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서 녹색당의 선거패배와 이것이 한국사회에 갖는 함의를 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직후 여론조사에서 23%를 넘는 지지율을 얻었던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8.4%라는 초라한 결과를 얻었다.
▲ 지난 22일 총선 당일 TV 토론을 끝내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사민당 후보와 악수를 나눌 때, 원내 진출 최소 득표율을 간신히 넘긴 녹색당 후보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 ⓒAP=연합뉴스 |
녹색당의 초라한 득표율, 탈핵 동력 쇠퇴?
녹색당의 지지율 8.4%는 원내 진출의 최소 요건인 5%를 간신히 넘겼다는 점에서 초라한 성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녹색당의 지지율 추락을 독일 사회가 탈핵을 지향하게 된 소위 '후쿠시마 효과'가 끝났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독일인들의 탈핵에 대한 요구가 녹색당으로 향하게 되면서 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은 '후쿠시마 효과'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독일에서 생태주의적 사고를 대변하는 정당은 녹색당만이 아니다. 녹색당 자체가 제도정당으로 진입한 지 30년이 넘었고, 다른 정당과의 연정을 구성할 만큼 독일사회에서 생태적 사고는 보편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보수정당과 메르켈 총리가 원전 완전 폐쇄 정책을 즉각적으로 제시한 것도 이런 토양 때문에 가능했다. 메르켈 총리가 원전 폐쇄 정책을 전격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탈원자력법이 있다.
메르켈 총리는 탈핵정책으로도 녹색당의 지지표를 상당 부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녹색당으로서는 보수정당으로부터 의제를 선점당한 꼴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원전폐쇄정책이 발표된 이후, 실제적으로 뒷받침하는 대체에너지 인프라 건설 진척이 느리다는 점에서 메르켈 총리의 탈핵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후쿠시마 효과'는 사리진 것이 아니라 특정정당의 당론을 초월한 탈핵 프레임으로 공유되고 있다.
탈핵 정책, 누구도 쉽게 못뒤집을 것
메르켈 총리의 탈핵 정책이 진보정당의 의제를 선점하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는 의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자신들을 위한 환경을 위해서라도 탈핵을 지지하는 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탈핵 정책을 뒤집을 수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필자가 살고 있는 바이로이트는 바이에른 주에 속하는데, 이곳은 기민당과 연합한 기사당의 중요한 정치적 요충지로서 메르켈 총리의 승리에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그만큼 독일 내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다.
등산을 좋아하는 필자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었다. 바이로이트를 둘러싼 산들을 갈 때, 버섯을 따거나 먹지 말라는 것이다.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낙진이 여전히 산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의 의식 속에는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고였다.
대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탈핵 스티커가 이 작은 보수적인 소도시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트라우마를 반영한다.
필자가 직접 겪은 일화는 또 있다. 필자가 박사과정생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연구 대상 지역이 한국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독일 학생들은 예정되었던 한국 출장을 전면 취소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일본과 동일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정작 한국에서는 탈핵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가 미흡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또한 독일 녹색당의 저조한 득표율을 유권자들의 탈핵 요구가 수그러든 것으로 한국에서 왜곡할까봐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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