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호 KAIST 교수(기계공학과)는 2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라고 내놓은 어뢰의 '1번' 글씨가 폭발 당시 타지 않은 이유를 놓고 "1번 글씨가 쓰인 (어뢰의) 뒷면은 폭발 후 온도가 단 0.1도도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내용이 담긴 '천안함 어뢰 1번 글씨 부위 온도 계산'이라는 논문도 냈다.
송태호 교수의 이 논문은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26명으로부터 "옳다고 본다"는 추인을 받았다. 송 교수와 KAIST 교수들이 사실상 국방부와 합동조사단을 대신해, 이승헌 교수 등이 "어뢰 폭발로 방출된 열로 1번 글씨의 잉크는 타버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을 정면 반박한 것. 또 <조선일보> 등은 이런 시도를 대서특필했다.
그렇다면, 이런 송 교수의 주장은 <조선일보> 등의 보도처럼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 그 동안 이승헌 교수, 양판석 박사 등의 문제제기에 침묵하던 <조선일보>는 송태호 KAIST 교수의 주장을 대서특필했다. ⓒ조선일보 |
"잘못된 가정으로 엉뚱한 결론 내놓아"
송태호 교수와 마찬가지로 기계공학과에서 '열(熱) 전달'을 연구하는 한 과학자는 3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송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위계적인 한국의 대학 사회에서 당할 수 있는 불이익 때문에, 정부를 대리한 송 교수처럼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독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 과학자는 "송태호 교수는 '어뢰 폭발'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이상기체(ideal gas)'에 근거한 화학 반응으로 해석하면서 엉뚱한 결론을 내놓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송 교수는 어뢰 폭발로 발생한 에너지가 똑같은 온도를 가진 이상기체로 변화하고, 이 이상기체의 움직임을 '충격파'로 가정했다.
이 과학자는 "송 교수의 가정과는 다르게 어뢰는 폭발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섞는 20~25 %의 알루미늄 분말의 비산 효과 때문에 순수 기체가 아니라 준액체의 효과를 나타내 이상기체의 화학 반응과 다를 수밖에 없다"며 "합동조사단이 '폭발 중심이 20만 기압에 달한다'고 가정한 것도 바로 이런 특별한 폭발에서 나타나는 화학 반응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학자는 "그러나 송 교수는 이상기체의 화학 반응으로 가정을 하다 보니, 폭발 중심의 압력은 합동조사단의 10분의 1 수준인 2만 기압 정도로 가정했고, 이런 식으로는 폭발 때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고 꼬집었다. 즉, 송 교수의 가정대로라면, 어뢰 폭발을 제대로 재연할 수 없다는 것이다.
"1번 글씨 지키려다 버블제트 어뢰 가설 폐기"
이 과학자는 구체적으로 송태호 교수 논문의 모순도 지적했다. 그는 "송 교수는 논문의 2쪽에서 어뢰의 TNT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초당 수 ㎞(킬로미터)에 달한다"고 언급해 놓고서, 정작 12쪽에서는 충격파가 어뢰의 후면에 있는 디스크(막)에 닿는 시간을 0.0071초로 계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알루미늄 분말이 들어간 TNT가 폭발할 경우에 실험으로 얻어진 충격파의 속도는 초당 5~7㎞이고, 이런 충격파가 어뢰 5.47m를 이동해 디스크에 도달하는 시간은 0.0071초가 아니라 그 10분의 1인 0.0009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가정을 잘못하다 보니, 송 교수의 논문 안에서 모순이 생긴 것이다.
그는 "또 송 교수는 6쪽에서 선저에 0.1기압(0.01MPa·메가파스칼)이 가해진다고 주장했는데, 이 정도의 기압은 천안함 하단의 강철의 변형을 가져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압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천안함 프로펠러를 제작한 업체 가메와는 '400Mpa 정도의 압력이라야 프로펠러에 영구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송태호 교수의 논문대로라면, 해당 어뢰는 폭발을 했더라도 천안함을 침몰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충격파만 내놓는다. 따라서 송 교수의 논문은 합동조사단의 "버블제트(물기둥) 효과를 낳는 최신형 어뢰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라는 핵심 주장 자체를 정면 반박하는 것이 된다.
송태호 교수의 진짜 결론은 "버블제트 어뢰는 없다"?
이 과학자는 "송태호 교수 논문의 허점은 이뿐만이 아니다"라며 "한 가지만 더 언급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송 교수의 결론은 어뢰의 폭발이 거의 대부분 바닷물의 운동에너지로 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며 "송 교수의 결론대로 충격파의 압력이나 온도가 낮게 나온다면 결론적으로 버블제트 효과를 내는 어뢰는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학자는 "송태호 교수는 논문의 말미에 '항간의 서투른 계산으로 잘못되었고,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이 부족한 자들이 여론몰이를 할 경우 한국 사회가 낙후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다"며 "그러나 단언컨대 진정한 전문가라면 송 교수처럼 저렇게 얘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과학자는 "과학자라면 항상 열린 의식을 가지고 초등학생의 하찮은 질문이라도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데, 송 교수는 자신도 폭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서 마치 자신이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무리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동료 검토(peer review)'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과학자는 "실제로 송 교수는 자신이 전문가라고 하면서 정작 폭발 문제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상기체의 화학 반응에 근거해서 어뢰 폭발 상황을 분석하는 오류를 범했다"며 "송 교수의 논문은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천안함 '1번' 글씨를 둘러싼 온도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한편, 이 과학자는 KAIST 교수 26명의 '추인'을 놓고도 이렇게 해석했다. 그는 "26명의 기계공학과 교수들이 '송 교수의 주장 자체가 옳다'고 본 것이라기보다는 송 교수가 '특정 가정에 기초해서 결론을 얻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본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이런 추인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태호 교수는 합동조사단의 구원자? 송태호 교수는 과연 정부, 보수 언론의 구원자일까? 그렇지 않다. 김인호 국방과학연구소 고에너지기술부장은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송태호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처음 폭약이 터지면 3000~50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지만 이 에너지는 물을 밀어내 버블(기체)을 팽창시키는 데 쓰이기 때문에 버블 내 화염의 온도는 상온으로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김인호 부장은 '어뢰 폭발로 100m 이상의 물기둥이 치솟았다는 합동조사단의 발표와 달리 송 교수가 2m 정도의 물기둥에 그쳤을 것이라고 분석한 데 대해서는 "송 교수의 발표 내용을 정확히 모르겠다"고 발을 뺐다. 이런 김 부장의 반응은 송 교수의 주장이 되레 합동조사단의 결론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간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흡착 물질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에서 줄기차게 "이승헌 교수가 어뢰 폭발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재연'하는데 실패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일관성이 있으려면, 폭발의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송태호 교수의 주장도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을 피하기 어렵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