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에서 PK 지역이 가지는 중요성은 불문가지다. 13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홍준표 새누리당 경남도지사 후보는 "부산·경남·울산에서 최소 65%는 득표해야 박근혜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박 후보가 야권 후보에게 진다고 보고 이를 만회할 곳은 PK밖에 없다"는 것. 그는 "현재는 PK에서 새누리당의 표는 55%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 후보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경남에) 내려가 보니 PK 정서가 아주 좋지 않다"고 하기도 했다. 자신이 선수로 뛰고 있는 경남지사 보선에 여론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의도와 약간의 엄살이 섞여 있을 가능성 등을 모두 감안해서 들어야 하겠지만, 홍 후보의 말은 PK의 전략적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다. 그가 '아주 좋지 않다'고 표현한 PK의 정서는 어떤 것일까? <프레시안>이 12일 부산을 찾은 이유다. 마침 이 날은 안철수 후보의 부산 일정이 있었던 날이기도 하다.
"무조건 박근혜다. 20대 애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부산진 수정시장의 한 채소가게 앞에서 만난 60대 여성의 반응은 'PK 정서'의 한 전형을 보여 줬다. 그는 "무조건 박근혜"라며 "이북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필요없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누가 '이북'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지 밝히지 않았다. 굳이 '이북'을 위한다는 게 누구인지를 특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은, 그에게 중요한 질문이 '박근혜냐, 문재인이냐, 안철수냐'가 아니라 '박근혜냐, 박근혜가 아니냐'처럼 보였기 때문.
정육점 앞에서 만난 70대 여성 3명의 반응도 대동소이했다. "무조건 박근혜"라는 표현은 정확히 일치했다. 역시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들은 '박근혜 후보 인기가 왜 이렇게 좋으냐'라는 질문에 "착하다"고 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듬뿍 담긴 대답도 이어졌다. '야당은 왜 이렇게 민심을 잃었나?'는 질문에는 "노무현이, 문재인이 한 것 봐라"는 즉답이 나왔다.
이들 70대 여성 3인의 반응 가운데 흥미로웠던 것은 젊은 세대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신분을 밝히고 취재를 요청했음에도 이들은 "또 안철수 찍으라는 거 아이가"라며 "안철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수정시장 할매들이 그러더라고 안철수한테 가서 일러라"고 반응했다. "20대 애들, 대학생들은 뭐 아무것도 모르고 투표하지. 젊다고 안철수 찍겠지 뭐"라고도 했다.
이 시장에서 횟집을 하는 최 아무개 씨(71세, 남)는 "50~60대 여자들이 와서 계모임할 때, 저도 궁금해서 옆에서 들어보면 여성 대통령 얘기하면서 박근혜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젊은 사람들은 안 씨(안철수 후보)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이랑 여자들은 보면 박근혜인데, 나이 많은 남자들은 말을 잘 안 한다"고 그는 전했다. 최 씨의 횟집 건너편 골목에서 역시 횟집을 하는 정 아무개 씨(39세, 남)도 "아줌마들이 여성 대통령 얘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이들의 횟집에서 술을 마시고 가는 손님들 가운데는 박근혜 후보 지지자가 많다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다만 정 씨는 "30~40대 남자들은 보면 박근혜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저번에 (공천헌금) 사건이 터졌을 때 박근혜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는데 '말이 되냐'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정 씨는 "그런 남자들은 문재인(지지자)"이라고 덧붙였다. 70대의 최 씨가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서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30대인 정 씨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지지자? 과 동기 40명 중에 한두 명 정도…"
대학가는 시장과 반응이 완전히 반대였다. 20대인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비로소 시장에서 만난 70대 여성들이 보인 태도가 이해됐다. 부산대학교에서 만난 이 아무개 씨(25세, 남)는 대선과 관련해 주변의 반응을 묻자 "문재인이냐 안철수냐가 아니라 그냥 박근혜가 싫은 것 같다. 문재인, 안철수 정책 비교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박근혜 지지하는 사람은 한 1/10은 되려나"라고 했다.
