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급의 대사건'이 될 만한 후보로는 한 번에 모든 것을 순식간에 끝장내는 핵전쟁이 꼽힌다. 하지만 인류의 집단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핵전쟁은 후보가 될 수 없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월10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핵무기는 극도로 비참한 무기이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할 수 없어 군사적으로는 무용한 존재"라고 말한 것도 이런 믿음을 보여준다.
이런 믿음이 유효하다고 해도 핵이 '아마겟돈'을 초래할 후보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끝장내는 방식이 아니라 서서히 끝장내는 방식으로 '핵재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핵발전소 전문가들은 이미 2년반 전에 '아마겟돈급 핵재앙'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바로 '후쿠시마 사태'를 가리킨다.
'아마겟돈급 핵재앙'이 일어났다면 누구도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핵발전소 관리 업체가 수습할 정도의 사건 정도로 치부해왔던 일본 정부가 2년 반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국가가 전면에 나서 수습해야 할 상황"이라고 인정하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는 이제 전세계 일반인도 외면할 수 없는 '지구촌 공포'로 떠오르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바로 그 날부터 "지진보다 지진이 일어난 후쿠시마의 핵발전소의 상황이 더 중대한 문제"라는 판단에 따라 국내 언론 중 가장 빠르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관련 속보와 분석 기사를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프레시안>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심각한 사태"로 인정한 것을 계기로, 다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와 관련한 속보와 분석 기사를 지속적으로 게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멜트다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 2년 반이 지나는 동안 일본 정부는 멜트다운 중지도 못하고, 방사능 오염수 유출도 막지 못하고 있다. ⓒAP=연합 |
사건 발생 후 두 달 동안 은폐한 '멜트다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난 2011년 3월 11일 <프레시안>에는 "日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 '일촉즉발' 위기…비상사태 계속"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기사를 돌이켜보면 일본 정부는 첫날부터 거짓말을 했고, 그 후 일관되게 후쿠시마 사태에 관해 책임 회피, 축소, 은폐를 일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 장관은 기자 회견을 열고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원자력재해특별조치법 규정에 따라 원자력 긴급 사태를 발령했다"고 밝히면서도 "이는 핵발전소 원자로의 냉각 조치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일 뿐 현재로선 방사능이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원자로가 가열되면서 수증기가 가득차 격납 용기가 터질 위험이 커지자 '방사능 증기'를 배출하는 작업이 시행됐다. 그러면서도 에다노 관방 장관은 기자 회견을 통해 "이번 방출은 정부가 통제 관리하는 방식이므로 대피명령에 침착하게 따르면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물론, 일본 현지 언론들은 지진 다음날부터 핵발전소에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이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하는 보도를 내고 있어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호기에 이어 3호기 원자로에서 잇따라 폭발이 일어난 14일에도 "원자로의 격납 용기와 압력 용기는 손상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본에 원자로를 수출한 미국 원자력 당국 관료들은 당시 "일본 정부가 24시간에서 48시간 내 사고 핵발전소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사상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 있는 6기의 원자로 중 2~3기에서 상당한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할 때도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에 사태 수습을 맡기면 그만이라는 태도였다.
"냉온정지를 이뤘다는 새빨간 거짓말"
사건 발생 1주일 뒤인 2011년 3월 18일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금이라도 콘크리트로 핵발전소을 덮어야 한다"고 복구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로 진단했다. 서 교수의 진단은 2년 반이 지난 지금 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핵발전소 주변의 땅을 얼려버린다든지,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시킨다든지 갑자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서 교수는 "일본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은 2020년 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급조된 소설같은 황당무계한 것들뿐"이라면서 "이제는 콘크리트로 막는 방법도 실행이 불가능해졌다"는 암울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사건 두 달만에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 2, 3호 원자로 모두 핵연료봉이 전부 녹아내린 '멜트다운' 상태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는 핵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2011년 5월 17일 '냉각 정상화 로드맵' 개정판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일본 정부는 마침내 더 이상의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냉온 정지'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 교수는 "지금도 멜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개탄했다.
콘크리트로 핵발전소을 덮는 방법도 최소한 더 이상 멜트다운이 진행되지 않는 조치가 이뤄진 다음에 가능한데, 2년 반이 지나도록 냉온 정지도 못시킨 상태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현재 3000도가 넘는 핵연료가 녹아내리면서 1미터20센티미터 정도되는 콘크리트 바닥까지 조금씩 증발해서 이제는 토양에 직접 스며들기 직전의 상황"이라면서 "토양 밑으로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 먹이사슬 전체가 오염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서 교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는 더 이상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차원에서 수습에 나서야 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독일 국영 방송 "후쿠시마의 상황, 아마겟돈"
그뿐만이 아니다. 2012년 3월 7일 독일 국영방송 ZDF에서 방영돼 충격을 준 다큐 르포 <후쿠시마의 거짓말>은 후쿠시마의 상황에 대해 '아마겟돈'이라고 표현했다.
ZDF와 인터뷰를 한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멜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는 1, 2, 3호기보다 4호기가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미 건물이 날아가버린 이곳에 1300개의 사용후핵연료봉이 냉각 수조에 담겨있지만, 더 이상 냉각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25일 도쿄전력은 4호기 사용후핵연료봉 저장조에서 약 8톤의 물이 구멍난 배관으로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봉이 추가 지진 등으로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면 핵연료가 물밖으로 노출돼 핵 분열을 일으키며 녹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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