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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취임식 공연, <위아더원>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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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취임식 공연, <위아더원> 되지 않으려면…

[박근혜 취임 한 달] 박근혜 '문화융성'과 박정희 '엘리트 체육'은 닮은꼴?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장에서 가수 싸이가 춤을 췄다. 엽기발랄함의 아이콘인 싸이에게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공연장이 아닐까 했지만,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 '문화융성'에 대해 언급한 것과 맞물리면서 의외로 상징적 장면이 됐다.

취임 한 달을 맞은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융성'은 국민행복, 경제부흥, 한반도 평화와 함께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로 등극했다. 취임사에서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라고 했던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문화에 대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이라고 언급하는 등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문화에 대한 발언을 보면 여러 차원의 인식이 중첩돼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문화 고유의 긍정적 기능이다. 취임사에서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문화의 가치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겠다"고 했던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단 취임 이후엔 이같은 차원의 언급은 거의 없었다.

▲가수 싸이가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사전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문화는 창조경제 가장 빨리 구현할 분야"

가장 많고 지속적인 언급은 '문화 산업'의 차원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화와 첨단기술이 융합된 컨텐츠 산업 육성을 통해 창조경제를 견인하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고, 지난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화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으로, 문화 컨텐츠를 통해 국가발전에도 기여하는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꿈꾸는 '창조경제'에서 문화는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플랫폼과 디바이스는 미래부가 만들 수 있지만, 여기에 담을 컨텐츠에는 문화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비유하자면, 미래부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유튜브'를 만들고 이를 LTE 기술로 개인 사용자에게 실어 날라도 사용자 입장에선 이를 활용해 <강남 스타일>을 봐야 제 맛이지 바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만 다녀서야 '문화가 있는 삶'도 '신성장동력'도 요원하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인수위 정책간담회에서 "문화 컨텐츠 산업은 IT와의 융합을 통해서 창조경제를 가장 빨리 구현할 수 있는 분야"라며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라는 문화 컨텐츠가 유튜브라는 IT기술을 만났을 때 나타난 그 성과는 문화 컨텐츠 산업이 얼마든지 우리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 것도 이런 뜻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작년에 제가 외주 드라마 제작 현장을 찾아가서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며 "촬영기간 단축이나 스태프 감원, 임금 삭감과 체불 등 열악한 제작환경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류 드라마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종합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뽀로로'를 보면서 '아, 우리 애니메이션의 가능성도 상당히 크구나'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2, 제3의 뽀로로를 배출하는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도록 이것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겠다"고도 했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자금 조달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대통령의 관심과 지원 약속에 관련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단 우려도 없지는 않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이니만큼, '지원'에서 나아가 정부 주도로 문화 산업이 '육성'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박정희 때는 체육으로 국위선양, 이번엔 문화?

싸이, 한류 드라마, 뽀로로의 사례를 들며 박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성공 가능성과 국가의 위상이었다. 문화를 통한 국위선양은 박 대통령의 문화 인식의 세 번째 차원에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우리 민족 고유의 우수한 문화적 소양을 극대화해서 IT, 교육, 복지, 음악, 음식을 비롯한 사회 전 분야의 문화 영역에서 문화 기반을 살리고, 문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널리 알리고, 세계평화와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지시했다.

18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문화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떠올랐다"며 "문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알리고, 고부가가치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고, 취임식 다음날 열린 재외동포 초청 리셉션에서는 "문화융성을 통해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고유 가치와 유무형 자산을 세계에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며 "한류 문화가 세계인 마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관(官)의 지원과 육성을 통해 '한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다는 생각은 익숙한 방식이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런 역할을 한 것은 '엘리트 체육'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체력은 국력'이란 표어를 채택하면서 체육고등학교, 체육대학을 처음 설립했다.

태릉선수촌과 소년체전도 박정희 정부에서 만들어졌다. 1978년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렸고, 현재 문화부 차관이 된 박종길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서울올림픽 유치계획안도 10.26 사태를 한 달여 앞둔 1979년 9월19일 짜여져 같은달 21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박정희 정부가 '키워낸' 체육인들은 세계에서 한국의 이름을 알리고 국내의 단결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홍수환 한국권투인협회 명예회장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한국인의 영웅이 됐던 것도 박정희 정부 시절의 일이다.

"문화를 정부가 직접 디자인하려 하면 안돼"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민족주의적인 측면에서 그 나라 문화의 우수함을 통해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와 통치자를 동일시하게 하는 측면"은 근대 이후 탄생한 국민국가의 속성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물론 이는 박근혜 정부 등 보수정권만이 아니라 이전 모든 정권에 적용되는 비판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권양숙 당시 영부인이 주빈국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았던 것을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또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문화는 '애국심' 고취에 이용되기도 했었다.

박 대표는 "문화란 독창적이고 자발적인 정신의 발로인데, 정부가 정책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면 문화가 아니다"라며 "정부의 역할은 공동체성과 개인 발상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독창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발현할 조건을 갖춰 주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박 대표는 권력이 문화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문화를 산업 소재로 삼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민족주의적 측면"이라며 "박 대통령의 경우 문화산업적 측면 외에 박정희 정부가 했던, 문화를 정통성의 기반으로 삼는 '국민국가 프로젝트'가 같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는 다른 점이고,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다시 취임식 날로 돌아가 보자. 싸이의 공연이 끝난 후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류 문화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고,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이 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5000년 유·무형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정신문화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강남 스타일>에 '대한민국 5000년 정신문화의 바탕'이 담겨 있다는 말에 싸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문화 영웅'이 되기 전의 싸이는 2006년 <위아더원(We are the one)> 뮤직비디오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앞에 끌려가 생존을 위한 공연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문화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취임식장에서 싸이가 선보인 '말춤'은 이 뮤직비디오의 비극적 현장화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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