이소라 씨(25세, 여)는 주변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후보로 "도덕성이 훌륭한 것 같다"는 안철수 후보를 꼽았다. "기존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을 해준다고 해놓고 안 했다"고 기성 정치를 비판하기도 한 이 씨는 또래 집단 가운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친구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되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제 주변에는 없고요…. 친구의 친구?" 새누리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PK지만, 이런 반응이 일반적이라면 젊은 층에서는 오히려 수도권보다도 야권 정서가 강하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씨의 남자친구 유 아무개 씨(25)도 안 후보를 좋아한다며 "신세대 이미지"와 "깨끗함"을 이유로 꼽았다. 유 씨는 가족 등 어른들과 정치 얘기를 할 때면 "뭐라고 한다(잔소리를 한다). 왜 새누리당 안 찍냐, 니가 정치를 뭘 아냐고 한다"고 답답함을 말했다. 한편 이들 커플은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잘난 사람이고, 엘리트인 것 같다", "특전사 나왔고 친노라고 하더라"며 제법 많은 정보와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밝히면서도 "잘 모른다", "별로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부산대 정문 앞에서 만난 강현진 씨(23세, 여)도 박 후보와 새누리당에 대한 주변 반응에 대해 "친구 중에는 (지지자가) 없고, 정외과 동기 40명 중에 한두 명 있다"고 했다. 강 씨의 친구 이 아무개 씨(23세, 여)는 "새누리당 자체가 싫다"면서 강한 반(反) 여당 정서를 보이기도 했다. "기득권이고 지금 집권당인데 부패했다"는 것. 강 씨도 "너무 '궁리'만 한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과거에 얽매여 있다"며 "표는 단일후보에게 (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서면 전쳘역 인근에서 만난 대학생 임 아무개 씨(23세, 여)도 "젊은 사람 중에 박근혜 좋아하는 사람은 (정치에) 관심 없는 애들 뿐"이라고 했다. 임 씨는 자신과 친구들 집단에서 누가 가장 지지가 높냐고 묻자 "문재인 아니면 안철수?"라며 둘 가운데 한 명을 꼽아 보라는 재질문에는 "글쎄, 갈린다"고 했다. 20세 새내기 남자 대학생 3명도 "박근혜 지지자? 제 친구 중에는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수산인한마음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대선후보(왼쪽부터). 두 후보는 모두 이명박 정부 들어 없어진 해양수산부 부활을 수산 관련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PK 지역 민심에 대한 구애의 의미도 갖고 있다. ⓒ뉴시스 |
30~40대도 "새누리당은 아니다?"…승부처는 50대?
30대들의 결론은 20대와 유사했지만 정서는 달라 보였다. 부산역 앞에서 만난 직장인 이은영 씨(32세, 여)는 "제 주변은 다 '새누리당은 아니다'라고 한다"며 "이명박 정부가 잘못했는데 처벌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는 "박정희 딸이긴 한데, 박근혜가 우리를 위해 뭐 해준 건 없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박정희 딸이긴 한데'라는 반응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일정 정도 평가한다는 면에서 20대와 다르고, '박정희는 박정희, 박근혜는 박근혜'라는 면에서 60대 이상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씨는 야권의 두 후보에 대한 반응을 묻자 "어차피 통합될 거라서, 통합되면…"이라고 답했다. '둘 중 누구냐는 의미 없다'는 태도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20대 젊은이들에게 이번 대선이 '새로움 대 낡음'이라는 구도였다면, 20대 일부와 30대들의 지배적 정서는 이와는 온도차가 있어 보였다. 오히려 이들의 핵심 질문은, 답이 정반대일 뿐 시장에서 만난 50~70대와 같았다. '박근혜냐, 박근혜가 아니냐?'
초·중등학교 시간강사 이 아무개 씨(31세, 여)가 전한 주변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이 씨는 '대선 주자 중 누가 가장 인기가 좋은가?'라는 질문에 "문재인 또는 안철수인데, 누가 되든 단일화되면 밀어주자 하는 사람이 많다"며 "제 나이 또래는 10명 중 7~8명이 문재인, 안철수"라고 했다.
직업과 이슈 민감성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이 씨는 "안철수는 20대들이 기대를 많이 갖고 있는 것 같고, 문재인(지지자들)은 30대, 40대가 많다"며 "(문 후보는) 인물이 정의로워 보이고, 노무현 때 했던 문재인의 역할이 지금 정권의 부패 이런 걸 바꿔나가는 걸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 씨는 "저 개인적으로는 문재인"이라고 했다.
