 그의 답사 여행은 민족사의 복원 작업이며, 이번에 낸 책은 초원 실크로드의 한반도 확장론에 대한 시론이다.
초원로의 몽골 구간 여행에서 울란바토르 부근의 노인울라 고분군을 찾았던 이유는 흉노가 동서 교류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331쪽). 그러나 악천후로 현장에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이런 점은 이 여행기의 아쉬운 한계에 해당한다. 중요한 목적을 너무 쉽게 포기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도 사정은 있다. 충분한 비용으로 자기만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이 아니라 언론사의 기획 취재 형식으로 동행하였기에, 여정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었다.
그런 아쉬움은 글의 내용에도 조금씩 드러난다. 답사를 통한 나의 뿌리 찾기에는 보편적으로 가깝게 알려진 북방뿐만이 아니라 남방도 예외가 될 수 없다(406쪽)는 탄력적 사고를 보여주다가, 신라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 씨의 혈연이 흉노에 닿아 있다는 유력한 주장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거부한다. '흉흉한 일설'(321쪽), '의아스런 화제' 또는 '자가당착적'(336쪽)이란 표현은 뿌리 찾기에 대한 유연한 태도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듯하다. 선생의 민족주의 감정이 조금 과하게 분출한 듯 보일 수도 있으나, 기실은 신문에 연재한 내용이라 애당초 분량에 제한이 있어 충분한 논지를 펴지 못한 때문으로 추측한다.
물론 그 밖에도 사소한 아쉬움은 있다. 천전리 암각화의 소재지는 경상남도임에도 경상북도라 한 것(69쪽)이 거슬린다. 그렇지만 그런 오기를 압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여러 곳에 깔려 있다. 초원에서는 시신을 매장할 때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풀이 덮힌 바닥에 감쪽같이 비장하고 장례에 참석한 종자들까지 살해한다. 동시에 어미 낙타가 보는 앞에서 어린 새끼 낙타까지 칼로 베어 버린다. 다음해 제사 때가 되면 한 맺힌 어미 낙타의 모성을 앞세워 매장한 장소를 찾아낸다(110쪽).
쿠빌라이가 카이펑(開平)에서 대칸으로 등극하고는 그곳을 상도로 선포했다. 상도는 곧 국제 무역 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번성하였으며, 마르코 폴로도 17년 동안 주된 거주지로 삼았다(147쪽). 상도와 지금의 베이징인 대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만약 거기에다 훗날 영국 시인 콜리지가 쿠빌라이 칸을 시로 읊으며 상도를 제너두로 표기했다는 사연까지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영화 제목이나 클럽 상호 또는 그룹 이름으로 제너두에 익숙한 신세대 젊은이들에게도 친근감을 줄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여러 방면에 걸친 집요한 추적과 간략한 설명은 그 이상으로 독자를 역사의 지적 호기심의 문턱 너머로 안내한다. 소주의 원류를 몽골 교류주에서 찾고(306쪽), 설렁탕과 제주 조랑말도 몽골에서 들어온 사실을 확인하며(307쪽), 몸을 도구로 한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문신의 기원을 스키타이 고분에서 발견하고(296쪽), 동양 음악 일파의 음계와 발성법과 악기의 근원을 초원에서 다시 일군다(271쪽 이하). 성인용 영화 제목으로 쓰이던 애마는 원래 몽고풍의 고려 부대 이름이었다는 사실(303쪽)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가.
정수일의 글은 감성적으로 나아갈 여유가 없이 정보로 채워져 있다. 설명은 필요한 부분에 한정하며 반드시 일정한 목표를 향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부랴트 공화국에 관한 한 구절을 보면 이렇다.
"현대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부랴뜨 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삶을 개척해나가기 위한 방편에는 이런 종교뿐만 아니라, 고유의 샤머니즘도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 무속의 원류가 바로 북방 민족들 고유의 샤머니즘에 닿아 있으니, 그 현장을 찾아가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386면)."
같은 곳을 찾았던 영국 작가 콜린 더브런의 표현을 비교해 보자.
"부랴뜨 족의 집단적 기억이 한때 기독교의 것이었던 담 속에 유폐된 채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1920년대에는 47개의 사원들이 번성했지만, 1939년쯤에는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불교는 되살아나고 있다고 내 뒤로 마지막 문을 잠그면서 유물을 관리하는 여자가 말했다"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까치 펴냄, 253쪽)
정수일의 여행기는 문장보다 의미로 읽어야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다. 그의 의도는 우리에게 참된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파미르 고원 이편 동쪽의 최고 권위자인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틀림없이 저편인 서양의 문명사가와의 학문적 교류일 터이다. 그의 진지한 실크로드 저서들을 외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작업이 그의 학문을 완성시키는 관건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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