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피플>은 "대통령 취임식과 같은 국가적인 행사에서 라이브 무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천재지변의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립싱크가 허용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립싱크라도 역시 비욘세의 공연은 대단했다. 뭐가 문제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지난 27일 <가디언>은 "비욘세의 립싱크 사건, 말고기가 든 소고기 햄버거 사건, 약물로 기록을 쌓아온 사이클리스트 랜스 암스트롱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능멸하는 이런 현상이 만연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글을 게재했다.
<가디언>은 "립싱크이건 약물이건 대중을 기만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러다가는 이런 능멸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세계적인 가수 비욘세가 지난 21일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서 립싱크로 국가를 열창하는 연기를 하고 있다. ⓒAP=연합 |
"이미 우리는 '매트릭스' 사회에 살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가 만든 가상 현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인간 중에 '사이퍼'라는 인물이 있다. 하지만 그는 9년의 투쟁 끝에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가상현실인줄 알고 있지만, 차라리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기계가 만든 가상현실에서 안주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런 음울한 미래사회가 지금 현실이 된 것같다. 비욘세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립싱크로 국가를 부르고, 영국에서는 말고기가 섞인 쇠고기버거가 팔리고 있다. 랜스 암스트롱은 약물로 기록을 세워갔다.
이런 기만적인 사건들은 스포츠나 연예계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포장이 실체보다 앞서고, 냉소가 진지함을 압도하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듯한 상품으로 당당하게 권해지는 문화는 도처에 만연돼 있다.
이번 사건들로 누가 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뻔뻔스러운 이중성과 대중에 대한 능멸, 나아가 신뢰의 훼손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비욘세의 경우를 보자. 큰 행사에서 특히 날씨가 추울 때 목소리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립싱크를 하기도 한다. 비욘세의 경우는 다르다. 비욘세는 행사 당일 늦게 도착해 해병대 악단과 연습할 시간이 없어 미리 준비해둔 녹음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큰 행사가 아니라, 비욘세가 말했듯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가를 부르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해병대 악단과 한차례라도 연습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라이브 공연의 핵심은 청중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장을 경험하도록 하는 동시성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그 생생함이 라이브 공연을 선호하는 이유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라이브 공연 경험이 있는 가수 겸 기타리스트 제임스 테일러는 "날씨가 추우면 손가락이 굳어져 기타연주를 하기 힘들죠"라면서 "큰 탈 없이 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라고 회상했다.
비욘세의 재능이 뛰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이런 특별한 행사에서 그가 자신의 공연을 해낼 능력을 어떻게 보여줄지는 못보게 됐다.
사람들이 라이브 공연을 원하는 것은 가짜 라이브 공연의 완벽함이 아니라, 고유의 생생함이다.
"사실인 줄 알라"라는 대중 능멸의 시대
하긴 립싱크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라이브 공연이라고 해놓고 가짜 라이브 공연을 듣게 한 것이 더 큰 문제다.
해병대 악단은 진짜 연주하는 흉내를 냈고, 지휘자는 진짜 지휘하듯 시늉하고, 비욘세는 노래를 부르는 척했다. 그리고 행사 관계자들은 며칠 동안 이 사실을 모르는 척했다. 립싱크는 범죄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은폐는 매우 가증스러운 행위다.
이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런 수법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최초의 정치컨설팅업체를 설립한 클렘 휘터커는 정치운동에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싸우거나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권운동가도 '가짜'에 찬사를 보내는 세상
인권운동 진영의 지도자이자 케이블 TV 진행자인 앨 샤프턴 목사는 비욘세의 립싱크를 "애국적인 행위"라고 찬사를 보냈고, "언제나 솔직하라"고 외치던 앤더슨 쿠퍼 CNN 앵커는 "우리는 그저 '비욘세 월드'에서 살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는 가짜 세상에 의존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거짓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할 만큼 기대 수준이 낮아졌다.
비욘세는 다음달 슈퍼볼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그때 우리는 의심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 취임식 때 우리는 의심할 것이다.
우리가 뜻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 단어들-'라이브' '쇠고기' '세계기록'-은 이제 의미를 상실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더 이상 실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과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그게 실제인 줄 알라고 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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