아이 셋의 엄마인 김 아무개 씨(45세)는 "40대는 80%가 박근혜 안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했다. 김 씨의 '카카오톡' 그룹채팅방 2개에는 그의 아이들과 같은 반인 40대 엄마들이 각각 6명, 9명 있었다. 김 씨는 "박근혜 좋다는 엄마는 각 채팅방에 1명씩밖에 없더라. 나머지는 안철수 반, 문재인 반"이라고 했다. 김 씨는 80년대 말에 대학을 다녔고, 중산층 이상 가정 형편이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른 학부모 및 학교 인사들과 많이 만나고 있다. 김 씨는 "50대 이후는 박근혜 지지인 것 같다"며 '세대 한계선'을 50대로 잡았다.
김 씨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아이 키우는 40대 부모들은 '이제는 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으면 좋겠다. 박근혜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는 "40대들은 한편 노무현 정부가 줬던 혼란은 싫은 것"이라고 복잡한 심사도 전했다. 대학 동창 모임에 나가 보면 "이회창 때는 대학 동창들 사이에서 '(역사가) 흘러가야 한다' 이러면서 반대 목소리가 크게 나왔지만, 지금은 '박근혜는 아니다'라는 분위기인데도 이회창 때에 비해 (반대 정서가) 강력하지 않다"고 2002년 대선과는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야권 성향 동년배들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가운데 누구를 더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박근혜냐 아니냐지, 문재인이냐 안철수냐는 중요치 않다"며 "저희 남편은 대기업 다니고, 전에 이명박 후보를 찍었고 그랬는데도 이번엔 안철수를 지지한다. 하지만 문재인으로 단일화돼도 단일후보가 나오면 찍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안 후보에 대해 "중고생들은 꼭 안철수가 돼야 한다고 하더라. 투표권도 없으면서"라고 말하면서 웃음지었다. "어떤 엄마가 박근혜 좋다고 했더니 딸이 '엄마는 그렇게 생각이 없어요?' 했다더라"고 그는 전했다. 문 후보에 대해서는 "노무현의 사람"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하면서부터 부산은 노무현에 대해 미안한 정서가 있다. 30~40대 친구들 중에, 전혀 그런 애들이 아니었는데 막 김해(봉하)를 가고 그랬던 애들이 많았다"고 했다.
부산역 앞에서 만난 직장인 이재섭 씨(41세, 남)는 "제 주위는 문재인"이라며 "박근혜 후보 지지는 40% 정도고 야당 지지가 더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박근혜 후보 지지가 왜 저조한지 묻자 이 씨는 "3당 합당 이후에나 YS 때문에 여당이 세졌지, 원래 부산은 야당 성향이 강한 곳"이라고 했다. 그는 "어차피 단일후보 지지할 건데, 안철수보다 문재인이 될 확률이 더 많지 않나 싶어서 문재인 지지하는 사람 많은 것 같다"고도 했다.
반면 40대 중에도 반대 반응도 있었다. 45세 직장인 전 아무개 씨는 "대세는 박근혜"라고 수 차례 강조했다. 자신이 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차피 누가 되나 똑같은 건데 여자가 살림이라도 잘하지 않나"라며 "그런데 어른들이나 저희나 여자 대통령이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세대 변수만 놓고 보면 '젊은 층은 야당, 나이든 층은 여당'이라는 다소 뻔한 구조이지만, '젊다'의 기준을 어디로 잡을 것이냐가 쟁점으로 남은 셈이다. 부산에서 그 선은 40대 후반 또는 50대 어딘가에 그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정시장에서 만난 71세 횟집 주인 최 씨는 "40대, 50대 '젊은 사람'들도 안 씨 얘기하더라"고 한 반면, 25세 대학생 유 씨의 부모와 주변 어른들은 '니가 정치를 뭘 아냐'며 새누리당 투표를 강권하고 있다고 한다.
각 후보 진영에서 30대에서 50대까지의 중간 세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산대 앞에서 만난 강현진 씨와 이 씨의 말은 40대, 50대의 표심이 알고 싶은 정치인과 언론의 궁금증을 더 부추긴다.
"가족들하고 얘기해 보면, 엄마는 박근혜, 아빠는 문재인?"
"우리 집은 반대인데. 아빠가 박근혜, 엄마는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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