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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한 장으로 이혼 막은 그 남자의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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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한 장으로 이혼 막은 그 남자의 사연은?

[현장] 도로 위 달리는 상담소, 버추택시

10년 차 택시 기사 정재욱(48) 씨는 얼마 전 방배동에서 태운 한 50대 승객의 첫인상을 잊을 수 없다. 늦은 밤, 술에 약간 취한 채로 뒷좌석에 '털썩' 앉은 이 승객의 얼굴에서는 숨길 수 없는 절망이 묻어나왔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정 씨는 늘 가지고 다니는 '버추카드(Virtues Card)' 꾸러미를 승객에게 내밀었다. 배려, 존중, 정직, 협동 등 52가지 미덕의 뜻을 한 장 한 장 풀이해놓은 카드 꾸러미다. "보지 말고 한 장 뽑아보시라"는 정 씨의 말에 승객은 의아해하며 카드를 골라냈다. 그가 뽑은 카드는 '초심'.

절망의 기운을 뿜어내던 이 50대 남성은 카드에 적힌 글귀를 읽자마자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자연스레 털어놓기 시작했다. 20여 년간 일터이자 삶터로 지켜온 제과점이 프랜차이즈에 밀려 결국 문을 닫게 됐다는 사연이었다. 술을 마신 그날은, 자신의 빵집을 삼켜버린 프랜차이즈 기업에 신입 제빵사로 취직하고 첫 출근을 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카드는 선물이니 가져가세요"라고 정 씨가 말하자, 승객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끼고 있었는데,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는 말도 남겼다.

이 승객 외에도 정 씨는 자신의 택시를 타는 모든 승객에게 카드 한 장의 '위로'를 주는 버추카드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버추카드 운동은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 90개 국가로 퍼져 나갔고, 한국에서는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버츄프로젝트가 9년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 씨가 속한 마포모범운전자협회는 우연한 기회에 버추카드 운동을 알게 돼 현재는 10여 명의 기사가 각 차량에 카드 꾸러미를 비치하고 영업 중이다.

▲ 버추카드를 들고 있는 마포모범운전자연합회 택시 기사들. 왼쪽부터 김재원(55) 씨, 임재현(54) 씨, 이삼배 씨, 정재욱(48) 씨, 민정웅(69) 씨. ⓒ프레시안(최하얀)

택시 기사 민정웅(69) 씨는 이혼 도장을 찍으러 법원에 가기 위해 차를 잡아탄 한 중년 부부가 '용서'와 '화합'이란 카드를 뽑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사연도 전했다. 경마장에서 큰돈을 잃고 택시에 오른 승객이 '근면' 카드를 뽑고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뉘우치는 모습을 봤다는 버추택시 기사도 있었다.

정 씨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답답하고 억울한 이야기를 우리는 매일 승객들로부터 생생하게 듣는다"며 "카드 한 장이 해결사는 못 되지만, 작은 위로는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된 감정·육체 노동에 종종 지치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버추택시 운동은 그러나 공급 카드량이 부족해 빠르게 확산하지는 못 하고 있다. 비영리단체가 진행하는 운동인지라 카드 제작과 보급을 위한 재정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민정웅 씨는 "대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카드에 기업 이름을 넣는 방식으로 운동을 펼치고 싶지는 않다"며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차량에 카드가 비치돼 택시가 저렴한 '상담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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